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영화를 본다는 것은 여러 종류의 문화를 한 번에 접하는 행위다. 우리는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며 여러 사람들과 함께 그림을 감상하고 음악을 들으면서 공연예술(연극, 뮤지컬, 오페라)을 접하기도 하지만, 철저히 개인적인 관점에서는 독서를 하는 것과도 같은 감흥을 느낄 수 있다. 서로 다른 분야의 예술이 하모니를 이룰 때의 감흥을 느끼는 셈이다. 이는 바꿔 말해서 관객들이 영화를 보기까지 그 이면에 수많은 사람들의 땀과 노력이 숨어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한 편의 영화를 본 뒤 제작진의 코멘트가 들어간 메이킹 영상을 보는 것이 그 작품을 이해하고 사랑하는데 큰 역할을 할 수 있다고도 생각한다. 따라서 (물론 포터 헤드이기도 하지만) 해리포터 스튜디오 투어는 내 취향을 정확하게 저격한 최고의 스나이퍼였다.
해리포터 스튜디오 입구 전경(좌)과 입구 내부 풍경(우)
2. 런던 외곽 왓포드에 위치한 해리포터 스튜디오는 시리즈가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자 영화 당시 사용되었던 세트장을 파괴하지 않고 영화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맛볼 수 있도록 관광지로 재개발한 장소다. 그래서일까, 개인적으로는 해리포터 스튜디오 투어를 할 때 해리포터 팬과 영화 팬이라는 두 가지 관점에서 서로 다른 인상적인 면을 느낄 수 있었다.
우선 해리포터 팬으로서 가장 좋았던 경험이 무엇이었냐고 묻는다면, 단언컨대 소개 영상을 본 뒤 대연회장 문이 열리는 그 순간이라고 할 수 있다. 마치 초등학교 4학년 어느 조용한 일요일 아침에 처음으로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을 읽던 그때 그 짜릿함이 다시 펼쳐지는 기분이기도 하며,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에서 처음으로 대연회장이 영화 속에 등장하는 장면을 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직접 체험할 수 있으니.
대연회장 입구(좌)와 대연회장 입구가 열린 모습(우)
세팅되어 있는 대연회장 기숙사 테이블(좌), 그리핀도르 교복(우)
후플푸프 기숙사의 교복(좌) 레번클로 기숙사의 교복(우)
슬리데린 기숙사의 교복(좌) 덤블도어 교수의 옷차림(우)
호그와트 교직원 옷차림. 왼쪽부터 무디, 트릴로니, 맥고나걸, 덤블도어, 스네이프, 해그리드, 필치. 오른쪽에 깨알 같은 기숙사 점수 판
3. 대연회장 각 기숙사 테이블, 상징, 교복 그리고 교직원들의 옷차림 등을 보고 나며 호그와트 복도, 정문, 비밀의 방 입구, 그리핀도르 기숙사, 호그와트 교장실, 버로우, 스네이프의 마법약 교실, 마법부, 금지된 숲, 말포이 저택 등의 세트장과 촬영 당시 사용된 각종 의상, 소품 등을 구경할 수 있다. 또한 이 소품들에는 당시 제작 및 촬영과 관련된 비하인드 스토리가 함께 적혀 있다.
호그와트 장학사의 포고령(좌)과 소망의 거울(우)
그리핀도르 기숙사 휴게실(좌)과 교장실(우)
마법약 교실(좌), 비밀의 방 입구(우)
버로우, 말포이 저택
블랙 가문의 가계도, 엄브릿지의 사무실
'마법은 힘이다' 석상, 금지된 숲
4. 금지된 숲 지역을 지나면 킹스 크로스 역, 9와 3/4 승강장, 호그와트 급행열차, 프리벳가 4번지, 버터 맥주를 맛볼 수 있는 카페테리아 등이 등장한다. 이전까지는 조심스럽게 영화에 사용된 소품을 구경하는 거라면, 이 공간은 조금 더 직접적인 체험(사진을 찍는다거나)이 가능하다. 이 지점까지가 아마 해리포터 팬으로서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한, 영화 속 주인공이 되는 판타지를 실현시키는 쾌락에 빠져있던 순간이었을 것이다.
9와 3/4승강장, 호그와트 급행열차
열차 객실(영화 혼혈왕자 기준), 주인공들의 옷(죽음의 성물 2부 결말부)
버터맥주와 구조 버스
프리벳가 4번지 내부, 호그와트에 있는 다리
고드릭 골짜기에 위치한 어릴 적 해리의 집
5. 하지만 영화 팬으로서는 조금 다른 부분에 더 흥미가 동할 수밖에 없기도 했다. 그린 스크린에서 GG로 만들어진 배경에 서서 빗자루를 타거나 나는 오토바이를 타는 사진을 찍어 본다거나, 여러 컨셉아트를 보면서 영화 장면을 떠올려 보고,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생물들을 만들어 내는 엔지니어들이 일하던 공간과 방법을 둘러보고 나면, 단지 해리포터 팬이 아니더라도 한 영화와 단 한 장면을 만들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땀이 뒷받침되어야 하는지를 새삼 느낄 수 있다. 해리포터를 보지 않았더라도 혹은 열렬한 팬은 아니더라도 영화를 사랑한다면 현재 할리우드에서 영화를 어떤 방식으로 제작하는지 빙산의 일각이나마 살펴볼 수 있는 색다른 기회인 셈이다.
그린 스크린에서 빗자루 타기, 세스트랄 모형
인어 제작 과정, 늑대인간 제작 과정
호그스미드 모형과 호그와트 설계도
그린고트에서 탈출하는 용. 컨셉아트(좌)와 실제 영화 장면(우)
죽음의 성물 2부 후반부 장면. 컨셉아트(좌)와 실제 영화 장면(우)
호그와트 전경. 컨셉아트(좌)와 실제 영화 장면(우)
해리포터 스튜디오 투어의 끝은 다이애건 앨리 축소 세트와 호그와트 미니어처 모형이다. <해리포터> 영화를 보다 보면(또한 스핀오프인 <신비한 동물사전>도 마찬가지지만) 영화에서 다이애건 앨리와 호그와트 전경이 많이 등장하는데, CG로 구현하거나 세트를 지어 촬영하기도 했지만 이 미니어처 세트로 촬영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영화 속에서 보이던 다애이건 앨리의 상점들과 호그와트의 여러 장소들이 어떻게 연결되어있는지 그 광경을 볼 수 있는 흥미로운 마무리다.
다이애건 앨리 세트와 호그와트 미니어쳐
6. 모든 투어를 끝내면 황홀해하는 포터헤드들을 기념품 샵이 환영해준다. 이 곳에는 지팡이를 비롯해 호그와트 교복, 마법사 옷, 반지와 같은 각종 장신구들, 문구들까지 다양한 종류가 마련되어 있으며 근래 개봉하고 있는 <신비한 동물사전> 시리즈의 굿즈들도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킹스 크로스 역에 있는 기념품 샵이 다소 작더라도 더 다채로운 구성의 상품들로 무장한 듯한 느낌이기도 하다.
킹스크로스역, 진짜 9와 3/4 승강장
각종 기념품들
기숙사 관련 기념품 코너
7. 결국 해리포터 스튜디오(와 킹스크로스 역)는 그저 평범한 컨테이너 건물과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멋진 지나가는 기차역에 불과할 수도 있는 장소가 책과 영화를 통해 스토리를 갖고, 그 안에서 새로운 산업이 창출되는 것을 실시간으로 목격할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비록 과거에 비해서 국력이 약해졌다고 해도 여전히 영국이 선진국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는 이유인 영국의 소프트파워를 맛볼 수 있는 공간인 셈이다.
그래서 솔직히 말해 해리포터 스튜디오는 설사 해리포터 팬이라 해도 다소 지루할 수도 있다. 기본적으로 오사카 유니버설 스튜디오에 있는 '포비든 저니'와 같은 놀이기구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영화 속 공간과 소품들을 직접 보고 만들어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에 의의를 두는, 그러니깐 영화 메이킹 영상을 보는 것과 같은 경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해리포터 스튜디오는 해리포터 팬보다도 영화 자체를 사랑하는, 영화가 제작되는 그 과정마저도 반짝이는 눈으로 볼 수 있는 분들에게 더 뜻깊은 공간이 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