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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noDAY Jun 03. 2019

기생충

냄새나는 계단이 바람 선선한 풀밭이 되는 그날까지

1. 자연을 살펴보면 각 개체별로 살아가는 방식이 제각각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방식에는 크게 3가지가 있다. 기생, 공생, 상생이 그것이다. 기생은 한 개체가 다른 개체를 이용해서 자신의 이익을 취하는 방식이다. 플러스와 마이너스의 만남인 셈이며 수직의 관계로 볼 수도 있다. 한편 공생은 한 개체와 다른 개체가 함께 존재하는 상태다. 기생처럼 명확한 손해 혹은 이익을 보는 개체도 없지만 함께 존재하는 것 외에 다른 이득도 없고 수평적인 관계로 볼 수도 있다. 상생은 공생에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간 형태다. 상생은 둘 이상의 개체가 서로 도와 상호 이익을 최대한 취하는 삶의 방식이다. 수평적이지만 보다 밀접한 관계를 지향하는 방식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어떻게 삶을 살고 있을까. 우리네 삶의 방식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은 이러한 질문들을 유려한 이미지로 펼치는 영화다.    


 

2. <기생충>을 보다 보면 왜 영화의 제목이 '기생충'인지가 명확해지는 듯하다. 영화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빈부격차를 두 가족이 살아가는 방식의 대비를 통해 제시하고, 누가 기생충이고 누가 숙주인지를 명확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작 빈부격차라는 이슈를 상징하는 기호는 크게 두 가지로, 바로 계단과 냄새다.


계단이라는 존재는 기본적으로  위와 아래를 이어주는 것으로 통로의 역할을 한다. 그러나 계단의 이미지는 통로이기는 하나 통과하기가 매우 힘들고 짐스러운 이미지다. 또한 계단이라는 것은 올라가는 것보다 내려가는 것이 쉬운 존재이기도 하다. 그래서 계단이 많다는 것은 권위와 힘을 나타내는 의미이기도 하다. 과거 네덜란드에서 계단 한 칸마다 세금을 매겨 집의 계단을 통해 계급을 드러낸 것도, 대다수가 아파트에서 사는 한국인들에게 집 안에 있는 계단이 부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것도 결국엔 계단이라는 존재에 내재하는 기본 속성에 의한 것이다. 이러한 계단의 권위적, 계층적, 불투과적 속성을 영화는 수직의 이미지로 스크린에 구현한다.



렇듯 계단이 존재에도 불구하고, 또 계단으로 인해서 희미해지던 계층 이동의 가능성은 냄새라는 상징 통해 완전히 사라다. 소설이나 영화 속 냄새는 보이는 것 이면에 숨어있는 사실을 끄집어내는 장치인 경우가 많은데, <기생충>에서도 마찬가지다. 기택의 그 어떤 것도 선을 넘지 않지만 그의 냄새만큼은 선을 넘는다는 박사장의 대사나 유독 냄새난다는 말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기택의 모습이 인상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작중 냄새는 아무리 발버둥 쳐도 본질을 바꿀 수 없으며 아무리 많은 계단을 올라와도 마지막 문만큼은 열리지 않는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포스터 속 인물들의 눈이 모두 가려져 있는 것도 이러한 냄새의 속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기택, 기우(최우식), 기정(박소담), 충숙(장혜진)이 박사장의 집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본인들의 반지하 방으로 돌아가는 시퀀스는 계단을 올라가는 것과 계단을 내려오는 것이 얼마나 다른 의미인지, 그리고 올라오는 것은 낯설고 어렵지만 내려가는 것은 그렇지 않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침대 밑과 테이블 밑에 숨어야만 하는 기우네 가족의 모습을 통해서는 제아무리 계단을 올라갔다 해도 그곳에 보이지 않는 유리창이 있다는 점을 일깨워주기도 한다. 이렇듯 어느 곳에나 있는 계단과 냄새라는 상징 덕분에 <기생충>은 지역과 문화의 차이를 넘어서 수직적인 사회 안에서 기생충이 된 사람들에 대한 깨달음, 가슴이 찢어질 듯한 아픔과 울분을 전해줄 수 있다.



3. 흥미로운 것은 <기생충>이 이 상징들과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이다. <기생충>은 무게 잡고 사회를 마구 고발하는 영화도 아니고, 그렇다고 쉽게 이해하기 힘든 난잡한 이미지들이 범람하는 영화도 아니다. <기생충>은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방식으로 편하게 말하다가 옆구리를 쿡 하고 찌르는 영화다. 영화의 장르부터가 그렇다.  <기생충>은 초반부 코미디로 시작해서 중반부(개인적인 느낌으로) 하이스트 무비를 거쳐 후반부 미스터리 스릴러로 끝나는 드라마. 한국 관객들이 사랑하는 장르의 특징과 장점만을 스토리 흐름 상 적재적소에 배치한 셈이다. 


예를 들어 같은 장르의 시퀀스에서 봉준호 감독은 관객과 등장인물 간의 상황을 다르게 만든다. 같은 정보를 다르게 활용하는 것인데, 영화를 보면 특정 정보를 인물들은 알지만 관객들은 모르게 하는 연출들이 눈에 띈다. 특정 부분을 카메라로 안 찍거나 인물들의 대사 순간적으로 관객들에게 안 들리게 하면서 호기심을 최대치로 끌어올리 상상력을 자극시키 극의 서스펜스를 최대로 만들어내서 관객들의 집중력을 유지하는 것이다. 반면에 극의 장르가 변화하는 대목에서는 서프라이즈를 선사하며 관객과 인물들을 정보의 부재라는 상황에 함께 빠뜨리면서 감정이입을 극대화한다. 스릴러와 미스터리 장르의 관습을 영리하게 빌려 온 것이다. 이렇듯 봉준호 감독의 고전적이지만 영리한 연출 덕에 <기생충>이라는 상이한 장르들의 묶음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쉽게 느껴진다. 영화제 수상작이라는 막연한 어려움과 걱정은 필요 없다.



4. 연출뿐만 아니라 의도적으로 영상보다 음향이 먼저 나오게 해서 다음 장면에 대한 궁금증을 극대화고, 홍수가 나서 반지하방에 물이 차오르는 장면과 물이 넘친 거리의 장면 간이 디졸브 기법으로 화면 전환을 시키면서 그 좌절감과 절망감을 화면 가득 차오르게 하는 등 영화의 편집에 있어서도 재밌는 요소가 많다.


물론 봉준호 감독도 인터뷰에서 지적하고 송강호 배우에게 상을 바쳤던 것처럼, 배우들의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송강호 배우는 대한민국의 소시민 그 자체였고 그 외에 최우식, 이선균, 박소담, 장혜진, 이정은 등 모든 배우들이 최고의 연기를 보여줬다도 생각한다. 이들 덕분에 캐릭터와 대사들이 진정으로 살아있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중 가장 빛나는 배우는 조여정이다. 사실 <기생충>의 발단은 연출, 편집, 코미디라는 장르의 특수성으로도 설명 못할 만큼 개연성이 부족한 부분이 있다. 이를 가능케 한 것은 과한 설정을 과하지 않게 만든 조여정의 연기뿐이다.



5. 영화의 결말을 마주하고 나면 과연 다시 한번 기생충에 대해서 생각할 수밖에 없다. 결국 기생충이 되어야 하나, 내가 기생충이면 숙주는 누구일까, 내가 기생충인데 난 왜 이익 보는 게 없을까, 나도 모르게 내가 숙주인 것은 아닐까. 계단에 대해서도 생각해본다. 계단을 올라야만 하는 걸까. 계단을 오른다 한들 그곳이  자리일까. 내가 과연 '어울릴까'. 수직적인, 기생하는 관계가 아니면 이 세상에서 살아갈 길이 정녕 없을까.


그리고 한 뉴스를 접하면서 위안을 얻는다. <기생충>의 제작비가 150억 원이나 들어간 것은 영화 스태프들에게 근로기준법과 주 52시간제를 준수하는 급여를 준비하기 위해서였다는 뉴스를... 기생을 넘어서는 상생, 계단이 아닌 풀밭에 다 함께 눕는 세상이 한 발 가까워졌다고 믿고 싶다.



O(Outstanding, 특출남)

아버지는 과연 계단을 올라올 수 있을까. 계단을 올라왔을 때 그에게선 어떤 냄새가 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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