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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noDAY May 30. 2019

알라딘

좋은 추억도 반복되면 악몽이다

1. 근래 들어 어릴 적 볼 수 있었던 디즈니의 고전 애니메이션들이 새롭게 단장해서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시작으로 <말레피센트>, <신데렐라>, <정글북>, <미녀와 야수>에 올해 초에는 <덤보>까지 모두 실사로 리메이크된 영화들로 흔히 '디즈니 라이브 액션' 혹은 '디즈니 실사화 시리즈'라고 부른다. 디즈니 스튜디오가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이유 중 하나는 금전적 이익의 가능성이 매우 높은 프로젝트라는 점이다.


새롭게 리메이크된 애니메이션 영화들은 거의 전 세대의 관객층을 아우르며 가족 영화로서 포지셔닝할 수 있고, 따라서 흥행에 상당히 용이하다. 어린 세대에는 또 한 편의 멋진 블록버스터 영화로서 신선함을 제공하고 그 윗 세대들에게는 과거의 추억과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영화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뮤지컬 영화라는 점에서 진입장벽도 높지 않기에 관객몰이가 쉽다는 장점도 지니고 있다.



2. 하지만 디즈니의 실사화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이유가 순전히 금전적인 부분만 있는 것은 아니다. 또 다른 이유는 고전 애니메이션의 현대화다. 구체적으로 말해 디즈니가 산하 스튜디오인 마블과 루카스 필름 작품들처럼 젠더 감수성 등의 정치적 올바름과 다양성이라는 코드를 의식적으로 삽입한 애니메이션 리메이크를 진행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실사화된 작품들은 원작과 비교해 봤을 때 전체적으로 여성 서사가 강화되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말레피센트>, <신데렐라>, <미녀와 야수> 등에는 여성 캐릭터들에게 새로운 대사, 시퀀스 내지는 뮤지컬 넘버가 주어지는 경우가 공통적으로 등장하는데 이는 모두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여성상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이러한 시도는 과거 디즈니 애니메이션들이 특히 성적/인종적 편견과 고정관념을 드러내는 묘사가 많다는 비판판을 들었다는 점에서 언젠가 필연적으로 이루어져야 했던 일이기도 하다. 마치 시간이 흐르면서 많은 고전문학 작품들도 새로운 번역이 필요하듯. 새롭게 돌아온 <알라딘> 또한 이러한 디즈니의 금전적, 사회적 의도가 다분히 담긴 리메이크 영화다.



3. <알라딘> 역시 정치적 올바름을 신경 쓴 흔적이 역력한 것이 사실이다. 물론 원작에 반영된 아랍과 이슬람 세계에 대한 고정관념이 지니는 한계를 오롯이 떨쳐내지는 못했다. 하지만 각 캐릭터들을 활용하는 방식에서 디즈니가 <알라딘>을 통해 환기시키고자 한 메시지 혹은 주제의식을 명확히 느낄 수는 있다. 예를 들면 새로운 <알라딘>에서 자스민 공주에게 원작에 없는 오리지널 스코어인 'Speechless'가 주어지거나 알라딘과 쟈스민의 감정적 교류가 운명적인 만남과 사랑보다도 사회에서 소외받는 계층적 차별(신분/경제적 약자와 젠더 차원의 약자)을 공유하고 이해하는 지점에서 비롯된다는 점들은 명백한 디즈니의 의도다.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요소들이 영화 속에 잘 스며들었다고 생각한다. 두 주인공이 각자 경험한 차별과 콤플렉스에 대해 이야기하고, 서로 연대해가며 그 차별을 극복해나간다는 점이 현시점의 관객들에게 큰 호소력을 갖는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따라서 <알라딘>의 이해와 연대의 내러티브는 알라딘이 자신의 꿈을 '지니'라는 절대적 존재를 통해 해결하는 장면들을 관객들의 판타지가 투영되는 장면으로서 만들어 관객들에게 재미와 감동을 모두 선사하는 효과가 있었던 셈이다. 또한 이러한 감정선을 바탕으로 훌륭한 음악들이 영화에 삽입되었기에 현재 <알라딘>의 영화음악들이 큰 화제를 모으고 있다고도 생각한다.



4. 하지만 사회적 변화와 관객들의 욕구를 정확히 잡아내서 작품에 반영하는 것과는 별개로, <알라딘>은 개별 영화 한 편으로서는 부족한 완성도를 보여준다. 우선 디즈니가 제작 중인 실사화 시리즈 영화들에서 나타나는 공통적인 문제가 똑같이 등장한다. 바로 영화 만의 개성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우선 영화의 연출을 맡은 가이 리치 감독만의 개성이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가이 리치 감독의 경우 물 빠진 색채를 바탕으로 극단적인 슬로 모션을 통한 장면 연출이 특징적인 감독이다. 그의 최고 흥행작인 <셜록 홈즈> 시리즈 역시 이러한 그의 연출 스타일이 제대로 어필됐던 케이스다. 하지만 <알라딘>은 극히 일부 장면을 제외하면 가이 리치가 연출했다는 흔적이 전무하며 이전에 개봉한 디즈니 실사 작품들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스토리 텔링에 있어서 다른 실사화 영화들처럼 작중 인물의 내레이션을 통한 방식을 선택했다는 것도 문제다. 지나치게 동화적인 분위기를 강조하면서 감독만의 고유함이나 장점을 살리기 힘든 몰개성적인 방식이기 때문이다. 극 중 인물들이 어떤 일을 겪어도 항상 단정하고 깨끗한 모습을 유지하는 것도 이와 일맥상통하는 단점이다. 또한 새로운 음악을 삽입하면서 원작과의 차별점을 두려 하나 너무 많은 음악들로 인해 뮤지컬 영화의 관습적인 문제인 전개의 리듬감 상실도 나타나는데, 이는 캐릭터들의 구축과 활용에도 악영향을 주는 요소다.



실제로 <알라딘>을 보고 나면 윌 스미스의 '지니' 외에 기억에 남는 캐릭터가 전무하다. 극 중 지니는 스테레오 타입이 아닌 유일한 캐릭터로, 그의 비중이 높은 영화 중반부까지는 영화 역시 생동감을 유지한다. 그러나 그의 비중이 급격히 줄어드는 영화 후반부는 아무런 감흥도 남기지 못하는데, 모든 캐릭터가 정해진 길로만 움직이다 보니 원작과도 또 다른 리메이크 만의 차별점을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주인공인 알라딘은 그저 지니를 등장시키고 자스민 공주를 각성시키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며, 악역으로서 대립각을 이루어야 할 자파는 그의 동기도 과거도 설득력 있게 제시되지 않으면서 아무런 카리스마도 느껴지지 않는다. 자스민 역시 주체적이고 강인한 여성이라는 점이 보이기는 하나 <신데렐라>의 신데렐라와 <미녀와 야수>의 벨과 구분되는 차별점이 뭐냐고 묻는다면 섣불리 대답하기 어려울 정도로 평면적인 인물이다. 노래에 많은 비중이 분배되다 보니 캐릭터를 설계하고 구축하는 과정이 단축되면서 발생하는 기획 단계에서부터 필연적인 문제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비단 <알라딘>만의 문제가 아니기도 하고.



5. <알라딘>의 장점(메시지, 주제의식, 관객의 욕구 충족)과 단점들(영화적 완성도)은 이 작품과 감독만의 것이라고 보기 힘들다. 결국 <알라딘>도 디즈니 라이브 액션 영화의 전체적인 특징을 모두 이어받은 영화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앞으로 개봉할 <라이언 킹>, <말레피센트 2>, <뮬란> 등에서는 이 고전들이 왜 이 시점에서 리메이크되어야 하는지를 증명할 수 있도록 개별 작품만의 개성들이 확실히 제시되었으면 한다. 물론 <알라딘>도 상업적으로 성공하겠지만, 지금까지의 디즈니 실사화 프로젝트 결과물은 작품 내적으로 힘을 준 사회적인 변화의 반영이라는 의의보다는 과거의 향수와 추억을 자극한 감성팔이를 통한 흥행 수입만이 눈길을 끌기 때문이다.



A(Acceptable, 무난함)

이쯤 되면 한 가지 궁금한 게 생긴다. 디즈니가 돈을 쉽게 버는 걸까, 다른 스튜디오가 무능력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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