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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noDAY Jun 06. 2019

엑스맨: 다크 피닉스

장고 끝에 둔 악수

1. <엑스맨> 시리즈는 코믹스의 인물들을 '강자'가 아닌 '약자'에 위치에 놓으면서 다른 히어로 영화들과 차별점을 꾀한 시리즈였다. 특별한 능력을 지니고 있지만 사회에서 억압받는 이들이 어떻게 하나의 공동체로 연대해 나가기 위해 협력하고, 그 공동체를 지키기 위한 방식의 차이로 대립하고,  그 과정을 거쳐서 어떻게 하나의 가족으로 다시 탄생하는지. 이러한 부분들에 많은 사람들이 <엑스맨> 시리즈에 빠져들곤 했다.  


이러한 <엑스맨>만의 독특한 개성은 브라이언 싱어 감독의 공이 지대했다. 각 인물의 성장과 심리 변화를 세심하게 짚어내는 그의 연출력 덕분에 그가 영화 제작에 참여한 <엑스맨>, <엑스맨 2>,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 등의 작품들은 숱한 명장면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그래서 그가 <엑스맨: 최후의 전쟁>에 이어 또 한 번 그가 떠나간 <엑스맨: 다크 피닉스>를 두고 많은 우려와 불안이 존재한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마침내 공개된 <엑스맨: 다크 피닉스>는 이러한 우려를 떨쳐내지 못했다. 왜냐하면 <다크 피닉스>는 전작의 무게감들에 눌려 본연의 임무를 미처 다하지 못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2. 브라이언 싱어가 떠난 감독 자리는 엑스맨 시리즈에 제작자와 각본가로 참여해왔던 사이먼 킨버그의 몫이었다. 똑같이 '피닉스'를 소재로 한 <엑스맨: 최후의 전쟁>의 각본을 쓰기도 했고, 브라이언 싱어와 작업을 해봐서인지 몰라도 그는 여러 인터뷰에서 지난 시리즈들의 실패와 성공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고 이를 잘 녹여내고 싶었다고 밝힌 바 있다. <다크 피닉스>를 보면 킨버그 감독의 말이 틀리지는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단지 배운 걸 잘못 써먹었을 뿐이고, 고민이 너무 많았던 것이 아닐까 싶을 뿐.


엑스맨 시리즈 중에서 평이 안 좋기로 손꼽히는 <최후의 전쟁>과 <아포칼립스>는 메인 플롯이 부각되지 않고 여러 세부적인 플롯들이 혼란스럽게 섞이면서 영화가 리듬감을 잃고 난잡해졌던 케이스다. <최후의 전쟁>에서는 스토리의 중심이 되어야 할 피닉스가 또 다른 소재인 '큐어' 뒤섞이면서 그 비중과 분량이 부족해진 것이 문제였고, <아포칼립스>에서는 아포칼립스에 집중하지 않고 진, 싸이클롭스, 울버린 등 기타 캐릭터들을 위해 너무 많은 분량을 할애한 것이 문제였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엑스맨: 다크 피닉스>는 분량, 비중, 스토리 전개의 중심을 오롯이 '진 그레이/피닉스'에게 둔다. 따라서 피닉스의 흑화가 진행되고 진 그레이의 내적인 갈등을 묘사하는데 초점을 둔 초반부 1시간 가량의 스토리 전개는 상당한 흡입력을 지니며 <최후의 전쟁>을 아쉬워했던 팬들의 실망감을 다소 달래줄 수도 있다. 이는 진 그레이를 연기한 소피 터너의 역할도 크다. 사실상 원 톱 주인공으로서 극을 끌고 가야 했던 상황에서 개인적으로는 피닉스라는 다른 존재와 공존할 때 생기는 정체성에 대한 혼란, 과거 기억에 의한 트라우마, 스스로에 대한 통제력을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 등을 과하지 않게 잘 표현했다고 느꼈다. 한스 짐머가 담당한 환상적인 음악도(근래 들어 가장 좋은 영화음악이라고 생각한다) 고통받는 진의 내면을 잘 표현해준다.



<엑스맨: 아포칼립스>에서 문제로 지적받았던 액션 역시 진일보한 것이 분명히 드러난다. MCU 영화들을 보면서 뭔가 깨달은 점이 있는 듯, <캡틴 아메리카> 시리즈를 연상시키는 빠른 숏 전환을 통한 박력적인 액션 씬과 피지컬적인 액션, <어벤져스> 시리즈 같은 각 인물들의 능력이 서로 궁합을 이루면서 조화되는 장면들은 일품이다. 뉴욕에서의 시퀀스는 <시빌 워>를 연상시키고, 기차 시퀀스는 영화와 별개로 그 시퀀스 자체의 긴장감이나 절박함이 잘 드러난다.


이처럼 <엑스맨: 다크 피닉스>는 영화 초중반부만 해도 전작들에서 지적받았던 단점들을 일부 바로잡기 위해 노력했고, 일정 부분 성과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영화가 후반부에 들어서면서 전작들을 답습함과 동시에 엑스맨 시리즈 고유의 특징과 장점들까지 모두 잃어버리면서, <엑스맨: 다크 피닉스>는 다시 한번 관객들의 탄식을 자아낸다.



3. 이는 사이먼 킨버그 감독이 <엑스맨: 다크 피닉스>로 처음 장편 영화를 연출했다는 점에서 기인한다. 엑스맨처럼 존재감이 확실하고 개성적인 인물들이 많이 등장하는 영화는 인물들 간의 분량을 조절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킨버그 감독의 부족한 연출력과 편집은 각 인물의 서사에 심각한 손상을 입히고 만다. 특히 배우의 좋은 연기력과 별개로 캐릭터들을 구축하고 활용하는 방식에서 그 문제가 유독 드러난다. 쉽게 말해 대사를 통한 설명이 필요한 부분과 영상, 셔레이드만으로 제시해도 되는 장면을 잘 구분하지 못한 연출에 재촬영에 재촬영을 거듭한 짜깁기 편집이 만들어낸 불상사인 것이다.


<다크 피닉스>가 진 그레이에 집중해서 그녀의 내면을 자세히 묘사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피닉스에. 많은 분량을 할애한다고 그간 시리즈를 지탱해온 나머지 인물들의 분량을 급격히 줄일 필요는 없다. 그럴 경우에 인물들의 캐릭터성이 붕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작중 찰스와 에릭의 대립과 화해, 행크와 레이븐의 심리 변화, 진과 싸이클롭스의 관계, 스톰과 나이트크롤러의 심리, 에릭과 퀵실버의 부자관계, 빌런들의 목적과 동기 등 진을 제외한 캐릭터들의 스토리는 대사 한 두 마디로 설명되거나 짧 숏들로 암시될 뿐이다. 그러다 보니 화려한 액션 시퀀스에서도 액션의 퀄리티와는 별도로 인물들의 감정선은 느끼기 힘들며 몇몇 캐릭터는 아예 활약할 기회마저 빼앗기기도 한다. 그 결과 <다크 피닉스>는 돌연변이들, 소수자들이 하나의 가족으로 거듭난다는 전체적인 스토리보다는 '진 그레이' 만의 스토리가 돋보일 뿐이고, 영화의 결말이 시리즈 전체의 결말이라고 하기에는 어색하며 그간 <엑스맨>을 지탱해온 이 매력적인 캐릭터들의 마무리로도 부적합해 보인다.  이 영화가 레이븐(미스틱)을 활용하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물론 찰스와 에릭도 마찬가지다.


또한 영화 초반부와는 달리 후반부 들어서 스토리의 중심이 되는 진의 변화에 대해서도 설득력 있는 묘사가 부족하다. 이는 빌런을 활용하는 방식과 맞물리는데, 다크 피닉스라는 힘을 빌런이 끌어내고 찰스가 이를 막으려는 대립적 구도의 연출이 엉성하기 때문이다. 제시카 차스테인이 맡은 빌런은 관련된 설명도 부족하고 캐릭터 자체가 기계적이고 도구적이다 보니 그녀가 진을 이용하려는 상황이 와 닿지 않을뿐더러, 찰스가 진을 설득하기 위한 장면들도 맥락에 맞지 않다 보니 진의 변화가 너무나도 급작스럽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러니 '진-찰스'와 '진-빌런'의 관계를 대비시키면서 기존 에릭과 찰스의 대립이 아닌 새로운 구도를 보여주고 돌연변이의 리더로서 찰스의 역할을 재조명하며 매그니토와도 다른 새로운 빌런의 매력을 부각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것에 대한 아쉬움이 클 수밖에 없다.



4.  사회 내에 존재하는 소수자 집단이 지배적인 사회에 맞서 살아가고, 그 안에서 공존하고 서로 연대를 이루는 방식을 현실적으로 보여주는 시리즈를 관통하는 개성과 주제의식이 사라진 것. 이것이 <엑스맨: 다크 피닉스>가 초래한 결과물이다. 또한 결말 역시 <엑스맨: 데이즈 오프 퓨처 패스트>가 보여준 미래와 다르게 매듭지어지는 등 전작들의 단점을 없애려다가 시리즈의 전통과 핵심마저 내팽개친 셈이라는 측면에서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결국 <엑스맨>이라는 고유함은 다수 잃고, 화려한 액션과 훌륭한 음악(음악만큼은 시리즈 최고라 할 만큼)으로 범벅된 평범한 블록버스터가 된 피날레로 느껴지기에 <엑스맨>의 팬으로 더욱 안타깝기도 하다. 그저 지루하지 않고 2시간 내내 몰아붙여주기에 <아포칼립스>보다 낫다는 점을 위안 삼을 뿐.

 


A(Acceptable, 무난한)

빈대 잡다가 초가삼간 다 태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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