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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noDAY Jun 11. 2019

세인트 폴 대성당

종교를 넘어 시대와 명예를 담은 건축

1. 다른 나라를 여행할 때 그 나라를 체험할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유명한 랜드마크를 갈 수도 있고 그 나라에서 대중적이고 유명한 공연을 관람할 수도 있다. 여러 맛난 음식을 즐기는 것도 좋은 방법 중 하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한 국가의 정신적 구심점을 이루고 이를 보여주는 장소인 종교 건축물을 찾는 방법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 나라 사람들이 생각하는 방식과 향유하는 문화를 엿볼 수 있고, 그 역사를 살펴볼 수도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일본에서는 신사를 가고, 한국에서는 절과 서원을 방문하며 유럽 여행을 가서 꼭 한 번씩 유명한 성당을 들르는 것도 같은 이유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인생의 숙원 중 하나인 영국 여행을 위해 런던에 도착한 뒤 가장 먼저 발걸음 내디딘 장소가 바로 세인트 폴 대성당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옳은 선택이었다. 왜냐하면 세인트 폴 대성당은 영국과 런던이라는 정체성을 담은 상징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세인트 폴 대성당을 정면에서 바라본 모습. 바로크 양식이 잘 살아있는 두 개의 첨탑과 부조, 기둥들이 인상적이다.


2. 세인트 폴 대성당은 영국 성공회의 성당으로(과거에는 카톨릭 성당이었다) 런던 주교좌성당이며 시티 오브 런던의 러드게이트 힐에 위치해 있다. 이곳은 왕실의 결혼식이나 국장과 같은 국가적 행사가 거행되며 영국 위인들의 무덤으로도 사용되는, 웨스터민스터 사원과 함께 영국의 역사를 함께한 장소이기도 하다.  


세인트 폴 대성당을 처음 보면 로마의 베드로 대성당처럼 거대한 돔이 가장 인상적이다. 물론 바로크 양식의 영향을 받은 것이 분명하듯 깔끔하고 질서 정연하면서 화려한 장식이 가득한 외관도 입장시간이 되기 전에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성당 가장 끝에서 제단을 바라본 모습


성당 외관에 감탄한 뒤 결코 저렴하지 않은 입장료를 내고 성당 안으로 들어가면 길게 뻗어있는 성당의 모습이 가장 먼저 들어온다. 이는 세인트 폴 대성당이 세로로 긴 십자가 모양이기 때문으로 고딕 양식을 받아들인 흔적이기도 하다(고딕 양식을 받아들인 명동성당도 내부 구조는 비슷하다). 그렇기에 고딕 양식의 성당들처럼 세인트 폴 대성당 또한 사제가 미사를 집전하는 제대 및 제단과 성당의 입구/신자석 간의 거리 때문에 더욱 경건하고 신성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밑에서 올려다본 성당의 천장과 돔의 모습


길게 뻗은 십자가의 세로 부분을 따라 성당 내부를 구경하다 보면 십자가의 가로와 세로가 만나는 돔 아래에 이르게 된다. 돔에서 천장을 올려다보면 12 사도와 다른 성인들의 조각, 여러 성경화들이 장식되어 있는데 흥미로운 것은 이 조각들과 그림들의 특징이 조금씩 다르다는 점이다. 실제로 이들 중에는 카톨릭의 영향을 받은 듯 화려한 색채로 감정 표현이 풍부한 작품이 있는가 하면 그보다 절제된 모습으로 개신교의 영향을 받은 듯한 작품들도 함께 배치되어 있다. 영국(잉글랜드)의 국교인 성공회가 비록 개신교의 교파이기는 하나 카톨릭의 전통과 교리를 상당 부분 포함하듯이, 세인트 폴 대성당 역시 과거의 예술과 완전히 단절하지는 않는 형식을 보여주는 셈이다. 또 이는 아직까지도 왕실과 귀족, 계급 등이 남아 있는 영국 특유의 온건한 국민정서의 단면을 보여주는 부분이라고 생각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2차 세계 대전 독일군의 런던 대공습 당시 세인트 폴 대성당


3. 세인트 폴 대성당을 구경하는 재미 중 하나는 영국 역사의 흔적을 찾아보는 방법이다. 런던 대화재 이전의 세인트 폴 대성당, 2차 세계 대전 때 런던 대공습에도 무너지지 않았던 당시의 성당 등 역사 속 모습을 보여주는 그림, 사진, 모형이 위치한 전시관을 통해 세인트 폴 대성당이 목격한 영국 역사를 살펴보는 것도 그 나름의 재미가 충분하다.


넬슨 제독의 묘(좌)와 웰링턴 장군의 묘(우)

또 이 전시관 옆에 있는 세인트 폴 대성당 지하 묘지에는 본인이 설계한 성당 밑에 잠들어 있는 건축가 크리스토퍼 렌은 물론 나폴레옹 전쟁의 두 영웅인 넬슨 제독웰링턴 장군을 비롯한 수많은 영국의 위인들이 안장되어 있다. 또한 그동안 영국이 참전한 수많은 전쟁의 전사자들을 기리는 기념비들이 함께 위치해 있기도 한데, 한국 전쟁 참전 전사자들을 기리는 기념비도 있다.


한국 전쟁 참전 전사자 추념비


개인적으로는 전시관보다도 성당 지하에 위치한 묘지를 둘러보는 시간이 더욱 뜻깊었다. 물론 한국과 관련된 공간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뿐만 아니라 이 묘지들과 기념비들을 통해 국가를 위한 헌신과 그에 대한 합당한 보상 및 대우가 이루어지는 감동스러운 광경을 목격할 수 있었고(안타깝지만 한국에서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독립유공자들과 그 후손들을 생각해보면 더욱...), 영국 특유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문화가 어디서 비롯되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또 한국의 상황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는 점이 눈에 들어오기도 했다. 한국의 경우 전쟁기념관, 독립기념관, 현충원, 종묘 등이 다 따로 위치해 세인트 폴 대성당처럼 역사, 문화, 종교가 전부 결합된 공간이 많지 않다. 물론 영국과는 달리 혼란스러운 근현대를 거쳤기 때문에 불가피한 부분이겠지만 막상 런던에 와보니 일말의 아쉬움이 남는 것도 사실이었다.  


돔에서 바라본 런던 시내 풍경
돔에서 바라보는 샤드와 타워 브릿지의 모습
돔에서 바라보는 런던아이와 빅벤의 모습

4. tvn의 <알쓸신잡 3>에서 피렌체를 방문한 출연자들이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의 '두오모'를 올라가려고 애썼던 것처럼 세인트 폴 대성당에서 가장 매력적인 스팟 또한 돔이라고 할 수 있다. 과거에는 런던에서 세인트 폴 대성당보다 높은 건물을 지을 수 없었으므로 이 돔에서 런던의 스카이 라인을 한눈에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템즈 강과 런던의 명소인 런던 타워, 타워 브릿지 등이 위치한 시티 오브 런던, 그리고 최근에 만들어진 현대적인 도시의 모습을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한눈에 담을 수 있는 그 찰나는 런던 여행을 통틀어 가장 황홀한 순간이기도 했다.


밀레니엄 다리 위에서 바라본 세인트 폴 대성당


5. 세인트 폴 대성당 관광은 성당 밖까지 이어진다. 세인트 폴 대성당으로부터 런던의 과거와 현재를 맛볼 수 있는 길이 있기 때문이다.  우선 성당 남측으로 나오면 템스 강이 위치해 있는데, 템스 강에는 한강처럼 많은 다리가 있다. 그중 세인트 폴 대성당에서 템스 강을 건널 수 있는 다리는 밀레니엄 다리로 <해리포터와 혼혈왕자> 영화 초반부에 죽음을 먹는 자들에 의해서 파괴된 바로 그 다리이기도 한다. 나 같은 포터헤드라면 소소한 재미를 발견하기 충분한 장소인 셈이다. 이 밀레니엄 다리를 통해 템스 강을 건너면 과거 화력 발전소를 리모델링한 현대 미술관인 '테이트 모던'으로 바로 입장할 수 있으며, 이곳에서는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따라서 런던의 과거와 현재를 가로지르는 멋진 관광코스를 즐기는 것까지가 세인트 폴 대성당의 마지막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해리포터와 혼혈왕자> 영화 속 세인트 폴 대성당과 밀레니엄 다리


테이트 모던 전경


테이트 모던에 전시된 바바라 크루거(좌)와 몬드리안(우)의 작품들


6. 물론 세인트 폴 대성당의 입장료는 결코 싸지 않다. 그리고 지하와 성당 1층, 꼭대기에 위치한 돔까지 오가는 그 수고로움도 상당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 다움을 느껴보고 싶다면, 런던의 시간적 흐름을 목격하고 싶다면 충분히 방문할만한 가치가 있는 공간이라고도 생각한다.


가끔은 성당에 신 말고 더 중요하고 매력적인 가치가 살기도 한다




입장할 때 오디오 가이드(무료, 한국어 지원)를 활용한다면 더욱 알차고 세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으니 예술, 역사, 종교에 관심이 있다면 사용하는 것도 좋은 선택이다.

단 하나 아쉬운 것이라면, 성당 내부 촬영이 안 된다... 물론 실제로 보는 것과 사진은 엄연히 다르지만 안타까운 것은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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