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게 뭐길래 좋아하는 것도 못할까
1. 사람은 모두 다르다. 성격도, 신체조건도, 생긴 것도, 잘하는 것도, 좋아하는 것도 전부 다르다. 단지 자연의 법칙이라는 점이 이유일 것이다. 다양한 유전자를 통해서만 생존의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으니(그래서 근 미래에 바나나를 먹지 못할 거라는 우려가 나오기도 하고). 따라서 각자 가진 것을 잘 활용해서 사는 것은 자연의 법칙에도 부합하고, 자아실현도 이룰 수 있는 일석이조가 분명하다. 그런데 그렇게 발길 닿는 대로, 여행을 왔다가 떠나듯 좋아하는 것을 따라 사는 것이 왜 이리도 힘들까. 마음 가는 대로 살 수 없는 세상, 이 세상이 <소공녀>의 시간과 공간이다.
2. 영화는 거시적인 무엇인가를 제시하지 않는다. 그저 월세 내기도 힘들어 대학 시절 밴드를 함께 하던 친구들을 찾아가는 '미소'와 그의 삶을 보여줄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소공녀>를 보며 사람과 사람 사는 세상에만 집중해 미소의 시선에서 이를 꼼꼼히 들여다볼 수 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소공녀>에는 유독 단 두 명의 인물이 한 앵글에 잡히는 씬과 둘의 표정을 비추는 클로즈업 샷이 많이 등장한다.
'미소'의 밴드 친구들은 한 때 미소와 같은 사람들이었다. 음악, 술, 담배를 좋아하고 청춘을 신나게 즐겼다. 좋아하는 일은 해야만 하는 이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이제 사회에서 아내, 엄마, 남편, 회사원 등이 되어 '평범해진'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이제 미소와 다르다. 그들은 미소를 반갑게 맞이하지만, 이내 그녀를 내쫓거나 미소 스스로 그들을 떠난다. 왜냐하면 미소는 평범한 그들과 함께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미소의 친구들은 두 가지 방식으로 평범해졌다. 하나는 자신들을 철저히 억누르는 방법이다. 그들은 한때 음악을 하고 술과 담배에 절어 원하는 대로 살던 자신들의 과거를 철저히 함구한다. 그 과거가 새어 나와 평범한 현실을 망치지 못하도록. 그러니 그들은 미소가 반갑지 않고, 미소는 어서 내보내야 할 불청객에 불과하다. 다른 하나는 평범한 일상에 갇혀버린 이들이다. 이들은 과거를 그리워한다. 오롯이 자신다웠던 그 시절을 행복했던 시간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결혼, 가족, 집이라는 족쇄에 묶이고 감옥에 갇혀서 그들만의 개성을 펼치지 못한다. 그들의 일상에는 그럴 공간도 여유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에게 평범한 일상은 고통스럽다. 단지 잠깐이나마 스쳐 간 '미소'가 과거와의 연결고리가 되어 일말의 행복과 활력을 느끼게 해 줄 뿐이다. 하지만 우리는 미소의 친구들을 함부로 비판할 수도, 불쌍해할 수도 없다. 그랬다가는 자기혐오와 자기 연민에 빠질 수밖에 없으니까.
3. 사실 미소가 집이 없고 좋아하는 위스키와 담배 없이는 살 수 없다는 점을 제외하면 그의 삶이 아주 이상한 것은 아니다. 다른 부분은 크게 없다. 누구든 부족한 부분이야 존재하고, 팍팍한 일상 속에서 소소한 행복을 누리는 거야 모두가 원하는 일이니. 본인 만의 뚜렷한 주관을 지니고 자신의 삶을 영위할 줄 아는 독립적인 인물이라는 점에서 모두가 선망할 캐릭터라는 생각도 든다. 오히려 미소가 우리의 삶을 보면서 우리를 안타깝게 여기지 않을까. <소공녀>는 초반부만 해도 미소의 삶에 집중하며 그녀가 얼마나 독특한 선택을 했는지 보여주는 듯 보인다. 하지만 <소공녀>를 보다 보면 오히려 미소의 시선에서 평범해지고 싶어 하는 그의 주변 인물들이 얼마나 힘들어하는지를, 그리고 우리가 왜 힘들게 사는지를 엿볼 수 있기도 하다.
미소의 친구들처럼 우리는 언제나 평범해지기 위해서 살아왔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단어가 '평균'이다. 하버드 대학교 교육대학원 교수이자 발달심리학 전문가인 토드 로즈가 그의 책 <평균의 종말>에서 말한 것처럼, 평균은 산업화와 근대화에 맞춰서 노동자 교육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도입된 개념이다. 또한 평균은 사회적 계층과 결합해 모든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평균에 맞추는, 평범한 삶을 위해 노력하게 만든 마성의 개념이기도 하다. 실제로 우리는 학교에서 못해도 평균 이상의 점수를 받기 위해 밤을 새우며 공부하고, 그렇게 입시를 거쳐 입성한 사회에서는 평균치에는 도달하는 외모, 연봉, 집, 생활수준과 커리어를 누리기 위해 안달 복걸한다. 평균에 미치지 못한다. 이는 내가 실패자이고 부적응자라는 뜻이다. 이 말처럼 우리는 두렵게 하는 말도 드물다.
우리가 속한 사회는 (과거보다 덜하다고는 해도) 여전히 공동체와 그 안에 있는 평범한 구성원을 중시한다. 유별나고 튀는 행동은 여전히 금기시되며 철없는 학창 시절의 행동 정도로 치부된다. 각자 타고난 대로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하며 살고, 그 인생은 개인이 책임지는 세상. 대신 개성적이고 유별난 삶을 살 기회는 모두에게 주어지는 세상. 이런 세상은 아직도 '나'보다 '우리'가 먼저 되는 세상과는 멀리 떨어져 있다. 그러니 영화 속 미소 또한 갈 곳을 찾지 못하고 떠돌고 그녀의 머리에서 점점 흰머리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서로의 차이, 개성, 다양함을 살리지도 직시할 줄도 모르는 세상에 그녀가 속할 곳은 없을 테니까.
4. 미소의 남자친구 "한솔"은 웹툰 작가 지망생이지만 공장에서 일한다. 그는 미소가 가난한 자신 때문에 고생한다고 생각하며 평범한 연애를 꿈꾼다. 평범해지려면 돈을 벌어야 하고, 그래서 그는 일하던 공장에서 파견을 가기로 결정하고 웹툰도 포기하기로 한다. 그런 그를 미소는 '배신자'라고 비난한다. 다른 이들의 생각에는 관심 없고, 지금 이대로도 행복하다며. 그러면서 한솔에게 노트 한 권을 건넨다. 끝까지 희망을 가지고 웹툰을 그리며 너다운 인생을 놓지 말라며.
<소공녀>는 한강 변에 텐트를 치며 사는 미소의 모습으로 끝나지만, 카메라는 끝내 미소의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다. 아마 관객들 스스로가 자신의 얼굴을 스크린에 그리기를 영화가, 또 미소가 원하기 때문일 것이다. 미소는 우리를 포기하지 않는다. 그저 조용히 옆에 있으며 평범해지는 것을 거부하고 독특하고 유별난 자신만의 삶을 살기를 격려할 뿐이다.
5. 사회적 분위기도 그렇고, 소재나 메시지로 보아도 <소공녀>는 톤이 무거워지거나 지루해질 수도 있는 영화였다. 하지만 전고운 감독의 재치 있는 손길은 그 모든 우려를 불식한다. 연극의 일부를 보는 듯한 과장된 인물들의 행동, 음향, 카메라 구도를 포함하는 연출은 관습적인 타이밍을 종종 벗어나는 편집과 어우러지면서 현실감을 강조하는 시나리오에 힘을 실어준다. 그 덕분에 <소공녀>는 유머러스하고 밝게 빛나는 톤을 유지할 수 있다. <페르소나> 속 <키스가 죄>에서도 느꼈지만, 따스하고 밝은 분위기 속에 씁쓸함과 우울함을 포착할 줄 아는 전다운 감독은 주목해야 할 감독 중 하나가 분명하다.
전가운 감독 외에도 미소를 연기한 이솜 역시 기억할만하다. 행복과 우울함, 희망과 좌절 사이를 오가는 '미소'의 감정선은 그녀의 마스크와 눈빛, 차분한 목소리에 기댄 부분이 적지 않다. 개인적으로는 드라마 <이번 생은 처음이라>에서부터 눈 여겨본 배우인데, 현재 청춘의 희망을 대변하는 자주적이고 독립적인 여성 상에 최적화된 배우가 아닌가 싶다.
본인이 하고 있는 일에, 지금의 삶에 의문이 생긴다면 <소공녀>를 보자. 그리고 조용히 위스키를 한 잔 마시자. 그럼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