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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noDAY Jun 18. 2019

블랙 미러 시즌 5

 미래와 독창성을 내려놓고 현실과 메시지를 손에 쥐다

1. 블랙 미러는 현재 우리가 가장 많이, 오랫동안, 친숙하게 접하는 존재일 것이다. 요즘 사람들이 스마트폰, 랩탑, TV, 컴퓨터를 넘어서 VR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블랙 미러(검은 화면)와 얼굴을 맞대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블래 미러> 역시 제목답게 작금의 세태를 반영해 우리 주변의 미디어들이 근미래에 어떻게 발전할지, 그 미디어가 바꾸어 놓는 사회상은 어떠할지, 기술의 발전과 사람들의 도덕 및 의식 수준의 정체 사이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개인적/사회적 딜레마를 펼쳐 보이는 SF 옴니버스 드라마다.


<블랙 미러>는 현재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 근미래를 배경으로 설정해 시청자들의 경계심, 불편함, 긴장감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는 효과가 탁월하다는 점과 대부분의 에피소드에서 큰 반전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타 드라마와 차별화되는 독창성을 지니고 있다. 예를 들어 지난 시즌 마지막 에피소드였던 <밴더스내치>가 보여준 멀티 엔딩 역시 미디어 기술의 미래를 다루는 <블랙 미러>이기에 더 자연스러우면서도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기도 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접근하면 <블랙 미러> 시즌 5는 기존 팬들에게는 살짝 심심한, 입문자들에게는 충분히 스릴 넘치는 드라마일 듯싶다. 



2. 시즌 5의 첫 번째 에피소드는 가상현실과 VR 게임을 소재로 하는 <스트라이킹 바이퍼스>다. 이 작품은  VR 세계 안에서 게임 이상의 성적 욕구를 해소하게 되는 등장인물들의 극심한 개인/윤리적 고뇌가 인상적인 에피소드라 할 수 있다. 


<스트라이킹 바이퍼스>는 가상세계와 현실의 경계선을 아슬아슬하게 넘나들며 시청자들을 불편하게 만든다. 동성애와 이성애에 대한 뿌리 깊은 고정관념에 도전하고, 가족과 부부라는 '자연스럽다고 인식되는' 인간관계에 대해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며 여러 부분에서 '선'을 건드리는 방식으로 극의 갈등을 심화시키기 때문이다. 결국 이 에피소드는 가상 세계가 (모든 종류의 인간관계를 포함하는) 현실의 모든 것을 재현하고 역으로 현실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지 없는지에 관한 이야기다. 이렇듯 도전적인 내러티브를 어깨에 짊어진 배우는 MCU에서 '팔콘'으로 유명한 앤소니 매키인데, 그의 섬세한 내면 연기 덕분에 캐릭터의 혼란스러운 감정이 화면 너머 시청자에게 고스란히 전달된다. 


다만 <스트라이킹 바이퍼스>에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 최고조에 이른 갈등을 해소하는 과정이 조급하고 안전한 방식이라는 사실이다. 이 에피소드에서 인물들의 갈등이 해소되는 과정은 불과 5분이 걸리지 않는다. 또한 사회적으로 논쟁거리가 될만한 소재들로 형성시킨 갈등과 대립, 긴장감은 그 소재들을 굳이 왜 등장시켰나라는 생각이 들만큼 편의적으로 마무리된다. 


유튜브에서 나오는 넷플릭스 광고. 누가 봐도 영화관을 겨냥하고 있다는 것이 명확해 보인다.


이렇듯 도전적인 시작과 편의적인 결말은 '넷플릭스'라는 서비스의 현재가 투영된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넷플릭스는 본질적으로 영화관으로 가는 현실의 경험을 스트리밍을 기반으로 하는 가상세계의 영화관으로 대체하는 서비스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이 작품의 결말을 보다 보면 오리지널 영화들을 오프라인에서 개봉하고 영화제들에 출품하면서 주류 영화 산업과의 공존을 꾀하는, 자신들의 본질과는 반대의 행보를 걷는 현재 넷플릭스 자신의 모습을 담은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도 할 수 있다. 더 나아가서 '과연 현실은 가상을 넘을 수 있을까? 가상은 현실을 대체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의 경험과 넷플릭스의 현재까지 대우를 보면 실패겠지만, 과연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누가 알까? <스트라이킹 바이퍼스> 속 가상세계를 접할 때 느끼는 불편함을 영화인들은 넷플릭스를 보면서 느끼지 않았을까?'라는 질문들이 뇌리를 떠나지 않기도 한다.



3. 시즌 5의 세 번째 에피소드는 인공지능 AI와 사이버 가수를 소재로 하는 <레이철, 잭, 애슐리 투>다. 하지만 제목에서부터 느껴지듯 이 에피소드는 새로운 미디어라는 기술적 소재가 주는 재미보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그림자 속에서 팝스타인 '애슐리 O' 그리고 그녀의 팬인 레이철과 잭이 경험하는 변화와 성장의 모험담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다. 


연예인이란 존재는 결국 이미지를 만들고 그 이미지를 사랑하며 소비하는 팬들에 의해 가치가 매겨지는 상품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성공한 연예인이 그 위치까지 자신을 이끈 특정한 이미지를 버리고 진짜 자신의 모습, 내면에 있는 스스로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할 때 그가 속한 회사의 관계자들은 연예인과 긴장 및 대립 관계에 있을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연예인 개인의 심리적 갈등은 해소될지 몰라도 팬들이 새로운 이미지를 소비하지 않을 경우 상품가치가 하락해 수익이 줄어드는 결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레이철, 잭, 애슐리 투>는 자기 정체성의 유지를 원하는 연예인과 최대 수익을 창출하려는 회사 간의 대립이라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본질을 꿰뚫어 보며 이를 표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AI와 사이버 가수를 이용한다. 이 에피소드의 주제가인 'Head like a hole'의 가사를 보면 작품의 주제가 더 잘 보이기도 한다. 


God money I'll do anything for you
돈이시여, 당신을 위해선 무엇이든 하겠나이다
God money just tell me what you want me to
돈이시여, 뭐든 말씀만 하시옵소서
God money nail me up against the wall.
 돈이시여, 절 속박하여 주소서
God money don't want everything he wants it all. 
그 모든 것을 원하시는 돈이시여
No you can't take it 
가져갈 수 없어
No you can't take it 
가져갈 수 없어
No you can't take that away from me 
내게서 그걸 가져갈 수 없어
Head like a hole, Black as your soul. 
텅 빈 머리, 시커먼 영혼
I'd rather die than give you control.
 네 노예가 되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어



이러한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근본적 갈등을 통해 새로운 미디어 기술을 소개한 뒤, <레이철, 잭, 애슐리 투>는 마치 방탄소년단의 성공 과정을 연상시키는 스타와 팬의 관계 형성, 소통과 성장을 통해 여성 캐릭터들의 유대와 변화를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또한 마일리 사이러스라는, 이미지 변신의 대명사로 통하는 배우를 통해 배우 본인의 자전적 이야기와 같은 느낌을 주면서 몰입감을 끌어올리기도 한다. 다만 이처럼 미래의 새로운 기술을 스토리 전개를 위한 수단으로만 활용하다 보니 <블랙 미러>만의 고유함이 약해진 느낌은 분명하다. 또한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통해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를 펼치는 것과는 별개로 에피소드 전개에 있어서 개연성을 해치는 몇몇 장면들은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4. 시즌 5의 두 번째 에피소드는 <스미더린>으로 <더 테러 라이브>와 <터널>과 같은 영화들을 연상시키는 사회비판적 성격을 지닌 스릴러 장르의 작품이다. 페이스북과 같은 소셜 미디어로 인해 개인과 사회가 겪게 되는 변화와 창업자조차 통제하기 힘든 소셜 미디어의 영향력에 대한 묘사를 적절한 서스펜스와 휴머니즘으로 풀어낸 에피소드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이번 시즌에서 가장 이질적인 에피소드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미래를 배경으로 새롭게 등장하는 신기술을 다루는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현재 2019년 시점에서 볼 때 2018년 과거로 되돌아간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간 <블랙 미러>가 미래의 기술이라고 예상되는 것들에 초점을 맞춘 것과는 달리, <스미더린>은 우리가 이미 목격하고 실생활에서 널리 사용하는 기술을 주요 소재로 다루고 있다. 즉, <스미더린>은 현재 시점에서의 이야기를 통해 과연 우리가 미래에 등장할 신기술들, 특히 그중에서도 SNS의 긍정적인 면만을 활용할 수 있는 대비책을 마련했는지 질문하는 것이다. 




실제로 소셜 미디어는 본래 타인 간의 소통을 용이하게 하려는 수단이었지만, 현재 보이는 현상은 결코 그렇지 않다. 2016년 미국 대선이나 2017 한국 대선에서도 드러났듯이 개인화된 알고리즘을 탑재한 sns로 인해서 사람들은 다양한 집단이 아니라 본인이 속한 유사한 집단 안에서만 교류하며 사고가 편향되는 경우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즉, 필터 버블에 둘러싸이고 있는 것이다. 또한 지나친 SNS의 사용으로 인해 직접적인 인간관계보다 모바일과 온라인에서의 간접적인 인간관계가 더 잦아지면서 사람들의 사회성이 저하된다는 우려를 사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소셜 미디어의 문제점을 과연 우리는 정확히 인지한 채로 사용하고 있는지. 한 사회를 뒤엎을 수도 있고 <스미더린>의 주인공 마냥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무너뜨릴 수도 있는 이 무기를, 그리고 사용하고 있는 자기 자신을 과연 두려워하고 있는지. <스미더린>은 개인적인 소셜 미디어 사용 실태부터 사회 전체의 문제까지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준다. 


작품 내적으로는 그 연출이 상당히 인상적이다. 제한된 장소와 인물들을 활용해 서스펜스를 끌어올리고, 인물 간의 직접적인 대면이 아닌 미디어를 이용한 간접적인 소통을 보여주면서 현 소셜 미디어 사용 세태를 비판하는 주제의식을 잘 살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열린 엔딩으로 매듭지어서 시청자의 상상력을 극한으로 자극시킨 것도 작품의 전체적인 분위기 상 적절한 선택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BBC 드라마 <셜록>에서 짐 모리어티 역으로 열연한 앤드류 스콧의 연기가 또 한 번 돋보이는 작품이며 개인적으로 <블랙 미러> 시즌 5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에피소드이다. 



5. <블랙 미러> 시즌 5 각각의 에피소드는 충분히 빠져들어서 볼만하다. 다만 개연성이 부족하거나 완성도가 아쉬운 에피소드가 있다는 점, 극단적인 미래를 다루지 않는 대신 현재와 유사한 근미래를 배경으로 현실감을 높인 점, 그리고 이미 존재하는 기술들을 소재로 다루다 보니 새로운 미디어 기술에서 비롯되는 개인적/사회적 딜레마라는 <블랙 미러>만의 독창적인 매력이 희석된 경향이 있다는 점에서 보는 관점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블랙 미러> 시즌 5는 진일보한 새로운 미디어들을 통제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내적 갈등, 사회/윤리/법률적 딜레마를 조금 더 깊게 들여다보면 좋지 않았을까라는 아쉬움이 남는 시즌일 것 같다. 



E(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블랙 미러>이기에 조금은 심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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