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inoDAY May 19. 2019

머니볼

이카로스의 날개

1. 아들과 아버지가 날아오른다. 양쪽 팔에 날개를 매단 채 지중해 바다 위를 자유로이 활공한다. 긴 시간 동안 갇혀 있었기 때문일까, 아들은 아버지의 당부를 잊은 채 점점 더 태양 가까이 날아오른다. 조마조마하던 아버지 다이달로스의 눈에는 녹아내린 밀랍, 흩어지는 깃털, 단말마의 비명과 아들을 집어삼킨 바다의 흰 거품 만이 담겨 있을 뿐이었다. 미궁에서의 탈출을 꿈꾼 이카로스의 날개는 완전하지 않았다. 



2. 메이저리그에서도 이카로스의 날개를 원한 사람이 있었다. 오클랜드 애틀레틱스의 단장인 '빌리 빈'이다. 과거에 야구계의 잘못된 관행으로 선수생활을 망쳤던 그는 '머니 볼'이라는 새로운 날개를 알게 된다. 머니 볼은 구체적이지 않고 막연하게 야구에 접근하던 업계의 감과 관습을 거부하고, 경제적 효율성과 통계로 야구에 접근하는 새로운 방식이다. 하위권이라는 감옥에서 벗어나 우승이라는 탈출을 맛보고 싶었던 빌리와 오클랜드에게 이 새로운 날개는 20연승이라는 메이저리그 신기록을 선사한다. 하지만 태양에 너무 가까이 다가갔기 때문일까. 오클랜드는 우승이라는 목표를 이루는 데는 실패하며 추락한다. 여기까지가 실제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이야기다. 하지만 영화 <머니볼>이 신경 쓴 것은 실패가 아니다. 



3. <머니볼>은 빌리의 실패 그 이후에 집중한다. 영화 속 빌리는 다행히도 이카로스와는 달랐다. 아버지 다이달로스가 이카로스를 붙잡아 주지 못했던 것과는 달리 빌리에게는 그를 붙잡아 둘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딸 케이시와 그의 동료인 피터, 그리고 야구선수로서 실패했던 과거의 빌리 이 3명은 빌리 빈의 실패가 실패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준다. 그가 우승을 못해서 실패라고 했던 것과 달리, 그처럼 잘못된 선택을 하는 야구 선수들을 줄일 수 있는 방식인 머니볼은 이미 메이저리그에 정착하면서 그처럼 실패하는 유망주들이 줄어들었기에 성공이라는 사실을 일깨워 준 셈이다. 



이렇듯 빌리의 과거와 현재를 엮어낸 <머니볼>은 브래드 피트와 조나 힐의 불과 물, 뜨거움과 냉정함 상극의 연기를 통해 안정적인 연기 합이 인상적이다. 이처럼 빌리 빈과 피터 브랜드가 만들어내는 앙상블은 마치 버디 무비의 그것을 연상시키는 대목이기도 하다.  


또한 실화라는 소재가 갖는 한계를 극복하는 영화의 현재와 과거를 넘나드는 각본과 영리한 플래시 백을 통한 편집, 긴장감과 현장감 넘치는 연출 또한 눈여겨볼만하다. 이를 통해 <머니볼>은 성공의 아픔, 실패의 아름다움과 변화의 가능성을 효과적으로 제시하는 데 이를 가능하게 한 '베넷 밀러' 감독과 작가 '아론 소킨'의 뛰어난 역량을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4. 실패에도 성공이 존재하고 실패가 곧 성공이라는 <머니볼>의 메시지는 사실 말 그 자체로는 모순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지점은 <머니볼>에 모순점이 넘쳐난다는 것이다. 아빠한테 '바보'라고 노래로 응원하면서 정작 사람 앞에서 노래 부르지 않는 딸, 야구 경기를 보지 않는 메이저리그 구단 단장, 출루율 때문에 영입했지만 홈런을 쳐주는 선수와 빌리와 첨예하게 대립하나 명장이라 극찬받는 감독까지. 심지어 빌리는 더 많은 연봉과 지원이 가능한 보스턴 레드삭스의 제의를 거절해버린다. 왜 이러한 아이러니한 상황들이 영화 속에 넘쳐날까. 


<머니볼>은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자본주의 헤게모니의 원리를 잘 보여준다. 사람을 포함한 모든 것을 돈과 숫자로 바꿀 수 있는 이 체계는, 돈과 숫자가 보여주는 결과만이 발언권을 가질 수 있는 공간이다. 쉽게 말해서 돈이 안되면, 이익을 내지 못하는 것들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의미다. 하지만 작중 여러 모순적인 에피소드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숫자와 돈으로 바꿀 수 없는 가치가 있다고, 또 결과가 전부는 아니라고도 말한다. 영화 속 모든 것이 합리적이고 효율적으로 돌아가지 않는 것처럼. 이처럼 <머니볼>은 박복한 세상을 사는 우리의 어깨를 덤덤히 두드려주는 그런 작품이다. 


Life is maze and Love is riddle. 
Slow it down, Make it stop. 
I'm a fool out of love.




E(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세상. 그래서 아직 살 수 있는 거지. 

매거진의 이전글 퍼시픽 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