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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noDAY May 22. 2019

주토피아

유토피아의 차별, 허상과 희망

1. 2차 세계대전을 종식시킨 것은 일본에 떨어진 원자폭탄 2개였다. 하지만 그 폭탄들이 단순히 전쟁만 종식시킨 것은 아니었다. 2차 세계대전의 종식은 그전까지 서구 사회를 지배하던 '이성' 중심의 '이상향'에 종말을 고하는 분기점이었기 때문이다. 르네상스 이후 과학 기술의 발달에 발맞춰서 (최소한 서구 사회에서) 사람들은 이성을 최고의 가치로 두고, 인간은 이성적인 존재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으며 인간 이성을 통해 이상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도 '국제 연맹'을 만들어 세계평화를 위한 시도가 있었던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그러나 히틀러의 등장과 2차 세계대전의 발발, 전쟁 중 발생한 숱한 반인륜적 행위는 인류의 이성이 얼마나 나약한지와 각종 편견, 고정관념, 차별로 나타난 인류의 야만성을 널리 일깨워 주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이루어진 각종 인권 운동, 예술계의 포스트 모더니즘과 지역주의는 이러한 인류의 야만성에 충격을 받아 이루어진 움직임으로 불 수도 있다. 최근에도 이른바 '테러와의 전쟁' 이후의 모습을 보면, 인간이 이성을 통해 야만성을 잘 통제하고 있는지 그리고 인간 이성이 기초가 되는 유토피아가 과연 가능할지 의심스러운 부분이 많다.



2. '주토피아'는 이성적 사고를 바탕으로 야만성을 통제할 수 있는 동물들의 유토피아다. 각기 다른 지역에 사는 동물들이 한데 모여 약육강식의 질서가 아닌 평등하고 공정한 기회가 주어지는 이상적인 사회질서 안에서 살아가는 도시. <주토피아>는 영화 초반부터 대사와 영상을 통해 '주토피아'라는 이상 세계가 얼마나 완전한지를 의식적으로 강조한다. 하지만 동시에 <주토피아>는 이 이상 사회 이면에 숨어있는 야만성의 흔적을 은연중에 드러낸다.


영화의 후반부 주토피아 세계에서는 핵폭탄이나 다름없는 모종의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고, 이 사건들은 '주토피아'라는 이상 세계가 얼마나 불안한 주춧돌 위에 쌓여있던 것인지를 보여준다. 그전까지 주류 사회를 지배해오던 육식동물 및 큰 동물들의 몰락과 차별받던 초식동물 및 작은 동물들의 경계와 반발이라는, 은연중에 나타나던 이성화된 동물들의 야성과 의심이 수면 위로 드러나며 급격한 변화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불완전한 토대가 쌓은 이상 사회가 허상임이 드러나는 작중 이야기가 단지 영화 속 동물들만의 이야기는 아닌 것이 의미심장하다.



3. <주토피아>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두 중심인물인 주디와 닉을 구축하고 활용하는 방식이다. 주디의 경우 도시 외곽 출신의 주토피아라는 이상 사회가 가능하다는 강한 믿음을 지닌 캐릭터다. 평등한 기회와 공정한 대우를 원하는 인물로 '가시적인 차별'에 반대하는 인물이자 각종 차별에도 주토피아의 주류 사회에 당당히 입성한 인물이다. 반대로 '닉'은 주토피아에서 자랐음에도 그 사회에 이면에 가득한 편견과 '비가시적인 역차별'에 노출되었던, 그래서 주토피아라는 이상 사회는 없다고 믿는 캐릭터다. 육식동물이기에 초식동물로부터 배제당하고, 여우이기에 같은 육식동물도 믿어주지 않는 주류 사회에서 완전히 벗어난 인물이기도 하다. 주디의 안티테제인 셈이다.


영화는 상반된 둘의 조합을 통해 각자의 변화와 성장은 물론, 변증법적 정반합의 논리를 통해 주토피아라는 사회가 어떻게 한 발자국 더 전진하는지를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예를 들어 주토피아로 떠나는 주디는 부모님으로부터 여우 퇴치 스프레이를 받는다. 이는 육식 동물과 초식 동물 사이의 완전한 화해와 갈등의 종식이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또 닉이 경험했던 편견과 고정관념을 드러내는 소재이다. 이 스프레이를 받은 주디 역시 닉과의 동행 이후 그를 파트너이자 친구로 믿지만, 결정적인 순간 그녀의 인식 저변에 있던 고정관념을 드러내고야 만다. 닉도 마찬가지로, 주디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을 정도로 그녀를 신뢰하는 듯 보이나 결국엔 그 피해의식으로 인해 그녀와의 관계를 지속하지 않는다. 갈등, 대립, 충돌을 경험했던 둘은 그럼에도 종국에 완전히 오해를 풀고 다시 한번 친구이자 파트너로 지내게 된다. 이러한 과정은 주토피아 속 동물들이 야만성과 의심에서 벗어나 이성적인 사고를 토대로 '이상'을 다시 쌓아 올리는 과정을 상징하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4. 주디와 닉을 단순히 귀여운 동물 캐릭터로 활용한 것이 아니라는 점은 관객이 그들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관객들에게 이 둘은 자신들을 동일시할 수 있는 인물들이다. 왜냐하면 사실 사회 속 거의 모든 개인들은 주디 아니면 닉에게 자신의 상황을 대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여성의 경우 만연한 사회적 차별에 저항하는 주디에게 자신의 상황을 대입시킬 수 있다. 남성들의 경우 자신이 속한 남성지배적 구조 안에서도 존재하는 역차별을 경험할 경우 닉과 자신을 동일시할 수 있다. 동성애자, 장애인, 노인, 저소득층 모두 마찬가지다. 주디와 닉은 사회 내에 존재하는 정치적 약자들은 물론, 정칙적 강자의 집단 내에 있을 소수자들까지도 모두 고려하는 캐릭터인 것이다. 사실 사회/정치적 차별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는 작품이 근래 많이 나오고 있지만, 상업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까지 깊은 통찰이 이루어지고 그 통찰을 또 감정적인 방식으로 손쉽게 풀어낸 작품이 또 있는지는 의문이다. 성인용 애니메이션이라 불리면서 장기 흥행을 이룰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이지 않을까.



5. 이렇듯 <주토피아>는 사실 애니메이션이 다루기엔 꽤 묵직한 주제들을 환기시키는 작품이다. 차별, 그 안에 내재된 역차별, 이성과 야만성의 대립 그리고 유토피아의 허구성까지. 자칫하면 영화의 주제와 톤이 따로 놀 수도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주토피아>는 주디와 닉이라는 콤비를 통해 버디 영화와 추리물의 내러티브를 차용해 스토리 전개를 해나가는 영리한 선택을 통해 이러한 잠재적 문제를 해결해낸다. 대립되는 인물 상을 특정 장르의 관습적 전개 하에 각자의 인물사와 연계하여 전달하고, 이 과정에서 감정적이면서 효과적이고 자연스럽게 영화의 메시지와 주제의식도 제시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정도로 영리하고 사려 깊은, 거의 모든 면에서 완벽한 어른의, 어른에 의한, 어른을 위한 진짜 우화가 또 나올 수 있을지. <주토피아>는 이상향을 꿈꾸는 모든 이가 봐야 할 영화다.


O(Outstanding, 특출남)

그래도 동의할 수 있는 이상향이 있다는 것은 희망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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