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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noDAY Jun 07. 2019

외로움

군인도, 군대도 사회의 일부인데

1. 훈련소에서 사격훈련이 있던 날이었다. 조교들의 착오로 인해서 나는 같은 소대원들과 떨어져서 먼저 사격훈련을 진행하고 타 소대들과 함께 생활관으로 복귀했고, 같은 생활관 훈련병들은 사격장에서 훈련을 마저 이어가고 있었다. 인원들이 다 돌아올 때까지 생활관에서 홀로 대기하는 중이었다. 불 꺼진 생활관은 너무나도 규칙적이었다. 다 같은 모양과 크기로 아무 특색 없는 관물대들, 같은 모양으로 줄 지어 정리된 침구류들, 순서대로 발맞추고 있는 신발들... 그 누구의 흔적도 느껴지지 않는 공간이구나 라는 생각이 드는 찰나, 내 눈과 볼이 뜨거워졌다. 갑작스레 복받쳐 오르는 감정, 그때만 해도 알 수 없었던 그 감정에 의문을 가지면서도 그 자리에서 펑펑 울고 말았다.


2. 전역이 얼마 남지 않아 모아둔 휴가들을 사용해 15일 간 출타한 어느 날이었다. 가족들도 모두 출근하거나 각자 일을 하러 가고, 친구들도 모두 자신들의 스케줄에 맞춰서 움직이는 아침에, 나는 멍하니 침대에 누워있었다. 그 순간만큼 나에게는 일상이 없었다. 뭐라도 하고 싶어서 조조 영화 시간을 확인한 뒤 영화 한 편을 보고, 영화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며 공원길을 따라 걸어오는 길이었다.


몇 명 지나다니지 않는 공원길에는 봄을 맞아 단장한 나무들과 매혹적인 향을 내뿜는 꽃들, 이들을 감싸주는 따뜻한 햇빛으로 가득했다. 그리고 그곳을 걷는 검은 그림자 하나. 내 그림자 하나가 있었다. 그림자에도 무게가 있다면 믿을 수 있는지. 그림자가 무거워서 걸을 수 없는 기분을 아는지. 1년 중 가장 밝고 따뜻해야 할 순간에 내 그림자는 나의 발걸음을 붙잡고 있었고, 나에게 2019년의 봄은 훈련소에서의 가을과 겹쳐지며 여느 봄과 달리 그저 파란색, 추울 뿐이었다.



3. 사람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 안에서 살아간다. 그 관계가 사라질 때, 무너지고 파편화될 때 우리는 외로움을 느끼곤 한다. 역시 연락 수단의 부재로 인해서, 강원도라는 지역적 한계로 인해서, 그리고 최전방에서 근무하는 보직의 특수성으로 인해서 사무치는 외로움이 무엇인지 안다고 생각했었다. 특히 GP에서 있던 3달간, 단지 누군가를 보고 싶다는 외로움이 아니라, 나를 구성해주던 소중한 이들이 내 영역 밖으로 빠져나가면서 나라는 정체성이 조금씩 무너져가는, 그러한 외로움은 부대 안의 그 누구도 해결해 줄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나는 내가 왜 훈련소에서 울음을 터뜨렸는지 알 수 없었다.


4. 끝날 때가 되어서야 깨달은 것은 우리의 외로움은 단지 사람을 그리워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내가 세상에서 분리되어있다는 깨달음, 군대라는 거품 밖에 나가면 그곳에 내 자리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두려움, 내가 그리워하는 세계는 이미 과거의 것이고 이제 내가 알지 못하는 세상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당혹스러움 이 모든 것이 섞인 것이었다. 나는 단지 2주 정도 혜성처럼 등장했다 사라지는 그런 존재였고, 내가 아는 '나'라는 정체성마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으니. 세상과 내가 더 이상 관계를 맺고 있지 않다는 기분. 내가 세상에 영향을 전혀 주지 못한다는 기분. 이 외로움은 단지 여자 친구가 있고 없고 밖에서 인싸였는지 아싸였는지의 문제가 아니다.



5. 결국 인간관계를 넘어서는, 사회로부터 전인격적으로 분리된다는 두려움이 외로움의 기본적인 배경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데 조금만 더 생각하면 이것도 참 어이없는 상황이다. 군대라는 집단 또한 사회를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인데, 왜 우리는 군대에 들어가면 사회와 단절된다고 생각할까. 왜 군대 안에서는 "사회에서는~"이라고 말하며 스스로를 사회와 단절시키는 걸까. 이 답을 찾는 것이 진짜 '선진병영'을 위한 첫걸음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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