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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noDAY May 04. 2019

명탐정 피카츄

안전한 모험

1. 할리우드에서 제작되는 영화들의 소재를 살펴보면 가끔 그 한계가 어딘지 궁금해지곤 한다. 실화는 물론 소설, 신화, 종교, 그림, 음악, 만화까지 넘나드는 할리우드 영화들은 이제 게임이라는 새로운 아이템에까지 손을 뻗치고 있다. 아마도 게임이 다른 영화의 소재들과 다르게 더 직접적인 경험과 기억이 가능하다는 특징이 있으며, 그렇기에 게임을 성공적으로 영화화할 경우 더 열렬한 호응을 이끌어 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일 것이다. 다만 그러기 위해서는 2가지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하나는 '관람자의 주관적 기억과 영화가 잘 조응을 이루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영화 자체의 완성도가 준수한 것'이다. '명탐정 피카츄'라는 게임을 원작으로 하는 <명탐정 피카츄>는 안타깝게도 (철저히 개인적인 입장에서) 두 가지 조건을 모두 완벽히 만족시키지는 못했다.



2. 주관적 기억과 잘 조응되야한다는 전제의 의미는 이렇다. 우선 영화의 핵심 설정 및 스토리가 원작 게임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아 안정감이 있으면서도, 적절한 각색이 이루어져 게임과는 다른 신선함을 동시에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이는 게임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는 물론 소설, 만화 등을 베이스로 하는 영화들 모두에 해당한다. 왜냐하면 그래야만 원작의 팬덤은 물론 잠재적 관객들까지 모두 극장으로 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명탐정 피카츄>의 문제점이 드러난다. 이 영화는 원작을 너무나도 잘 따라가 버렸다.  



포켓몬이라는 소재는 효과적으로 활용한 편이다. 포켓몬을 사람에 종속된 존재가 아니라 대등한 존재로 다루면서 다양한 포켓몬을 등장시켜 적절한 분량 분배에 성공하며 포켓몬과 사람 간의 공존과 우정을 잘 살려냈다. 또한 뻔할 수 있는 가족애라는 주제를 포켓몬을 활용해 전달한 점도 나름 신선한 편이다. 이는 비슷한 소재를 다룬 <신비한 동물들과 그린델왈드의 범죄>가 신비한 동물들의 비중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은 것과는 분명한 대비를 이룬다. 


문제는 원작 게임인 '명탐정 포켓몬'의 스토리를 지나치게 적극적으로 차용한 점이다. 물론 원작 게임을 좋아했던 사람들에게는 커다란 스크린에서 실사로 구현된다는 사실만으로도 만족스러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포켓몬에 큰 관심이 없던 나의 입장에서) 결말에 이르기까지 원작 게임의 내용과 거의 일치하는 스토리 전개는 지나치게 평이하며 중후반부에 간혹 튀어 오는 강렬한 시각적 스펙터클 외에 영화에 신선함을 불어넣는 요소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따라서 원작을 충실히 따른 것은 그리 좋은 선택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3. 그렇다면 영화 자체의 완성도는 좋을까. 그것도 아니다. 물론 좋은 부분도 있다. 게임 배경음악을 적절히 사용한 OST라든가, 런던과 도쿄를 적절히 혼합시킨 듯 보이는 라임 시티의 경관과 구현도는 분명히 인상적이다. 상술한 것처럼 주제의식의 전달과 소재의 활용법 역시 칭찬할 부분이다. 


하지만 <명탐정 피카츄>의 결정적인 문제점은 바로 스토리의 구성과 전개에 있다. 이 영화는 아들인 팀과 아빠인 해리의 가족애 쌓기, 팀과 피카츄의 우정 나누기, 팀과 루시의 썸 타기, 악당의 음모 막기 등 크게 4가지 세부 플롯으로 전개된다. 문제는 이 플롯 간의 연결고리가 설명도 잘 되지 않으며, 우연에 근거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각 플롯의 전개도 마찬가지다. <명탐정 피카츄>는 수준 이상으로 극적 허용을 활용한다. 지나치게 우연, 본능, 감에 의존하는 스토리텔링은 시나리오의 헐거움을 극대화할 뿐만 아니라 영화에 출연한 명배우들이 이름값을 못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원인이기도 하다. 캐릭터의 동기, 변화, 정체성 등이 잘 드러나지 않으니 빌 나이, 와타나베 켄 등 굵직한 배우들마저 <명탐정 피카츄>에서는 아무 의미 없이 소비될 뿐이다. 라이언 레이놀즈 역시 <데드풀>을 본 이후라서 그런지 '피카츄'와의 찰떡처럼 어울리는 느낌은 아니다(물론 피카츄의 매력에서 헤어 나오기 어려운 것은 맞다). 이는 포켓몬들의 묘사에 있어서 기대 이하였던 아쉬운 CGI 때문이기도 하다. 결국 <명탐정 피카츄>는 포켓몬의 매력 발산은 훌륭하나 그 매력들이 하나의 스토리로 발산되지는 않는 영화다. 



4. <명탐정 피카츄>는 아직 정식 개봉도 하지 않았지만, 속편 제작이 확정된 상황이다. 아마 워너브라더스에서는 이만하면 무난하고 안정감 있게 출발했다는 자신감을 가진 것처럼 보이며 <명탐정 피카츄>는 (여러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가볍고 무난하게 즐길만한 오락 영화다. 아마 다음 편부터는 게임 원작이 아닌 오리지널 스토리로 영화를 풀어나갈 텐데 과연 어느 정도의 독창성, 신선함, 완성도를 불어넣을 수 있을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울 듯하다.  



A (Acceptable, 무난함)

불만족스러운 현재와 기대되는 미래가 공존하는 무난한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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