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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noDAY Jun 20. 2019

칠드런 액트

믿음과 신념, 선택과 포기 사이에 선 영혼

*브런치 무비 패스로 감상한 영화입니다. 약간의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1. 믿음과 신념. 믿음은 신이 알려준 길을 걷는 것이고 신념은 인간이 만든 길을 걷는 것이기에 그 시작은 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목적지는 동일하다. 왜냐하면 개인의 믿음과 신념은 모든 선택과 포기의 대원칙이 된다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한번 형성된 믿음과 신념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공통점도 있다. 믿음과 신념을  바꾸는 것은 스스로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는 것이고, 스스로를 혼란에 내던지는 일이며, 그 혼란이 초래할 고통을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삶을 살다 보면 필연적으로 자신의 세상을 지탱하던 믿음과 신념이 무너지는 날이 찾아온다. <칠드런 액트>는 바로 그 격변의 순간을 포착한 휴먼 드라마다.  


 

2. 가정 법원 판사인 피오나 메이는 작중 신념의 붕괴를 맞이한다. 판사로서 도덕, 종교보다도 이성에 기반한 '법'의 가치에 맞추어 사는 성공적인 커리어우먼인 그녀지만 어느 날 남편과의 불화로 인해 일상적 삶이 무너지게 되고, 그녀가 믿어왔던 법과 이성의 가치에 대한 신념까지 뒤흔든다. 그녀의 사랑에서 비롯된 삶의 변화가 그녀의 신념에 대한 혼란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러한 피오나의 혼란은 한 멋진 소년(Lovely Boy)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는 계기가 된다. '칠드런 액트 the children act'(영국의 아동법.  법원은 18세 이전의 청소년의 복지를 최우선으로 판결해야 한다는 내용)와 관련된 심리에서 판결을 내리기 전에 그 소년의 병원을 찾아가 직접 그의 의사를 물어보고 그에게 노래를 불러주는 등 평소의 그녀라면 결코 하지 않았을 행동들로부터 변화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애덤은 여호와의 증인 교도로 태어나고 자란 소년이다. 그는 여호와의 증인의 교리를 따라 백혈병임에도 수혈 치료를 받지 않고 차라리 죽겠다며 자신의 믿음을 증명하고자 한다. 이처럼 신과 믿음으로 가득한 그의 세상에 피오나가 등장해 그에게 시와 음악을 알려준 순간, 애덤은 새로운 삶을 맛보게 된다. 따라서 기존의 세계가 일부 붕괴하고 새로운 세계를 맞이한 애덤에게 피오나는 한줄기 빛이자 갈 곳 잃고 망망대해를 헤매는 배를 비춰줄 등대나 다름없는 사람이 되며 치료가 끝난 후 애덤은 피오나를 만나려 노력할 수밖에 없다. 새로운 인생의 시작이자 길잡이기 때문이다. 


각자 자신의 세계를 잃고 헤매는 과정에서, 그 시작과는 반대로 이제는 애덤이 피오나의 변화를 이끌어 준다. 애덤은 피오나의 냉정한 거절로부터 자신의 믿음을 다시 찾고 그 믿음을 기준으로 자신의 삶을 선택한다. '칠드런 액트'가 성인이 된 그에게 효력을 끼치지 못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이러한 아담의 몽상가적인, 아름다운 선택을 마주한 피오나 역시 법이 결코 모든 생명을 구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이성이 세상 모든 일을 해결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 후 그녀는 이성적으로는 허락할 수 없었던, 무너졌던 가정을 다시 지키기로 결정한다. 이 스토리가 바로 <칠드런 액트>가 바라본 믿음과 신념, 선택과 포기 사이 격변의 이야기다. 



3. <칠드런 액트>의 스토리가 더욱 깊숙이 다가오는 데는 영화를 구성하는 이미지의 역할이 크다. 예를 들어 자중에는 피오나의 상체만을 찍는 바스트 샷, 아담의 얼굴 표정을 강조하는 클로즈업 샷이 많다. 이러한 카메라 구도는 판사로서의 직업적 역할과 법과 이성이라는 피오나의 신념을 제시하며(법정에서 판사들은 주로 상반신만 보인다) 종교라는 세상 안에서 사는 애덤의 신을 향한 절대적인 믿음을 강조해준다.


또한 <칠드런 액트> 속에는 인물의 걸음, 특히 뒷걸음에 따라 소실점으로 작아지는 씬이 자주 등장한다. 이러한 씬들은 자신의 세계를 둘러싸던 신념과 믿음에 균열이 생긴 뒤 새로운 삶을 접했을 때의 혼란스러움, 과거 자신의 모습에서 느끼는 자괴감,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걱정을 관객들에게 효과적으로 환기시켜준다. 이를 통해 과거와 미래, 삶과 죽음 사이에서 선택과 포기를 해야 하는 상황의 무게감을 드러내고 그 기준이 되는 신념과 믿음의 무거움 또한 전달할 수 있는 것이다. 


이미지뿐만 아니라 배우들의 연기도 인상적이다. 영화를 이끌고 가는 엠마 톰슨과 핀 화이트헤드의 연기는 말 그대로 압도적이다. <덩케르크>에서부터 많은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핀 화이트헤드는 순진함, 열정과 퇴폐미를 오가며 경이로우면서도 혼란스러운 애덤의 내면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그의 반대편에 위치한 엠마 톰슨은 그녀의 지적인 이미지를 적재적소에 활용해 판사 그 자체로 다시 태어난 느낌까지 받게 만든다. 약간은 불안해 보이는 시나리오의 허점까지도 감싸안는 그녀의 존재감은 왜 <칠드런 액트>의 기획 단계에서부터 엠마 톰슨이 필요했는지를 증명해 보인다. 


이 작품을 감상하는 또 다른 재미는 엠마 톰슨을 중심에 놓고 짜인 전체적인 영화의 분위기다. 안경과 구두를 활용한 의상. 오페라, 시, 피아노 독주와 같은 음악. 법원, 런던 시내, 뉴캐슬 시내와 영국 날씨와 같은 공간적 배경. <칠드런 액트>는 이러한 요소들을 활용해 엠마 톰슨의 지적이고 귀족스러운 분위기를 영화 전체에 도배하는 데 성공한다. 또한 이러한 분위기가 지나치지 않도록 잡아주면서 영화의 전개에 있어 감정적인 울림을 주기도 하는 여러 유머들의 적절한 배치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4. 물론 <칠드런 액트>를 보면서 아쉬운 점이 없던 것은 아니다. 전체적으로 잘 만들어진 영화이지만, 작품의 초중반부와 후반부의 간극이 심하다는 점은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초반부와 후반부, 법정 영화와 휴먼 드라마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서 피오나와 아담의 감정선에 이입을 할 수도, 못할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감정 이입을 하면 두 사람의 만남이 인생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볼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면 이해하기 힘든 치정극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이는 결국 붕괴와 선택이라는 주제를 담아낸 두 개의 세부 플롯이 하나의 유기적인 플롯으로 이어지지 못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또한 개인적으로 스탠리 투치의 '잭'이라는 인물의 활용도 아쉬움이 남는다. 잭은 피오나의 남편으로 극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인물이며 극의 진행에 있어서 리듬감과 유머를 담당하는 캐릭터다. 하지만 스탠리 투치라는 배우의 명성에 비해 캐릭터가 영화 전개를 위해 지나치게 도구적으로 사용되었다는 느낌이 지워지지가 않는다. 초반부 그의 강의 장면을 떠올리면 뭔가 최종 편집에서 분량이 사라진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5. 결국 <칠드런 액트>는 작중 애덤과 피오나가 함께 부르는 'Down by the Salley gardens'처럼 사랑에 맞지 않는 신념과 인생에 맞지 않은 믿음을 지녔던 비슷한 듯 두 영혼, 피오나와 애덤의 변화가 빚어낸 드라마다. 


Down By The Salley Gardens My Love And I Did Meet
버드나무 정원 옆 아래에서 나와 내 사랑이 만나게 되었어요

She Passed The Salley Gardens With Little Snow White Feet
그녀는 작고 눈처럼 하얀 발로 버드나무 정원을 지나갔지요

She Bid Me To Take Love Easy As The Leaves Grow On The Trees
그녀는 나에게 나무에서 나뭇잎이 자라는 것처럼 사랑을 쉽게 받아들이라고 말했지만

But I Being Young And Foolish With Her Did Not Agree
난 어리고 어리석었기에 그녀의 말에 동의하지 못했어요

In A Field Down By The River My Love And I Did Stand
강가 들판에 나와 내 사랑이 서 있었죠

And On My Leaning  Shoulder She Laid Her Snow White Hand
나의 비스듬한 어깨 위에 그녀는 눈처럼 하얀 손을 올려놓았어요

She Bid Me To Take Life Easy As The Grass Grows On The Weirs
그녀는 나에게 둑에서 풀이 쉽게 자라나는 것처럼 인생을 쉽게 받아들이라고 말했지만

But I Was Young And Foolish And Now I'm Full Of Tears
나는 어리고 어리석었기에 이제 나는 슬픔으로 가득하네요



A(Acceptable, 무난함)

완성도 이상으로 믿음과 신념, 선택과 결정이 갖는 무게감을 적절히 살려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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