인생은 순간이다

<소울> & <어나더 라운드>

by KinoDAY

비록 전염병을 접했을 때만 느껴지는 건 아니겠지만, 뉴스에서 사망한 사람들이 나오다 보면 저절로 상념에 젖게 됩니다. "인생이 뭘까?" "산다는 게 무슨 의미일까?" "당장 내일 죽는다면 난 뭘 해야 할까?"와 같은 공상에 가까운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머릿속을 잠식해나갑니다. 특히 코로나처럼 수십, 수백 명의 사람이 한순간에 목숨을 잃거나 망자들을 위한 최소한의 예우도 갖출 수 없는 현실을 마주하면 질문들은 더욱 추상적으로, 또 비관적으로 변해가기도 하죠.


이럴 때면 전 책 한 권이 떠오릅니다. 36살의 나이로 암에 걸려 사망한 뇌신경과 레지던트인 폴 칼라니티가 쓴 <숨결이 바람 될 때>죠. 이 책은 스스로 인생의 정점에 이르렀다고 생각한 저자가 암을 선고받아 지옥으로 떨어지고, 서서히 죽어가는 과정을 기록한 자전적인 이야기입니다. 타나토스가 눈앞에 어른거리는 순간 의술 대신 문학을 선택한 의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과학은 세상을 객관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수단이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세상을 인위적으로 재단해야 합니다. 그래서 세상의 본질적인 것은 과학이 밝혀낼 수 없습니다. 특히 죽음이 손을 뻗쳐 올 때야 비로소 보이는 "인생의 본질적인 측면들(희망, 두려움, 사랑, 증오 등등)"은 문학만이 포착할 수 있다고 하죠.


이는 삶의 의미에 대해, 죽음과 삶의 경계에 대해, 그리고 진정성 있게 인생을 누리는 방법을 논하는 영화가 유달리 눈에 들어왔던 이유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비록 제가 죽음의 문턱에 섰던 것은 아니지만, 근 몇 년만큼 사람들이 죽어가는 소식이 삶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고 느낀 적은 없었으니까요.



<소울> 가장 픽사다운 위로를 어른들에게 건네다

뉴욕에서 음악 선생님으로 일하던 ‘조(제이미 폭스)’는 꿈에 그리던 최고의 밴드와 재즈 클럽에서 연주할 기회를 잡는다. 인생의 목표를 이룰 수 있어 잔뜩 흥분한 바로 그 순간, 그는 예기치 못한 사고로 영혼이 되어 ‘태어나기 전 세상’에 떨어진다. 인간으로 태어날 자격을 획득한 영혼들에게 지구 통행증을 발급하는 ‘태어나기 전 세상’에서 그는 지구에 가고 싶어 하지 않는 시니컬한 영혼 ‘22(티나 페이)’의 멘토가 된다. 수많은 위인들도 가르침을 주는 데 실패한 영혼 22와 함께 조는 지구로 돌아가 프로 뮤지션이 되고 꿈의 무대에 서기 위한 모험을 시작한다.

애니메이션 명가 픽사의 작품은 보편적인 인생의 시기나 사건을 특정 소재로 풀어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온워드>는 마법, <코코>는 망자의 날, <토이스토리>는 장난감, <인사이드 아웃>은 감정이라는 소재를 가지고서 성인식, 사별, 유년기, 사춘기에 관해 이야기하죠. 또 픽사는 늘 선택된 소재와 관련된 환상의 공간을 선보입니다. 하지만 그곳에서 펼쳐지는 모험은 현실에서의 위로, 성장, 그리고 깨달음으로 이어지죠. <토이스토리 3>에서 청년이 된 앤디가 장난감들과 아름답게 이별한 것처럼요.


그래서 픽사 애니메이션은 유달리 어른들에게 감동적인 것으로 유명합니다. 이미 인생의 한순간을 지나서 온 이들에게 픽사 애니메이션이 선사하는 환상 속 현실의 울림은 그저 가상의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피트 닥터 감독의 <소울>은 픽사의 DNA가 가장 뚜렷하게 발현된 영화 중 하나에 속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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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사가 말하는 삶의 의미

<소울>은 삶의 이전과 이후를 그려냅니다. 태어나기 전과 죽음 후에 영혼이 마주해야 하는 환상의 공간이 주된 배경이죠. 하지만 <소울>이 진정으로 말하고 싶은 이야기는 사람의 탄생과 죽음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탄생과 죽음은 수단에 가깝습니다. 현재와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가 본질에 가깝기 때문이죠.


<소울>은 셸리 케이건 예일대학교 교수의 결론과 비슷한 메시지를 말합니다. 갑작스럽게 죽기 직전에 처한 조는 지구로 내려가기를 거부하는 영혼 22와 함께 뉴욕에서 모험을 펼칩니다. 그 과정에서 조는 지난 삶의 과오를 되돌아보고, 새로운 삶을 향한 희망을 발견하며, 당장의 현실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죠.


학교 음악 교사로 일하지만 언제나 재즈 밴드로 활동하는 프로 뮤지션을 꿈꾸던 조는 동경하는 아티스트와 클럽에서 멋진 즉흥 연주를 펼치며 실력을 인정받습니다. 그러나 매일같이 공연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마음 한편에 자리 잡은 공허함을 떨쳐내지 못합니다.


지구로 내려가는 것을 거부하던 영혼 22 역시 조의 몸을 빌려 처음으로 삶이 무엇인지를 체감합니다. 하지만 자기 경험을 부정당한 뒤 삶의 의욕을 잃고 괴물로 변해버리죠. 그러던 중 둘은 단풍나무 씨앗이 상징하는 순간의 아름다움과 사소한 일상의 소중함을 마주한 후 드디어 진정한 삶을 살기 시작합니다. 인생이 무언가 거창한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순간순간을 즐길 때 의미가 있다는 걸 깨달은 것이죠.


이는 케이건 교수가 <죽음이란 무엇인가>에서 "(영혼이 실재하든 안 하든) 우리는 죽는다. 때문에 잘 살아야 한다. 죽음을 제대로 인식한다면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행복한 고민을 할 수 있다"라고 말한 바와 일맥상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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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를 형상화한 음악의 매력

이러한 메시지는 영화 음악에도 고스란히 반영되었습니다. 사실 개봉 전 프로모션에 비해 <소울> 속 재즈 음악의 비중은 그리 크지 않습니다. 초반부 재즈 클럽에서의 연주 장면, 뉴욕에서 펼쳐지는 조와 22의 여정, 일상의 소중함을 조가 깨닫는 장면을 제외하면 재즈 음악은 등장하지 않죠. 오히려 영화는 <소셜 네트워크>의 OST로도 유명한 트렌트 레즈너와 애티커스 로스의 스페이스 음악을 주로 들려줍니다. 제2의 <라라 랜드>를 기대한 이들에게는 약간의 실망감을 안길법한 대목이죠.


그러나 영화가 진정으로 말하고자 한 바를 생각하면 재즈 음악 영화를 표방하면서도 재즈 음악에 많은 분량을 주지 않는 <소울>의 행보는 필연적입니다. 조는 햇살을 맛보고, 단풍나무 씨앗을 손에 쥐고, 재즈가 아닌 일상의 이야기를 미용사와 나누고, 또 과거에 있었던 모든 일상의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습니다. 원래도 소중했던 재즈는 인생의 전부가 아니기에 더욱더 소중해지죠.


영화는 이러한 조의 서사를 이용하는 듯 보이죠. 전체적으로는 재즈를 많이 배치하지 않되, 재즈 음악에 강렬한 임팩트를 남깁니다. 재즈 음악을 들려줄 때는 즉흥 연주와 다른 연주자와의 하모니에 중점을 두며 지금의 아름다움을 느끼며 살자는 메시지를 강조하죠. 이외의 장르를 통해서는 영혼들의 세계와 조의 절실함, 22의 좌절감을 생생하게 제시합니다. 이렇게 <소울>은 스브스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피트 닥터 감독이 말한 대로 영화 음악의 장르 선택과 배치를 통해 가장 직관적으로 감정과 이야기를 전달하는 데 성공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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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울>의 기저에 깔린 현대 사회의 그림자

또한 <소울>은 두 주인공 안에 현대인들의 처지를 녹여내며 관객들이 영화의 메시지를 자연스럽게 체감하도록 유도한다. 조와 22는 전혀 다른 유형의 인물처럼 보인다. 한 명은 확실한 인생의 목표를 지닌 채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다는 열정으로 가득합니다. 반면에 다른 한 명은 지구에서 태어나지 못할 정도로, 또 본인도 지구에 갈 생각이 없을 정도로 열정이 부족하죠.


그러나 따지고 보면 결국 둘은 확신을 갖지 못해 우울하다는 같은 문제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피로사회>의 표현을 빌리면 조는 무엇이든 가능하다고 믿는 지구에서 "긍정성의 과잉"으로 인해 "자기 자신과 전쟁을 벌이고 있는 인간"이기에 우울합니다. 22는 '태어나기 전 세상'에서 자신을 발전시키기 위해 강제된 자유로부터 성과를 내지 못한 채 낙오한 인물이죠.


그렇지만 열정이 있는 이와 없는 이, 목표를 향해 내달리는 인물과 시작조차 두려워하는 인물이라는 차이 이면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존재합니다. 그들은 모두 "(삶을) 보는 법에 대한 특별한 교육"을 받지 못해 사색적 삶을 누리지 못하는 인물입니다. 성과를 내야 하고, 그 성과로 사회에서 인정받는 긍정 과잉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두 주인공의 이야기는 스스로 거울을 들여다보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비록 양상은 달라도, 자신의 목적에 치여 함몰되어 간다는 공통점이 명확하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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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더해 조와 22라는 캐릭터가 현실을 반영하듯이, 공간적 배경도 현실의 비유로서 감정이입과 공감에 큰 도움을 줍니다. 지나치게 열정에 집착하여 괴물이 된 영혼들이 떠돌아다니는 공간인 어둠의 구역을 보자. 지나친 열정 때문에 주식 거래에 미쳐버린 한 남자는 "성과의 극대화를 위해 자유로운 강제에 몸을 맡긴" 결과 두 주인공과 같은 문제를 겪는 인물입니다. 이 남자와 22처럼 자기 삶을 잃고 괴물이 되어 버린 이들은 '문윈드'와 같은 개인의 도움을 받아서만 구해질 수 있죠. 달리 말해 어둠의 구역은 개인이 자신을 하나의 부품이자 도구로 여기게 하는 세상입니다. 실패할 경우에는 재도전의 기회가 거의 주어지지 않는 현실과 매우 흡사하죠.


또 다른 배경인 '태어나기 전 세상'도 다르지 않습니다. 이곳은 언뜻 영혼들의 성장과 배움의 공간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인간이라면 갖추어야 한다는 조건들을 정해놓고, 조건을 맞춘 영혼만 지구에 보내는 시스템은 공장이나 다름없습니다. 개인의 개성을 인정하기보다는 엇비슷한 인간상을 제조하기 때문이죠. 그 공장에서 낙오한 22와 같은 영혼을 방치하는 대목에서는 특정한 스펙과 조건이 성공과 실패의 기준이 되는 현대 사회의 모습이 엿보입니다. 공간의 특성을 생각해보면 22가 지금의 사회구조를 만드는 데 공헌한 과거의 위인들로부터 아무런 가르침을 얻을 수 없었던 이유도 손쉽게 유추할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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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사의 최전선에 있는, 가장 픽사다운 마무리

영화의 다양한 목적과 기능 중 하나가 현실에서의 도피인 만큼, 현실의 아픔과 불편함까지도 영화 안으로 끌고 들어온 <소울>의 선택은 바람직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가 제공하는 위안과 위로가 단지 현실 회피와 환상의 충족을 담당할 뿐이라면 영화는 마약과 다를 것이 없겠죠. 또 지금처럼 사람들에게 힘이 되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영화에는 언제나 끝이 있습니다. 영화는 관객들을 그들의 현실로 되돌려 보내야만 하죠. 그렇기에 결코 현실에서 완전히 도망치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영화는 도피처가 아닌 피난처이자 안식처입니다. 새로운 출발을 위한 충전소 혹은 주유소이기도 합니다. 이는 환상의 세계를 그려내지만 언제나 현실로 되돌아오는 것을 잊지 않는 픽사 애니메이션이 크고 뜨거운 사랑을 받는 이유죠. <소울>이 유독 어른들을 위한 동화이자 가장 픽사다운 영화일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삶에 지쳐 자기 자신을 원망하고, 황량한 사막을 떠도는 이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냉철한 비판의 메시지를 함께 건네기 때문이죠.


<소울>은 엔딩 크레디트가 다 올라간 후 "영화는 끝났어. 이제 집에 가"라고 말하는 테리의 모습으로 끝납니다. <데드풀>에서 데드풀이 왜 아직도 앉아 있냐면서 다음 편 떡밥을 기대한 건 아니냐고 약 올리는 것만큼이나 유머스럽기도 하고 허탈하기도 하죠.


하지만 실컷 환상의 세계를 맛보고 그 감흥에 취해 있을 관객에게는 어서 집으로 돌아가라는 이 대사마저도 힘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찌 되었건 현실에 충실해야 한다는, 매 순간을 귀중하게 여기며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영화니까요. 이렇게 현학적이고 깊이 있는 소재를 다루면서도 그 어느 때보다도 직접 가슴에 와닿는 영화인 <소울>은 가장 픽사다운 격려와 위로를 전하는 영화라 할 수 있습니다.




<어나더 라운드> 디오니소스와 함께 술 마시며 춤추다

촉망받던 역사학도였으나 지금은 일상에 찌들어 무기력해진 고교 교사 '마르틴(매즈 미켈슨)'. 그는 각각 체육, 음악, 심리학을 가르치는 동료 교사 니콜라이, 페테르, 톰뮈와 함께 한 니콜라이의 40번째 생일 축하 자리에서 흥미로운 심리학 가설을 듣는다. ‘인간은 혈중 알코올 농도가 0.05%쯤 부족한 상태로 태어났기 때문에 이 정도를 채워주면 더욱 편안하고 창의적일 수 있다’는 것. 직접 실험에 나선 마르틴은 음주가 지루한 수업과 가족 관계에 활력을 불어넣었다는 후일담을 전해준다. 이에 네 친구는 언제나 최소 0.05%의 혈중 알코올 농도 유지하고, 밤 8시 이후엔 술에 손대지 않는다는 규칙을 정한 뒤 지루한 교사, 매력 없는 남편, 따분한 아빠에서 탈피하기 위한 본격적인 실험에 나선다.


<소울>은 인생의 모든 순간이 하나도 빠짐없이 소중하고 아름답다고 말하는 영화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궁금증이 생길 수 있죠. "어떻게 해야 그 말을 실천에 옮길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자라납니다. <어나더 라운드>에서는 그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핵심은 바로 술, 알코올이죠.


현대 사회로 오면 올수록 술에 대한 인식은 점차 부정적으로 변해왔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술의 정(精)이여! 너에게 아직 이름이 없다면 앞으로 너를 악마라고 부를 테다"라고 외친 셰익스피어의 말대로 2011년에 술은 세계보건기구(WHO) 선정 1급 발암물질이 되기도 했습니다. 특히 술에 의존하는 경향은 사회적, 개인적 문제가 되기도 합니다. 구하기 쉽다는 접근성과 인간관계 형성을 위해 오래도록 쓰인 문화적 특징과 결부된 결과죠. 이러한 인식이 반영돼서인지 많은 창작물에서도 술은 흔히 파국을 불러오는 소재로 활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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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에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 국제장편영화상을 수상한 덴마크 영화 <어나더 라운드>는 결이 좀 다릅니다. 덴마크 대표 배우인 매즈 미켈슨과 토마스 빈터버그 감독이 <더 헌트> 이후 처음 합작한 이 영화의 종착역은 쌉싸름함 속에 달콤함이 깃든 다크 초콜릿처럼 마냥 행복하지도, 우울하지도 않습니다. 약 2시간의 러닝타임 내내 술 내음이 가시지 않는 데도 말이죠.


실제로 술이 등장하기 전 마르틴과 그의 친구들의 일상은 잿빛입니다. 그러나 보드카·와인·샴페인 등이 등장하자 스크린에는 활기가 돌고, 색채도 살아나죠. 이는 <어나더 라운드>가 술 문화를 다루는 영화가 아니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그보다는 흔히 간과되는 삶의 태도를 술을 매개로 풀어낸다고 보는 게 적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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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폴론적인 삶의 한계점

특히 <어나더 라운드>는 아폴론과 디오니소스의 이름을 빌려 술을 둘러싼 네 친구의 이야기를 풀어나갑니다. 그리스 신화 속 아폴론은 시와 음악의 신이자, 질서와 진리의 신이자 광명의 신입니다. 이처럼 다양한 아폴론의 신격은 델포이 신전에 새겨진 “너 자신을 알라”는 경구를 통해 인간의 본성적 한계를 강조한다는 하나의 의미로 수렴될 수 있습니다. 이 문구가 유한한 존재인 인간은 신들과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말하는 격언이기 때문입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보면 아폴론은 인간 세상에 한계와 한도를 정하는 신입니다. 그렇게 해서 무질서를 질서로 바꾸어 내고, 그 질서의 아름다움을 상징하죠. 그의 다른 신격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술은 물로 아름다움을 구현하는 수단입니다. 단지 평범한 유희가 아니라 일정한 질서와 조화, 규칙 내에서 이루어지는 활동이죠. 그렇기에 시와 음악을 관장하는 아폴론의 역할은 몸을 훈련하는 체육처럼 영혼을 갈고닦는 교육의 기능에 속하게 됩니다. 아폴론이 광명의 신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성을 통해 세계의 진리를 인식하는 지성적 목적으로까지 이어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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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영화는 아폴론적 이미지로 가득합니다. 영화의 주된 공간적 배경이 학교만 해도 그렇습니다. 학교라는 공간은 이성을 통해 진리를 추구하고, 질서를 세우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서울대학교 정장에 'VERITAS LUX MEA', 곧 '진리는 나의 빛'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는 이유죠. 네 친구도 각각 역사, 체육, 심리학, 음악 등 아폴론의 신격과 관련된 교사입니다.


질서와 진리를 강조하는 신의 가치가 지배적인 공간답게, 그 안에서 지내는 구성원들도 강력한 규칙과 규율을 따릅니다. 제 몫을 다해내지 못하면 교사들은 면담을 통해 학부모들로부터 직접 컴플레인을 들어야 합니다. 학업을 제대로 끝마치지 못한 학생은 졸업 대신 재수강을 반복하죠. 당연히 술의 존재 역시 학교에서는 언급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금기시됩니다.


하지만 질서가 확고한 공간 안에서 구성원들은 점차 피폐해집니다. 직업으로부터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는 교사는 이내 가족들과 함께 있어도 무기력하죠. 육아와 직장 사이에서 균형을 잡지 못하는 아버지는 가중되는 스트레스를 토로합니다. 졸업 시험에서 거듭 낙제를 경험했던 학생은 극도의 공포심에 휩싸이죠. 축구팀 내에 스며드는 데 어려움을 겪는 한 아이는 울음을 터뜨리고 맙니다. 이들의 좌절감은 학교 내로 국한되지 않습니다. 학교처럼 강력한 질서와 규율이 지배하는 현대 사회의 보편적 이야기로 확장되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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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오니소스적 삶의 장점

이 대목에서 영화는 포도주의 신이자 축제, 광기, 야성의 신이기도 한 디오니소스를 소환합니다. 디오니소스는 사람들을 산과 들로 이끌고 다니며 가는 곳마다 술 마시고 노래 부르고 춤을 추게 하면서 열광과 무아지경에 빠지게 하는 신입니다. 그는 질서와 같은 이성적 틀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감정을 분출시킬 수 있도록 지도하는 역할을 맡은 신이죠. 그 과정에서 춤과 노래의 인도자 역할도 겸합니다. 감정이라는 삶의 생명력을 통해 반지성적 목적을 이루려 한 것이죠. 그래서 디오니소스는 포도주로 상징되는 비이성적 도취 상태로 사람들을 유도합니다.


<어나더 라운드> 속 술 역시 단순한 일탈 그 이상을 의미합니다. 정형화된 삶 속에서 사람들이 놓치고 있었던, 진정으로 삶을 살아있게 하는 의지를 일깨우는 존재에 가깝죠. 실제로 영화는 마르틴이 술을 마신 이후로 삶의 세 가지 의지를 되찾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우선 인생에서 지나가 버린 젊음이죠. 그는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마치 젊은 시절로 돌아간 듯 즐거워합니다. 다음으로는 그간 손 놓고 있었던 대인 관계입니다. 아내와의 관계, 아이들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그는 저녁 식사를 함께하고 오래간만에 가족 여행을 계획하죠. 마지막은 잃어버렸던 열정입니다. 수업 진도를 기억하지 못하거나 시험 문제 출제도 제대로 하지 못하던 마르틴. 그러나 이제 그는 실험적인 강의 방식을 도입해 학생들의 왕성한 참여를 끌어냅니다. 과거 본인이 품고 있었던 역사에 대한 열정을 전해주기까지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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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잔씩 더 마시는 기쁨

디오니소스의 신격과 그 함의는 마르틴이 항구에서 술 마시며 춤추는 마지막 장면에서 제대로 폭발합니다. 고대에 이루어지던 디오니소스 제의 중에는 “코레이아”(choreia)라고 불리던 춤이 포함되어 있었죠. 해당 장면은 마치 시, 음악, 무용의 원시적 융합 형태였던 코레이아처럼 느껴집니다.


특히 디오니소스 제의에서 코레이아가 춤추는 자의 영혼을 정화하는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마르틴의 춤은 더욱 의미심장합니다. 매즈 미켈슨이 젊은 시절 기계체조를 배우고 무용수로 활동하던 경력을 발휘해 재즈 발레를 추는 사이, 무기력했던 마르틴의 삶에는 활력이 돕니다. 그의 무채색 일상에는 빛이 들어오고 그의 삶은 마침내 제자리를 찾아가죠. 술로써 인생을 되찾아가는 이야기는 아폴론적 가치에 눌려 있었던 디오니소스적 삶의 중요성이 부각되며 비로소 완결됩니다. 이는 영화 속 술이 부정적으로 보이기보다는, 영화가 끝날 때 제목대로 “한 잔씩 더(Another Round)!”를 외치고 싶어지는 이유죠.


물론 <어나더 라운드>가 마냥 술과 디오니소스적 삶을 긍정하지는 않습니다. 네 친구의 실험은 그들의 의도대로 흐르지 않고, 그들은 술을 통제하지 못하며 온갖 사고를 치죠. 그런데도 영화가 굳이 점차 터부시되는 술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분명해 보입니다. 현대 사회 전반을 지배하는 이성적 능력에 대한 믿음은 사람들의 일상과 감정을 억압하는 방향으로 치달을 수 있습니다. 이때 인간의 비이성적이고 감정적인 본성에 대한 합당한 배려가 결여될 경우, 사람들은 삶의 의지를 잃을 수밖에 없죠. 언제나 술과 같은 쉼터, 혹은 탈출구가 마련되어야 하고 경시되지 않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이렇게 사회와 인간의 관계를 포도주 신의 이름으로 통찰하면서 <어나더 라운드>는 사회적, 개인적 삶의 차원에서 인간을 이해하는 길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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