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inoDAY May 13. 2019

라스트 썸머

의미부여가 과할 때

1. 살다 보면 일생에 단 한 번만 존재하는 순간들이 있다. 고등학교 졸업, 첫사랑과의 만남, 대학교 새내기, 입대 첫날의 일과 등. 이러한 순간들은 결코 되돌릴 수도 없고 다시 만날 수도 없는 찰나의 순간이다. 그렇기에 이 순간들은 많은 이들의 상상력과 영감을 자극하는 소재이기도 하다. 고등학교 졸업과 대학 입학 사이의 시기를 다루는 하이틴 영화들은 실제로도 동서양을 막론하고 꾸준히 제작되는 장르의 작품들이다. 그리고 넷플릭스가 새롭게 선보인 오리지널 영화 <라스트 썸머> 역시 대학 입학 전 3달 동안의 여름(한국이라면 겨울이 될 것이다) 동안 자기 자신과 세상을 보며 방황하고, 고민하는 십 대들을 다룬 작품이다. 



2. 아쉬움, 기대감, 기쁨, 설렘, 슬픔, 혼란스러움 등 수많은 감정들이 한데 뒤엉켜 공존하는 시기가 대학 입학 직전의 순간일 것이다. 인생에 있어서 급격한 변화를 앞두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이 시기에 우리들은 익숙했던 사람들, 학교, 지역을 떠나서 완전히 새로운 관계를 맺어야 한다. 또한 성인으로서 첫 발을 내딛으며 자신의 권리, 의무, 책임을 체감하고 이행해야 한다. 즉 동시에 자신의 주변을 이루는 세상이 파편화되고 재구성되면서 과거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나를 찾아가는, 그리고 현실을 조금씩 직시하게 되는 짧고도 중요한 기간인 것이다. <라스트 썸머>는 이러한 변곡의 순간을 8명의 인물들을 통해 스크린에서 구현하고자 노력한다. 



3. <라스트 썸머>가 재현한 십 대들의 이야기를 처음 본 순간 든 생각은 '버겁다'라는 것이었다. 영화가 선택한 소재가 영화의 톤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서 불협화음을 내버리기 때문이다. 우선 <라스트 썸머>는 자신이  풀어놓는 십 대의 마지막이라는 이 이야기가 매우 특별하다고 믿는 듯한 영화다. 슬로 모션과 화려한 조명, 시카고의 아름다운 풍경을 배경으로 화려한 편집이 더해지면서 전형적인 MTV 스타일로 영상을 가득 채운 점에서 이를 느낄 수 있다. 다만 이러한 십 대들의 이야기가 생각하는 것만큼 특별한 이야기는 아니라는 점이 문제다. 물론 청소년기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이 기간이 한 개인에게는 잊지 못할 추억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국 이 시기는 모든 이들이 필연적으로 거쳐 가야 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보편성의 특수화라는, 전형적인 청소년기의 착각을 범하고 있는 셈이다. 


또 다른 문제는 <라스트 썸머>가 '개인과 개인 간의, 혹은 개인과 사회 간의 관계 구축을 통한 정체성의 변화 및 확립'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남발해버리는 각종 무리수들이다. 이 영화는 크게 두 가지 스토리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하나는 대학 진학을 통해 느끼는 현실의 불공평함이고, 다른 하나는 새로운 인간관계를 통해 느끼는 대인관계에서의 신뢰의 중요성이다. 전자는 서로 다른 대학에 진학하게 되는 친구들 간의 미묘한 심리, 가정 내에서의 진학 문제를 둘러싼 갈등 등을 통해서 나름 설득력 있게 제시되는 편이다. 하지만 후자의 경우, <라스트 썸머>는 하이틴 영화가 보여줄 수 있는 최악의 방식으로 스토리텔링을 이어간다. 



4. 말 그대로 영화 같은 '눈 맞춤', 드라마 같은 불륜, 루저들의 사기극, 이별과 재결합의 연속. <라스트 썸머>는 자극적이고 통속적인 소재들을 연이어 던져 놓는다. 그리고 이 모든 에피소드들은 결국 연애와 사랑으로 귀결되고, 결과적으로 해피엔딩으로 결말을 맺게 된다. 물론 이 시기를 사랑과 연애를 빼고 논하는 것도 옳지 않겠지만, 인간관계가 오직 이성 간에만 존재하고, 이성관계를 통해서만 사람 간의 신뢰를 느낄 수 있다는 식의 전개도 그리 자연스럽지는 않다. 


또한 8명이나 되는 등장인물들의 숫자도 영화의 전개를 방해하는 요소다. 사실 <라스트 썸머>의 등장인물들은 서로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인물들이다. 그러다 보니 각각의 플롯이 뒤섞인 상태에서 그들의 이야기가 접점을 이루며 효과적으로 제시된다고 보기도 어렵다. 즉 소재와 메시지를 제외하면 아무런 연관성이 없는 독자적인 이야기들이 뒤섞여 등장하다 보니 영화의 중심을 이루는 '그리핀' - '피비' 커플의 스토리, 사랑이 시작될 때의 풋풋함과 성장통을 제외하면 인물들의 사연이나 감정선이 제대로 제시되지 않는다는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차라리 각 인물들의 이야기를 개별적으로 만든 뒤 이어 붙여서 전형적인 옴니버스 형식의 영화로 제작했다면 영화가 환기시키고 싶었던 주제의식이나 메시지가 더 잘 살아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5. 그럼에도 <라스트 썸머>는 개인별로 호불호가 매우 강할 영화라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건 아마도 이 영화를 보는 사람이 개인적으로 얼마나 강렬한 기억을 지니고 있느냐에 따라 느끼게 될 감정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고등학교와 대학교, 첫사랑과 이별, 그리고 당시의 흥분과 설렘과 긴장이 강할수록 그리고 뇌리에 깊게 박혀 있을수록 영화의 무리수들과 과하게 화려한 영상들이 행복했던 기억을 되살리는 좋은 장치로 작동할 수도 있을 것이다.  


P(Poor, 형편없는)

자신만이 특별한 줄 아는 청소년(영화)

매거진의 이전글 판의 미로: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