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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noDAY May 20. 2019

왕좌의 게임 시즌 8

용두사미로도 부족해서 용의 머리마저 잘라버린

1. 2019년은 영화 팬들에게 행복하지만 동시에 아쉬운 한 해로 기억되지 않을까 싶다. 왜냐하면 그간 많은 사랑을 받은 굵직한 시리즈들이 작별을 고하는 해이기 때문이다. 올해 초 <드래곤 길들이기 3>를 시작으로, <어벤져스: 엔드게임>에 이어 <엑스맨: 다크 피닉스>, <스타워즈: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 등 숱한 시리즈들이 마지막 인사를 전할 예정이며, 이 중 <드래곤 길들이기 3>와 <어벤져스: 엔드게임>은 최상의 마무리라는 극찬과 많은 팬들의 뜨거운 박수 속에 떠나갔다. 하지만 올해 작별을 고하는 또 하나의 작품은 박수와 함께 퇴장하는 명예를 누리지 못할 것 같다. 그 작품은 (비록 영화는 아니지만) 바로 HBO의 드라마, <왕좌의 게임>이다.




2. 사실 <왕좌의 게임>은 드라마가 소설의 진행 속도를 뛰어넘은 시즌 6과 7에서부터 스토리 전개, 캐릭터 묘사와 연출에 있어서 많은 비판을 받으며 그 전 시즌들에 비해 부족한 점이 많다는 평을 듣고 있었다. 인물들의 행적에 대한 묘사가 부실해 스토리의 전개에 개연성이 상실되는가 하면, 갈등 세력 간의 힘의 균형이 일관되게 묘사되지 않아 전투 시퀀스에서 무리한 연출이 남발되기도 했고 특정 캐릭터들의 경우 몇 년간 쌓아온 그들의 개성이 붕괴되어 버리기도 했다.


<왕좌의 게임> 시즌 8은 지난 시즌들의 단점을 정확히 계승, 발전시켰다. 말도 안 되는 군대의 이동 속도, 에피소드 간에 널뛰는 군대 간의 힘의 균형, 메드 퀸 대너리스를 비롯해 브리엔느와 같은 캐릭터들의 갑작스러운 변화, 나이트 킹과 백귀 대 인간의 전투에서처럼 시즌 내내 복선 회수를 포기한 개연성을 대부분 상실한 스토리 전개 등은 지난 시즌을 정확히 계승해 크게 달라진 점이 없는 단점이다.


하지만 시즌 8은 이에 그치지 않고 영상미만을 강조해 맥락이 맞지 않는 전투 시퀀스, 이해할 수 없는 캐릭터들의 행동(존, 브랜, 티리온, 세르세이, 제이미 등)과 비중, 킹스 랜딩 파괴처럼 비중 조절에 실패한 몇몇 시퀀스들까지 전체적인 제작과 편집에서까지 문제점을 두루 드러내며 더욱더 실망감을 키우고 말았다. 그저 몇몇 장면에서의 영상미와 'Night King'으로 대변되는 Ramin Djawadi의 음악만이 제 몫을 다했을 뿐. 근 10년 간 최고의 드라마 중 하나였던 <왕좌의 게임>의 참혹한 말로라고 해야 할까. 개인적으로 장르의 균형점을 놓쳐버린 시나리오가 이 모든 문제점들근원이라고 생각한다.



3. <왕좌의 게임>은 부분적으로 판타지로 보이는 측면이 존재한다. 용, 요정, 백귀와 다이어울프와 같은 초자연적인 존재들과 중세 시대를 배경으로 한 시각적인 측면에서 <반지의 제왕>을 비롯해 여러 판타지 영화들을 연상시키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왕좌의 게임>을 온전히 판타지로 이해하는 것은 잘못된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왕좌의 게임>은 도상적인 요소에서 판타지를 차용했을 뿐, 내러티브 상으로는 일반적인 판타지들과는 전혀 다른 결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판타지 영화들은 선과 악의 대립 속에서 선의 편에 속하는 주인공이 다른 인물들과의 모험을 통해 성장해가며 왜 선이 악을 이길 수밖에 없는지 그 이유를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사실 유명한 판타지 작품들은 다 그렇다). 그리고 그 이유는 주로 사랑, 우정, 작거나 적은 존재의 소중함 등이 해당된다. 하지만 <왕좌의 게임>은 기본적으로 선과 악이 명확하지 않다. 주요 인물들이 속한 스타크 가문이 그나마 선에 해당한다고 볼 수도 있으나, 라니스터 가문의 입장에서 보면 그들은 명예와 대의를 쫓는 멍청이들에 불과하며, 대너리스의 입장에서는 그들도 반역자에 불과할 뿐이고, 와일들링들의 입장에서도 애초에 그들을 장벽 밖으로 내쫓은 적들일 뿐이다. 그렇기에 <왕좌의 게임>은 모든 주인공들이 제각기 추구하는 신념과 목표를 위해 서로 다른 방법으로 부딪히는 정치 스릴러 내지는 드라마에 가까운 작품이다. 단지 판타지의 요소들로 포장되었을 뿐.



4. 그렇기에 <왕좌의 게임>의 주요한 인기 요인은 뚜렷한 개성을 지닌 인물들 간의 갈등과 대립이었다. 설사 같은 가문에 속한 인물들이라 해도 한마음으로 움직이는 경우를 찾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그 안에서 넘쳐나는 중상모략으로 인해 드라마가 예측 불가능하게 전개되는 것, 지나치게 사실적이고 잔혹하며 선정적인 중세 시대의 묘사는 덤이다(에다드 스타크가 시즌 1에서 죽어버린 것이나 '피의 결혼식'이 가장 대표적인 예시).


따라서 시즌 8에 들어서 드라마의 갈등 축을 백귀 대 인간, 그리고 대너리스 대 세르세이라는 선과 악의 대립 구도로 무리하게 좁힌 시나리오 작가들의 선택은 작품의 장르적 정체성을 완전히 붕괴시킨 선택이었다. 장르적 재미를 기대한 시청자들을 배신해 버린 것이다. 캐릭터들 간의 갈등과 대립이 제대로 종결시키지도 않은 채 모든 인물들이 흔한 판타지 영화 속 주인공처럼 대의를 위해 전쟁에 임하는 명예의 용사들로 만들어 버렸으니, 예상과도 기대와도 전혀 다른 스토리를 맛본 팬들의 실망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수년간 겨울을 기다려 온 이유가 없어졌으니. 이렇게 장르의 균형도 깨지고, 개연성도 상실하고, '왕좌의 게임'에서 돌연 과두정과 민주주의 만세를 외치며 메시지와 주제의식까지 잃어버린 시나리오를 가지고 캐릭터들을 어떻게든 살려낸 배우들의 열연이 대단할 뿐이다.



5. <왕좌의 게임>은 프리퀄과 스핀오프를 비롯해 앞으로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완성도와는 반비례로 시즌이 나올 때마다 시청자 수가 늘어났으니 합리적인 선택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왕좌의 게임> 시즌 8을 접한 팬들 중 과연 몇이나 본편 이전의 이야기나 웨스테로스 역사 속 인물들의 이야기를 보고 싶어 할지는 의문이다. 그 모든 사건들이 얼마나 무의미하고, 무 맥락이고, 이데올로기적인 방식으로 귀결되는지를 다 지켜본 이후니까.  


D(Dreadful, 끔찍한)

시청자도 알고 팬들도 아는 '장르'를 작가들만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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