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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noDAY May 02. 2019

생일

아픔을 나누는 방법

1. 사회를 구성하는 구성원들에게는 집단적 아픔 혹은 트라우마가 존재하곤 한다. 예를 들어 2011년 당시 동일본 대지진과 이어진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많은 일본 사람들이 결코 잊지 못할 악몽이다. 이러한 악몽을 극복하는데 도움을 주는 수단 중 하나가 영화다. 이는 과거 제의 혹은 종교가 사회에 통일감과 안정감을 부여하는 기능을 현대에는 영화가 일부 담당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본에서 <너의 이름은.>이라는 영화는 일본 사회 구성원들의 아픔을 공유하고 이를 판타지적으로 극복하는 기능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처럼 아직까지도 많은 이들의 가슴속에 남아있는 세월호 참사를 다룬 <생일> 또한 공동체의 상실, 아픔, 슬픔의 기억을 위로해주고 보듬어 주는 사회적 기능이 두드러지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2. <생일>의 첫인상은 '신중함'이다. 소재를 다루는 방식과 주제를 드러내는 방법 모두 굉장히 조심스럽다. 세월호 사건이라는 소재가 촉발시킬 수 있는 논란을 감안하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사실 세월호 사건이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의 어두운 일면과 부조리들이 곪아 터진 재앙이라는 점, 즉 단순한 인재가 아니라 언젠가 발생할 줄 알았던 예정된 일이라는 점은 대부분 동의하는 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월호 사건은 아직도 진상조사가 진행 중이며, 실제적인 책임자를 비롯한 사고 원인, 이후 보상 및 대처방식을 두고 여전히 정치적 논쟁이 발생하는 사건이기도 하다.  


이렇듯 소재로부터 발생 가능한 논란을 <생일>은 '희생자'들이 아닌 '생존자'들에게 포커스를 맞추며 피해 간다. <타이타닉>과는 정반대의 선택이다. <타이타닉>은 침몰하는 배, 탑승자들의 분투 및 사망 과정을 가감 없이 보여주나 <생일>에서는 배 한 척 등장하지 않는다. 또한 <타이타닉> 같은 연출이라면 영화의 극적인 긴장감을 조성할 수는 있었겠지만, 타이타닉의 침몰과는 달리 아직도 현재 진행형인 상처라는 점에서 직접적인 묘사는 하지 않은 듯싶다.


이렇듯 직접적인 사건 묘사의 부재는 자연히 남은 자들, 생존자들의 심리 묘사로 이어진다. 세월호 탑승자들의 가족, 친구, 이웃, 그리고 그 외의 사회 구성원들이 보여주는 여러 단면들은 그간 목격해온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인상적인 것은 이러한 여러 단면을 단순히 선과 악의 이분법적 측면이 아닌, '수호'라는 단원고등학교 학생의 부재를 여러 인물의 시점에서 보여주며 다층적인 형태로 느끼게 한다는 점이다. 물론 그로 인해 비슷비슷한 에피소드들이 반복되고 특정 대목은 지나치게 극적이다 보니 영화가 다소 지루한 듯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남은 자들의 슬픔, 상실감, 죄책감, 트라우마를 관객에게 효과적으로 제시하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3. <생일>은 극적인 사건이나 강렬한 서스펜스가 없는 영화다. 대신 인물들의 감정선을 충실히 따라가는 영화이고, 그렇기에 이 감정을 전달할 배우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한 작품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설경구와 전도연의 캐스팅은 좋은 한수였다. 설경구는 감정을 억누르고, 전도연은 감정을 터뜨리는 연기를 통해 각자의 아픔을 전달하는데 이러한 대조적인 연기 방식은 우리가 세월호 사건을 바라보는 두 가지 시점과 맞닿아 있으며 아마 어느 쪽이든 마음에 와 닿을 것이다.



다만 배우의 연기와는 별개로 캐릭터 구축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전도연의 '순남'은 충분히 인물의 사연이 소개가 되기에 관객들이 쉽게 수용할 수 있다. 하지만 설경구의 '정일'은 특정 사건 외의 시간에 행적이 모호하게 느껴지며, 특정 사건의 전개를 위한 도구적인 인물로 보이다 보니 그의 감정은 공감하기 어려운 점이 존재한다. 따라서 단순한 대사가 아닌 시각적인 방식으로 그의 사연을 제시할 수 있었다면 '정일'이 감정을 참아내다 종국에 터뜨리는 모습이 더욱 감동적이었을 것이다.   



4. <생일>의 하이라이트는 당연 후반부 수호의 생일파티다. 이 생일파티는 해준 게 없어서, 해주고 싶은 게 있어서, 도와주지 못해서, 도움을 받아서 미안하고 죄스러운 이들이 아픔을 나누고 한바탕 울음을 터뜨리며 치유받는 카타르시스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답답할 정도로 느리고, 비슷하고, 담담하게 쌓아 올린 모든 인물들의 감정선이 만들어내는 아픔의 공유와 치유의 마법인 셈이다. 동시에 영화 속 단 한 인물도 허투루 지나치지 않는 시퀀스가 이 생일파티 시퀀스이기도 한데, 세월호 사건의 트라우마가 단지 보이는 사람 외에도 많은 이들에게 남아있다는 의미가 담긴 연출이지 않나 싶다. 약보다 위로가 더욱 필요한 이들에게, 털어놓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이들에게 먼저 다가가 안아주는 따뜻한 영화, 바로 <생일>이다.



A(Acceptable, 무난함)

흥미로운 지점은 일본의 <너의 이름은.>과는 달리 우리는 아픔을 판타지적으로나마 극복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저 끌어내고 담아 안고 이겨낼 뿐. 우리네 '한'은 여기서도 숨길 수 없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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