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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noDAY May 19. 2019

퍼시픽 림

정체된 오마주

1. 우리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수많은 미디어에 노출된다. 라디오, TV, 책, 신문, 인터넷, 스마트폰, 컴퓨터... 하나씩 세기엔 끝이 안 보일 정도로. 재밌는 것은 세대별로 그 성향을 결정짓는 미디어가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라디오, TV, 인터넷 세대처럼. 즉 이 세대들은 정신적으로 성장기에 주로 사용한 미디어들의 영향을 깊게 받으며,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이러한 영향을 남은 인생에서 마주하게 된다. 길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퍼시픽 림> 역시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는 영화다. 1980년대에 TV를 통해서 일본 문화를 접한 한 아이가, 당시 그 감흥을 로망으로 간직해 만들어낸 영화. 그것이 바로 <퍼시픽 림>이기 때문이다.



2. <퍼시픽 림>은 일본 문화, 구체적으로 <고질라>와 같은 괴수물과 <에반게리온> 같은 메케닉 애니메이션을 충실히 오마주한 작품이다. 작중 '카이주'가 하늘이 아닌 바다에서 등장한다는 점은 흔한 할리우드 SF와는 차별점을 지니는 대목이자, <고질라>의 오마주다. 카이주가 입에서 광선을 뿜는 요소들이나 그 자체로 거대한 크기 역시 마찬가지다.


'카이주'에 맞서 싸우는 '예거들'의 존재도 또 다른 오마주인 것은 다르지 않다. 거대 로봇의 머리에서 인간 조종사들이 괴생명체와 같은 위협에 맞서 싸우는 것은 숱한 일본 매체가 다룬 이야기들이다. 그 과정에서 '드리프트'라는, 두 조종사가 서로의 신경계를 연결해 기억과 감정을 공유한다는 설정도 일본 애니메이션을 접한 관객들에게는 그리 어색한 설정이 아니다. 이에 더해 영화의 개그적 요소를 담당하기도 하는 매드 사이언티스트 캐릭터나, 일본인인 여자 주인공 등은 <퍼시픽 림>의 기원과 영화의 지향점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드러낸다.



3. 이처럼 장르적 재미에 충실한 영화인 <퍼시픽 림>은 그렇기에 특히 액션씬에서 그 진가를 자랑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퍼시픽 림>의 액션은 육탄전이다. 육중하고 느린 움직임이지만 한 번 한 번의 예거와 카이주의 충돌이 만들어내는 그 타격감이 일품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액션 연출은 비슷한 부류의 영화인 <트랜스포머>가 로봇의 속도감 있는 움직임에 초점을 맞춘 것과는 정반대의 연출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 <퍼시픽 림>은 영화 내내 스케일을 강조한다. 영화 초반부 금속 탐지 중인 할아버지와 소년 앞에서 갑자기 등장하거나, 홍콩 시가지에서 유조선을 한 손에 들고 싸우며 거침없이 바다로 걸어 들어가는 장면들은 대표적이다. 이 장면에서 카메라들은 아래에서 위를 바라보는 시점을 유지하면서 예거의 웅장함과 위압감을 시각적으로 극대화시킨다. 물론 중반부 홍콩 액션 시퀀스가 너무 강렬해서 후반부 하이라이트의 긴장감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거나, 배경이 너무 어둡다거나, '집시 데인저'를 제외한 나머지 예거들의 역할이 적다는 문제들도 존재한다. 그럼에도 <퍼시픽 림>의 액션은 과거 미디어의 그것을 재해석해냈다는 점에서 감독과 같은 로망을 지닌 관객들에게는 황홀한 만족감을 전해주기 충분하다.



4. 다만 영화가 전해줄 수 있는 메시지가 다소 안일한 스토리 전개로 전해지지 못했다는 점은 결정적인 단점이다. 인물의 설정은 충분히 흥미롭다. '집시 데인저'의 파일럿인 롤리와 마코는 각자 콤플렉스를 지닌 인물들이다. 롤리는 형을 카이주와의 전투에서 잃었고, 마코는 카이주의 침공으로 인한 직접적인 피해자다. 사실 작중 모든 인물들은 카이주와의 전쟁으로 인한 직간접적인 피해자이며, 두 주인공은 이들을 상징하는 인물들이다.


심리학자 구스타프 융은 정신적 외상에서 비롯된 콤플렉스는 외부에서의 자극으로 인해 다시 발현되며,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충분히 강한 자아의식은 콤플렉스의 에너지를 조절해 환상이나 충격에 빠지지 않을 수 있으며, 이는 충분한 외적 경험과 연습으로 가능하다고도 덧붙인다. 그렇기에 작중 '드리프트'라는 설정은 이러한 정신적 외상을 드러냄과 동시에 치유되는 과정을 묘사할 수 있는 훌륭한 도구였다.  롤리나 마코가 어떻게 서로 연대하고 유대감을 쌓으며 콤플렉스에서 벗어나는지는 물론, 피해자 간의 유대를 통한 좌절과 절망의 극복이라는 상징적인 비유로까지 활용될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장르적인 측면에서도 일본의 괴수물이나 메케닉 애니메이션이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의 도쿄 대공습으로 인한 정신적 외상에서 비롯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괴물에 맞서기 위해 괴물을 만들었다'는 영화의 캐치프레이즈는 단지 시각적인 것이 아닌 심리적인 측면에서도 조명됐어야 하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그렇기에 델 토로 감독이 상이한 장르를 융합시켜서도 훌륭한 작품을 제작할 수 있고, 본인만의 독특한 관점으로 동화 안에서도 잔혹미를 제시할 수 있는 감독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퍼시픽 림>의 스토리 전개는 안일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5. 사실 <퍼시픽 림>은 시각적으로 너무나도 훌륭한 영화다. 그래서 내러티브 상의 문제가 보완됐다면 액션의 감흥도 더욱 좋았을 것이 너무나도 분명하기에 유독 아쉬움이 크게 남기도 한다. 또 한 세대의 로망을 영상화 한다는 것이, 그리고 그 이면에 남아있는 역사적 아픔까지 보듬어 창의적으로 재현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려주기도 한다. 그래서 <퍼시픽 림>은 황홀함, 만족감, 아쉬움이 공존하는 영화다.


A(Acceptable, 무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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