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inoDAY Apr 07. 2019

콜레트

둘 중 하나는 파리에 오지 말았어야 했다

1. 영화는 영상과 사운드로 플롯을 전달하는 예술이다. 플롯은 보편적인 내러티브가 특정된 것이며, 플롯을 만드는 과정에서 중요한 요소들 중 하나는 입체적인 캐릭터의 구축이다. 플롯은 결국 인물의 내외적 갈등에 의해서 성립되는데, 여러 단면이 유기적으로 존재하는 입체적인 캐릭터는 플롯의 진행에 있어서 변수를 발생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입체적인 인물을 창조하는 것은 관객을 매료시키는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 필수적인 조건이며, 특히 실존인물을 조명하는 영화들에서 중요한 부분이다. 왜냐하면 이런 영화들에서 극 중 주인공은 곧 영화를 진행시키는 동력이기 때문이다. 



2. 캐릭터를 형성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인물의 대사, 행위, 행적 및 표정을 통해 그의 성격을 묘사하거나 제시할 수 있다. 타인과의 관계, 시대와 사회 안에서 살아가는 방식을 통해서도 그 인물을 그려낼 수 있다. 또한 배경음악이나 영화 속 사물 등 상징을 통해서도 한 인물의 다층적인 면모를 암시할 수 있다. 즉 영화 속 인물은 단지 배우의 연기뿐만 아니라 영화 다른 요소들이 함께 어우러지면서 탄생하는 것이다.



3. <콜레트>는 19~20세기에 여성 작가로 활동했던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를 조명하며, 특히 여성이라는 이유로 인정받지 못해 유령작가로 활동하던 그가 '클로딘'이라는 당시 최고의 인기 캐릭터를 만들어 낸 한 명의 작가로 발돋움하는 과정에 집중하는 영화다. 이를 위해서 영화는 '시대에 저항적이고 자주적인 여성'으로서의 콜레트를 원했고, 이를 위해 작품 안에 여러 장치를 만들어 놓기도 했다. 작중 콜레트가 당시 파리에 싫증을 느끼고, 자신의 이름으로 책을 출간하지 못하고, 진정한 사랑을 찾는 묘사가 그러한 부분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영화 속 콜레트가 매력적이고 입체적인 캐릭터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콜레트>가 묘사하는 그녀는 개인으로서의 시도니와 여성 작가로서의 콜레트라는 정체성이 연결되지 않고 충돌하기 때문이다. 


러닝타임 중 상당 부분 콜레트는 외도와 폭력을 일삼는 바람둥이 남편 윌리에게서 벗어나고자 하나 결국엔 그에게 의지하는 우유부단한 인물로 묘사된다. 하지만 이러한 묘사는 당시 사회의 통념에 어긋나는 삶을 살아가는(동성애라든가) 당돌한 인물인 콜레트와는 쉽게 연결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영화를 보면서 '이러한 개성이 과연 같은 인물에게서 동시에 나올 수 있는 것인가?'라는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다. 영화가 목표로 하는 캐릭터와 극 중에 실제로 등장한 캐릭터 간에 균열이 일어난 것이다. 물론 이는 콜레트의 성장을 극적으로 만들기 위한 장치일 수도 있으나, 결과적으로 시도니의 변화가 설득력 있게 제시되지 못하기 때문에 이는 그저 캐릭터의 일관성을 파괴하는 원인이 될 뿐이다. 또한 캐릭터가 확립되지 않다 보니 <콜레트>가 조명하는 그녀의 파격적인 삶은 몇 개의 에피소드를 통해 단편적으로 전달될 뿐 전체적인 영화로서의 매력을 이끌어내지 못한다.  



4. 실제로 <콜레트>는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의 변화를 설득력 있게 묘사하는데 실패했다. 그녀가 자신을 둘러싼 일반적인 삶에 싫증을 느끼는 것은 영화 초반부터 잘 묘사되지만, 그녀의 변화는 남편인 윌리의 영향이 너무도 크게 묘사된다. 한 인간의 주체성이 부각되지 않는 것이다. 또한 그녀의 변화를 시간 순으로 따라가면서 단순한 장면의 전환으로 드러내다 보니 콜레트의 변화는 '보일' 뿐 '공유'되지 않는다. 그 결과 뮤지컬 무대로 나아가는 마지막 장면에서 콜레트가 느낄 짜릿한 전율을 함께 느끼기는 쉽지 않다. 콜레트의 성취가 오롯이 그녀 자신만의 것으로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 머리로는 알겠는데 가슴으로는 그리 와 닿지 않는다고 할까. 결국 <콜레트>는 주체적인 한 여성의 성장기라는 중심으로부터 균형을 잃고 표류하는 영화인 셈이다.  



5. 사실 키이라 나이틀리만큼 '콜레트'에 어울리는 배우도 찾기 힘들 것이다. 끊임없이 변화를 시도한 결과 그녀는 '고전미를 지닌 자주적인 여성'이라는 정체성을 만들었고, 이러한 그녀의 연기는 출연작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좌우하고 동시에 영화의 품격을 끌어올리기도 한다. <콜레트>에서도 그녀는 시골처녀부터 당대 최고의 스타 작가에 이르기까지 훌륭한 연기를 보여준다. 쉽게 말해서 배우는 좋았는데, 연출이 뒷받침을 못한 것 같아 아쉽다. 


또한 <콜레트> 속에 순간적으로 빛나는 순간들이 있기는 하다. 20세기 의복과 양식으로 가득한 파리는 아름답고, 재치 있는 연출이 엿보이는 장면도 있다. 예를 들어 초반부 기차가 오가는 장면을 비슷한 구도에서 방향만 다르게 잡아내는 씬의 경우, 방향의 변화만으로 시간의 흐름, 스토리의 전개, 인물들의 심리 변화 등을 직관적으로 제시하는 영리한 연출과 편집이 어우러진 씬이다. 하지만 영화 전체의 문제점을 감싸기에는 이러한 재치가 턱없이 부족했고, 그래서인지 <콜레트>를 보고 난 후 유독 아쉬움이 길게 남았던 듯싶다. 



P (Poor 형편없음)

개인사와 시대상 사이에서 정처 없이 넘실거리는

 




매거진의 이전글 샤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