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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noDAY Jun 01. 2019

고질라: 킹 오브 몬스터

스케일만 아는 너는 멍청이

1. 영화를 보다 보면 개인적으로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영화 스타일이 생기기 마련이다. 내게 있어서 불호의 영화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울음과 감동을 짜내는 신파극이고, 다른 하나는 특정 장면들을 위해 스토리를 지어내는 영화다. 신파극의 경우 그 스토리 라인으로 인해서 극의 전개가 무너지거나, 특정 씬을 과하게 끌고 가면서 영화의 리듬감을 무너뜨리기도 하며 영화 장르를 망쳐버리기 때문에 가장 안 좋은 스토리 텔링 기법이라도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한국 영화를 많이 보지 않는 편인데, (근래 들어 덜하긴 하지만) 장르에 관계없이 가족주의를 중심에 둔 신파가 끼어드는 경우가 많아 장르 고유의 재미가 사라지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기 때문이다.


또한 특정 멋있는 장면을 위해 스토리 라인을 짜낼 경우에 극 중 인물들은 대게 도구적이고, 평면적인 경우가 많다. 문제는 영화를 볼 때 인물들에게 감정이입을 하지 못하면 아무리 멋있는 영상이어도 관객들이 2시간 내내 집중할 수 없다는 점이다. 또한 입체적이지 않은 인물들은 관객의 상상력과 흥미를 자극하지 못하기에 우리 또한 그들에게 관심을 주지 않는다는 점도 문제다. 그리고 워너와 레전더리 픽처스가 손잡은 몬스터버스의 야심작, <고질라: 킹 오브 몬스터>는 안타깝게도 저 두 가지에 모두 해당하는 영화다.



2. <고질라: 킹 오브 몬스터>는 기본적으로 괴수물이다. 따라서 마치 <퍼시픽 림>이 예거와 카이주의 스케일에 집중해 놀라운 스펙터클을 만들었던 것처럼 <고질라: 킹 오브 몬스터> 또한 압도적인 크기의 괴수들 간에 이루어지는 위압감 있는 격돌이라는 자신들의 목표를 향해 우직하게 내달렸어야 했다. 그러나 <고질라>의 제작진들도 이 영화의 장르와 방향성에 대해서 올바른 판단을 내리지 못했던 것 같다.


우선 액션 시퀀스를 봤을 때, 일정 부분은 만족스러운 요소들도 있다. 예를 들어 고질라의 시그니처 포즈나 기도라의 탈출 시퀀스와 같은 괴수들의 등장은 강렬하게 묘사되었고, 괴수들의 거대하고 묵직한 싸움 역시 각자의 특징을 잘 살려서 연출되었다. 하지만 문제는 영화가 액션 시퀀스의 중심점을 잡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고질라>와 같은 영화의 액션 시퀀스에서 관객들은 거대한 괴수들의 싸움을 즐기기 위해 영화관을 찾는다. 그런데 정작 작중 괴수들의 액션씬은 인간 캐릭터들의 이야기와 기도라 대 고질라의 전투를 오가는 어지러운 편집으로 인해서 난잡하게 제시될 뿐이다. 그러다 보니 관객들은 괴수들의 움직임과 시퀀스의 흐름을 온전히 파악하지 못하고 단지 액션의 시작과 결과만 보게 될 뿐이다. 마치 <트랜스포머 3>에서 로봇들이 뭔가 하는 것처럼 판을 벌려 놓고 정작 카메라로는 샘 윗위키와 미군들의 모습을 중점적으로 찍는 것처럼.



3. <고질라>의 액션이 더 실망스러웠던 것은 이 영화의 액션이 단지 액션을 위한 액션, 스펙터클을 위한 스펙터클일 뿐 스토리 전개 상 자연스러운 감정의 연장선상에서 등장하는 장면이 아니라는 것이다. <고질라>는 괴수들을 자연 그 자체로 설정하고 스토리를 진행한다. 따라서 작중 고질라를 비롯한 괴수들은 감정이입이 가능한 대상들이 아니며 그저 목격하고 바라보기만 하는 객체일 뿐이다. 따라서 괴수들의 스케일, 액션, 스펙터클에 시각적인 즐거움을 얻는 것과는 별개로 결국 관객들은 인간 캐릭터들의 입장에서, 그들의 감정선에 맞춰서 액션의 감흥을 느껴야만 한다. 문제는 <고질라: 킹 오브 몬스터> 속 인간 캐릭터들의 스토리가 심각할 정도로 억지스러워서 도저히 그들의 상황과 행동을 이해할 수 없고, 그래서 그들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괴수들의 액션마저 지루해진다는 사실이다.  



4. <고질라:킹 오브 몬스터>의 인간 캐릭터들 중 주인공 가족은 억지로 만들어낸 가족애라는 신파를 전달하는데 매몰되어 버린다. 그 신파마저도 이혼 가족에 대한 스테레오 타입이 가득한 묘사로 시작해 아무도 원하지도, 이해하지도, 감탄하지도 않는 세계 구원 무용담과 화목한 가정으로의 회귀로 마무리된다. 까놓고 말해서 이 영화에서 굳이 이 주인공들이 등장해야 하는지, 이혼 가족이 화해하는 매개체로 굳이 고질라를 이용해야 하는지는 영화를 보는 내내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었다. 이를 통해 이 영화가 인물들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지 않는, 매우 불친절한 작품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들이 등장하는 특정 장면들에서 영화의 개연성이 심각하게 부족한 점도 문제다. 예를 들어 방사능 열선을 내뿜는 고질라의 공격 등 숱한 위기 상황을 안전하게 통과하는 주인공들의 행보는 영화의 개연성을 심각하게 무너뜨린다. 또한 주인공이나 악역이나 그 과거나 동기에 대한 설명이 부족해 그들의 행위에 당위성과 설득력을 부여하지도 못한다. 그저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서, 그리고 리액션을 하기 위한 인물들이 대다수이기도 하다. 작중 인간 캐릭터들이 맡은 역할을 몇몇 인물에게 다 몰아주어도 스토리 전개에 큰 변화가 없다는 점에서 <고질라: 킹 오브 몬스터>가 얼마나 성의 없이 캐릭터들을 구축했는지 알 수 있다.


결국 <고질라: 킹 오브 몬스터>는 단지 고질라와 나머지 괴수들이 싸우는 그 현장을 최대한 생생한 카메라에 담을 수 있다는 편의상의 이유만으로 인간 캐릭터들을 순전히 도구적으로 활용했을 뿐이다. 전작에서 디스토피아적 분위기 안에서 절망하고 압도당하면서도 희망을 품고 포기하지 않는 인간들의 모습을 적절히 묘사했던 점에 비하면 엄청난 퇴보이기도 하다.  



5. 심지어 괴수들마저 아주 만족스럽지는 않다. 몇몇 시퀀스에서 강력한 임팩트를 심어주는 것과는 달리, 절대적인 등장 자체가 적기 때문이다. 괴수들의 수는 많지만, 단지 잠깐씩 모습만 드러낼 뿐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결국 부족한 괴수들의 분량을 전부 가져간 인간 캐릭터들이 너무나도 전형적이고 관습적이며 무의미했다는 점이 <고질라: 킹 오브 몬스터>의 비극인 셈이다. 개인적으로는 같은 제작비로 차라리 그냥 고질라와 기도라의 다큐멘터리를 찍는 것도 나쁘지 않았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고질라: 킹 오브 몬스터>는 아마 전편인 <고질라> 내지는 비슷한 분위기의 영화인 <퍼시픽 림>을 따라가는 것 내지는 압도적인 스케일과 물량으로 뛰어넘겠다는 의도로 제작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캐릭터의 구축 및 활용, 영화의 편집과 스토리 전개 등을 고려했을 때 전체적으로 <트랜스포머> 시리즈의 길을 따라 가버린 작품이 아닌가 싶다. 조금 세게 말해서 영화 초반부 20~30분 정도는 자도 영화를 이해하는데 큰 문제가 없기도 하고. 괴수물 팬이라면 괴수의 분량이 생각보다 적어서, 일반적인 영화 팬이라면 규모에 맞지 않게 너무나도 빈약한 스토리에 실망할 만한 영화가 <고질라: 킹 오브 몬스터>다.



D(Dreadful, 끔찍한)

올해 개봉한 멍청한 영화들 중 가장 거대한. 어떤 장면을 안 봐도 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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