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군인이란 어떤 사람들일까. 개인적으로 군인이란 개인의 권리와 공동체의 책무라는 양립 불가능한 가치를 함께 짊어지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군인 역시 한 명의 시민이다. 그렇기에 그들 역시 군에 속하지 않는 이들만큼이나 자유롭고 평등한 삶을 누릴 권리가 있다. 그러나 그들은 시민들 중에서도 특별한 이들이기에, 시민의 기본 권리인 자유와 생존을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한다. 공동체 속 다른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는 이들인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너무나도 큰 고통 속에 산다. 자신의 생존이 다른 이들의 죽음이고 공동체의 종말이기 때문에. 책무를 위해 권리를 포기한다는 것. 그것이 얼마나 힘들고, 그 무게감으로부터 달아나고 싶으며, 스스로를 자조하며 나약하게 만드는지. 생존하려는 열망, 죄책감 그리고 두려움과 공포로 가득한 군인들의 기억.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덩케르크>는 그 기억을 온전히 재현해낸 영화다.
2. <덩케르크>를 보다 보면 다른 전쟁 영화에는 있지만, 이 영화에는 없는 것이 존재한다. 바로 '전투'와 '대사'다. 영화가 시작할 때 독일군으로부터 가까스로 도망치는 한 병사의 모습을 보여준 이후로 작중 등장하는 전투라고는 독일 공군과 영국 공군 전투기 간의 소규모 전투가 전부다. 심지어 영화 속에 독일군마저 직접적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그저 어디선가 알 수 없는 방향에서 쏟아지는 총탄이 전부일뿐. 그래서 <덩케르크>는 전쟁영화보다도 재난 영화처럼 느껴지는 측면이 존재한다. 영화 속 병사들의 목적이 승리가 아닌, 생존이라는 것도 궤를 같이 한다. 그래서 관객의 입장에서 <덩케르크>는 다른 전쟁 영화와는 달리 더 직관적으로 이해하고, 감정 이입할 수 있다.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 이건 알아듣기 어려운 문제가 아니니깐.
주목할 점은 이러한 인물들의 내면을 영화가 묘사하는 방식이다. <덩케르크>는 셔레이드 기법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그래서 작중 인물들은 대사가 거의 없다. 정말 기본적인 상황 설명을 제외하면 그저 표정, 눈빛, 행동으로만 말을 한다. 그나마 말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파리어(톰 파디)' 또한 입을 가린 채 눈빛 연기만을 보여준다. 하지만 아이러니한 것은 단 한마디의 말이 없어도 이들의 절박함, 무력함, 좌절과 희망은 충분히 전달되며, 그렇기에 오히려 영화 중간중간 나오는 대사들에 더 큰 힘이 실린다는 점이다. 이는 단지 인물들의 감정 표현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망망대해 앞에 놓인 황량한 해변, 버려진 배, 무너지는 선착장 등 영화의 배경을 보여주며 극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는 등 <덩케르크>는 영화라는, 영상이라는 매체의 고유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렇기에 덜어내기 때문에 오히려 가득 차는 빼기의 미학이 담긴 영화다.
또 언제나 그렇듯이 한스 짐머의 영화음악 역시 이러한 놀란 감독의 연출을 충실히 뒷받침하고 있다. 단지 째깍거리는 시계 소리라는 단순한 테마를 다양하게 변주해서 반복하는 것만으로도 한스 짐머는 생존에 대한 격렬한 욕망과 죽음의 소름 돋는 공포를 청각적으로 구체화하는 데 성공한다.
3. <덩케르크>의 스토리 텔링 역시 흥미로운 방식이다. <덩케르크>는 육지, 바다 그리고 하늘에서 펼쳐지는 각 인물들의 이야기를 1주일, 하루, 1시간이라는 각기 다른 시간의 흐름에 맞추어 풀어나간다. 그리고 3개의 시간대는 교차 편집을 통해 공포, 희생, 절박함이라는 정서를 관객들이 체감할 수 있도록 정교하게 연결되어서 진행된다. 이러한 스토리 텔링은 개인이 체감하는 상대적인 시간은 객관적인 시간의 흐름과는 다르다는 것을 암시함과 동시에 누군가의 1주일의 삶 그리고 그 결과가 다른 이들의 1시간 혹은 하루에 달려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또한 관객과 인물들 간의 정보 차이를 최대로 만들면서 철수작전이라는 영화 소재가 가지는 서스펜스를 극한으로 끌어올리는 영리한 시도이기도 하다.
또한 교차편집 기법을 통해서 관객들은 3개의 시간대에 존재하는 모든 인물들의 상황을 알고 온전히 그들에게 감정이입을 할 수 있다. 관객들은 육지에 남아있는 전우들을 구하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 파일럿이 된다. 또한 전투에서 패하고 도망친다는 죄책감에 빠져있는 병사를 구하는, 1차 세계대전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어선의 선장도 될 수 있다.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병사도 되며, 언제 독일군이 들이닥칠지 모르는 급박한 상황 속에 병사들을 책임지는 지휘관도 된다.
그렇기에 서로 다른 3개의 시간대가 하나로 합쳐지며 철수작전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는 <덩케르크>의 하이라이트는 2시간 동안 쌓여오던 정서들이 한 번에 분출, 폭발하는 카타르시스로 전율이 흐를 만큼 강렬할 수밖에 없다. 이미 <인터스텔라>와 <인셉션>을 통해서 서로 다른 시간대의 사건이 같은 시간대에서 만날 때의 전율을 선사한 바 있는 크리스토퍼 놀란이지만, <덩케르크>에서는 이러한 스토리 텔링과 편집의 절정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인셉션>이 지적 유희이고, <인터스텔라>가 지적 유희와 정서의 분출이라면, <덩케르크>는 감정의 폭발인 셈이다. 이렇듯 철수작전에 직간접적으로 기여하는 모든 인물의 상황과 감정을 접하면서 관객들은 2시간도 안 되는 시간이지만 온전히 1940년의 덩케르크 해변에 있다 온 듯한 경험을 할 수 있다.
4. <덩케르크>는 생존하려는 열망, 죄책감 그리고 두려움과 공포로 가득한 군인들을 감싸 안으며 마무리된다. 영국군은 전투에서 패하고, 수많은 전우들이 목숨을 잃었고, 무기도 챙기지 못할 만큼 무능력했다. 그들은 그 자체로도 고통스러워했지만 자신들이 실패했기에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국가는 그들에게 명예를 안겨주며 그들의 고통, 헌신, 희생을 기린다. 처칠의 연설 내용인 "우리는 절대로 항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의 철수는 위대한 승리입니다."라는 내레이션이 나오는 순간 가슴이 벅차오르는 그 기분은 다른 어떤 전쟁 영화에서도 느끼기 힘들다. 왜냐하면 <덩케르크>를 통해서만 바로 저 군인들이 될 수 있고, 철수가 승리라는 저 아이러니가 얼마나 중요한 한마디였는지를 실감할 수 있으니깐.
5. <덩케르크>는 승리하는 전쟁영화가 아닌 살아남는 재난 영화이다. 영화보다는 다큐멘터리다. 시청이 아닌 체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