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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noDAY May 08. 2019

판의 미로: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

고정된 현실은 없다. 우리의 환상이 곧 우리의 현실이니깐.


1. 작가주의적 관점에서 영화를 감상할 때  한 감독의 독특한 스타일이나 분위기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맥락에서 <세이프 오브 워터>, <헬보이>, <퍼시픽 림>의 제작자 겸 감독인 길예르모 델 토로 감독은 아주 흥미로운 인물이다. 왜냐하면 그의 작품들은 하나같이 시각적으로는 기괴하고 잔혹하지만 스토리 상으로는 아름다운 그만의 분위 물씬 풍기기 때문이다. 이번에 재개봉한 <판의 미로>는 델 토로 감독의 작품 세계가 비롯된 지점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비주얼리스트로서의 디테일이 돋보이는 델 토로 감독의 스케치


2. <판의 미로>가 보여주는 타 판타지 영화들과의 가장 큰 차이는 당연 판과 요정들을 비롯한 크리쳐들 판타지 세계에 대한 묘사일 것이다. 일반적인 판타지 영화들은 경외감, 신성함과 같은 감정을 자아내도록 전체적인 환경을 설정하고 캐릭터들을 묘사한다. 반면 <판의 미로>는 '판'을 비롯한 크리쳐들을 기괴한 형태로 만들 뿐만 아니라 마지막 결말부를 제외하면 전체적인 영화의 분위기도 판타지보다는 호러 영화의 그것에 가깝다. 똑같이  판(사티로스)이 등장하고 어린아이가 주인공이며 역사적 시간대마저 유사한 <나니아 연대기>와 비교해보면 그 차이는 더욱 극명해진다.  이처럼 <판의 미로>는 다른 요소들을 제쳐두더라도 시각적인 측면에서 독창적인 개성을 빛내며, 그렇기에 비슷비슷하게 양산된 할리우드의 판타지에 비해 탁월하게 느껴진다.



3. 스토리 상으로도 <판의 미로>는 다른 판타지 영화와는 궤를 달리 한다. 파시스트 정권 하에서 내전과 극심한 혼란에 빠져있던 스페인을 배경으로 하는 전쟁영화와 같은 요소가 더해져 있기 때문이다(<나니아 연대기>도 런던 대공습이 시대적 배경이나 작중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 낯설기만 한 전쟁영화와 판타지의 이색적인 만남은 오필리아를 통해서 하나로 합쳐진다. 왜냐하면 전쟁은 현실세계에서 오필리아에게 극심한 고통을 주는 환경이기 때문이다. 오필리아는 곧 전쟁으로 말미암아 '판의 미로'라는 숨겨진 세계에 다다를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스토리 상의 특징은 <판의 미로>에 사회고발적 성격도 부여해준다. 왜냐하면 전쟁을 대표하는 인물인 새아버지 비달 대위를 대하는 오필리아의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이 만인의 경험과 감정 그리고 역사와 결부되자연스럽게 파시스트를 향한 비판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작중 비달 대위는 비인간적이고 반여성주의적인 행을 남발하며 자신에게 불리한 악조건을 계속해서 유발하며 영화는 비달 대위의 행적을 강조해서 보여준다. 이를 통해 관객들은 시스트 프랑코 정권의 무능함과 무자격을 꼬집는 것으로 영화를 이해할 수 있다. 마치 피카소가 <게르니카>를 통해 군국주의를 비난한 것처럼.



4. <판의 미로>를 다 보고 나면 결말을 두고 서로 다른 해석을 할 수도 있다. 즉 영화 자체가 결국 오필리아의 거대한 환상불과했던 건지, 아니면 현실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들인지를 두고 여러 의견들이 나올 수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오필리아가 경험한 모든 사건은 현실에서 실제로 일어났다고 생각한다.


우선 <판의 미로>가 기본적으로 판타지 영화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사실 선택받은 자가 고난과 역경을 겪으면서 내외적으로 성장을 이루고 현실과 다른 세계에 받아들여진다는 스토리는 전형적인 판타지 영화의 내러티브다. 따라서 오필리아가 실제로 영화 속 모든 사건을 경험했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기도 하다.


물론 스페인 내전이라는 시대적 환경과 오필리아가 처한 주변 환경을 감안하면 이 모든 것이 그녀의 환상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작중 모든 사건들이 그녀가 혼자일 때 발생하며 그녀 외의 목격자가 없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오필리아의 환상을 현실이 아니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왜냐하면 오필리아에게는 (우리가 환상이라고 말하는) 영화 속 기괴한 사건들이 분명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는 개인이 아무리 객관적으로 상을 바라본다고 한들 결국 우리는 각자 보는 대로 보 인지할 뿐 주관을 초월하는 객관적인 현실을 볼 수 없다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따라서 영화 속 오필리아가 현실에 있었는지, 아니면 환상 속에 빠져있는지를 우리가 알  있는 방법은 없다. <판의 미로>는 결국 오필리아의 영화이기 때문이다. 그저 그녀가 실존하는 지하 왕국에서든 그녀의 환상 속에서든 행복할  있었다는 점이 중요한 것이 아닐까. 


E(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설사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현실이 아닌 것은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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