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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시호 Oct 25. 2018

음악의 언저리<2>:  충동

충동이거나 충동적인 인간의 표현이거나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 우리는 그것이 가상의 이야기인 것을 잘 알면서도, 울고 웃습니다. 때로는 화를 내고요. 이런 감정의 동요는 등장인물에게 스스로를 어느 정도―그것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간에―이입하면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러니까 아마 거울뉴런의 작용 때문이겠죠(문송해서 잘 모르지만 막던짐 주의). 아무튼 간 감정이란 것을 분류해서 그 기표를 정교화하자면 한도 끝도 없으나, 흔히들 하는 말로 희로애락을 거칠게나마 꼽아볼 수 있을 겁니다. 기쁨과 분노, 슬픔과 즐거움. 그런데 이 가운데 속성이 조금 다른 하나가 있으니 바로 분노입니다. 기쁨이나 슬픔, 분노 모두 원인이 있다는 것은 같으나, 분노는 감정을 갖는 대상으로 하여금 부차적인 행위를 추동합니다. 대개 그 행동에는 구체적인 피행위자 혹은 집단이 있고요. 기뻐→나는 춤추고 싶어>_< 슬퍼→나는 울고 싶어ㅠㅠ 보다 다소 구체적이게 분노는 이런 식이죠. 화가 난다→내가 저 자식을 때려주고 싶다! 분노는 이렇게 어떤 행위를 추동하는 덕분에 극을 이끌어 나가는 힘이 됩니다. 기뻐서 춤을 춘다면 거기 이어지는 필연적인 전개가 잘 상상되지 않지만, 화가 나서 보복 등 다른 파괴적인 행위를 한다면 다양한 전개의 개연성이 생깁니다. 그래서 극 중에는 처죽일 놈이 나오고, 관객은 그놈을 보면서 부들부들하다가, 흔한 결말을 따라 그 처죽일 놈이 벌을 받으면 그때 비로소 명치께를 억누르던 답답함이 가라앉죠. 정교빈!!!!!!!!!!!!!!


모차르트의 <돈 조반니>에서는 그럼 나쁜 놈이 누굴까요? 여기서 악인은 누가 봐도 타이틀롤인 돈 조반니입니다. 돈나 안나를 겁탈하다 걸려 그녀의 아버지를 죽이고, 돈나 엘비라를 버리고, 새신부 체를리나를 유혹하고. 사회적 규범에 따르자면 그는 범죄자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일단 형사로 걸리는 것만 해도 강간 미수와 살인이 있고요, 간통은 폐지되었으니 형사로는 못 건다고 치고, 엘비라 건은 뭐 그냥 남녀상열지사라고 생각하더라도, 일단 다 제치고라도 사람을 죽였으니까요. 미국처럼 그 죄의 건건을 물어 형을 누적해서 막 형이 300년까지도 나올 수 있는 시스템이라면, 돈 조반니는 남은 인생보다 긴 형량을 선고받을 겁니다.


그런데 관객들은 전개되는 극 안의 돈 조반니를 보면서 열이 받아 부들부들하지는 않습니다. 드라마에서는 찌질한 악역이 사회적 약자인 주인공한테 갑질만 좀 해도 저놈 언제 철퇴 맞나 기다리게 되는데 말이죠. 사랑과 전쟁에서 주로 상간녀 역할을 맡았던 한 배우가 어느 인터뷰에서, 갑자기 길에서 욕을 듣는 경우가 그렇게 많았다고 했던걸 읽은 기억이 납니다. 또한 예전에 뮤지컬 <닥터 지바고>를 본 적이 있는데, 관계자 말로는 이 대작을 보고 나와서, 기혼 여성들은 전부 ‘지바고 저 조강지처 버린 놈’이라는 이야기만 하더라는 겁니다. 물론 그 대서사시를 세 시간 뮤지컬로 각색을 하다 보니 드라마트루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이고 그 과정에서 균형이 완벽할 순 없었지만, 아무튼 분노란 이렇게 쉽게 이입되는 거라는 것을 새삼 절감할 수 있었습니다. 투쟁하는 인간의 숭고함이라든지 이데올로기 앞에 인간의 한낱 무력함이라든지 그런 걸 다 제치고 표면으로 올라올 정도로요. 그런데 돈 조반니는 사람도 죽이고 성범죄도 저지르려고 했는데 왜 관객들로 하여금 ‘부들부들’을 유발하지 않는 걸까요? 타이틀 롤이라서? 


거부할 수 없는 너의 매력은 루시퍼..는 아니고 돈 조반니로 분한 안토니오 스코티(출처:위키미디어 커먼스)


주인공 버프라는 건 무시할 수 없지만 그런 이유는 아닐 겁니다. 사실 그건, 돈 조반니가 여기서 ‘인간’으로서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그는 비록 의인화되었지만, 개념 그 자체입니다. 우리는 사람에 화가 나지 개념 자체에 분노하지는 않습니다. 나쁜 놈한테 화가 나지 나쁨 에 화를 내진 않으니까요. 물론 작품에 캐릭터로 녹아들기 위해 인간의 형상을 빌리고는 있지만, 그에게 인간적인 면모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오히려 레포렐로가 인간적인 느낌이죠. 권력에 굴복하면서도 일말의 양심과 싸우기도 하고 등등. 반면 돈 조반니는 ‘(성) 충동’그 자체입니다. 그리고 그 관념을 보다 친숙하게 현상하기 위해서 그 관념에 '인두겁을 씌운' 겁니다. 그래서  상징계나 질서를 상징하는 역할조차 그를 벌하지 못합니다. 기사장, 분명 등장은 오달졌는데 엄밀히 말하면 돈 조반니를 완벽하게 벌하지는 못했어요. 그냥 지하 세계로 끌고 갔을 뿐. 지하 세계에서 돈 조반니가 어찌 되었을지는 모르는 일입니다. 남은 인물들은 피날레에서 와 나쁜 놈이 벌받았다 권선징악 인과응보 자업자득 하지만 그건 정신승리일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일까요! 모차르트도 돈 조반니의 아리아에 악역에 걸맞는 음악적 연출을 하지 않았습니다. 돈 조반니를 그렇고 그런 나쁜 놈으로 둔 것이 아니라 "충동 그 자체"인 것으로 만들었죠. 다 폰테가 그것을 얼마나 의도했을지는 모를 일이지만요. 민간 정서는 중요한 거니까 피날레에서 돈 조반니는 끝나기 직전 두려움을 급 느끼고, ‘돈 조반니가 벌을 받았다’라는 서사를 다른 등장인물들이 발화해야 했지만, 악인이 (안타깝게도 항상은 아니지만) 벌을 받는 것에 반해 충동 그 자체는 벌을 받지 않습니다. 개념이니께


물론 이야기의 소재가 된 실존인물이라 전해지는 돈 후앙은 그냥 호색한, 발정 난 나쁜 놈이었을 겁니다. 눈 앞에서 석상이 살아 움직이기라도 한다면 방광 근육이 자신도 모르게 이완되어버렸을 그런. 두려움도 느끼고 고뇌도 하고 호색하는 와중에 어쩌면 사랑에도 빠지고 등등. 하지만 모차르트는 작품에서 그러한 인물이나 인물의 속성이 아닌 '개념'을 다뤘는데,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일 지 사실 상상도 하기 어렵습니다. 그것이 기악음악이라면 프로그램 노트로 어떻게 눙쳐볼 수도 있지만, 노래하고 연기하는 인간 자체가 연주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장르인 오페라라면, 한층 어려울 겁니다. 인간을 사용해서 인간이 아닌 것을 표현하기. 그런데 모차르트는 그걸 음악적으로 해냅니다. 음악적 세팅을 통해서! 하지만 그 이야기를 하자면 너무 깊이 들어가야 하고, 대개는 안물 안궁인 영역까지 구구절절 이야기해야 하고 그것이 설득력은 있으나 정성스러운 궁예질이라고 공격받는다면 글쓴이가 입을 대미지가 너무 크기 때문에 ((((((소중하고 예민한 나)))))) 가장 쉽고 간단한 예를 한 가지 들어볼게요. 


돈 지오반니가 엘비라의 하녀를 유혹하기 위해서 창 밖에서 세레나데를 부르는 부분에서 음악이 좀 ‘뜨는’ 느낌이 들지 않나요? 앞뒤로 풍성한 오케스트라 음향을 자랑하는 와중에 만돌린 하나만으로 앙상하게 반주되는 이 노래. 모차르트 오페라에는 이렇게 뜨는 음악이 종종 나옵니다. 피가로의 결혼에서 백작부인이 처연하게 부르는 아리아라든지. 돈 조반니가 ‘로맨틱함을 가장하여 이성을 유혹한다’는 인간적인 면을 가지고 있을 리 만무합니다. 아마 학습했겠죠. 이해가 안 가면 외워! 의 전형으로 말입니다. 인간적인 면(다른 사람의 감정을 헤아리고 거기 공감할 수 있는 능력 혹은 죄책감 등)이 선천적으로 결여되었다고 하는 일명 사이코패스들 가운데 반사회성 장애가 어린 시절에 발견되고 크게 공격적으로 나타나지 않는 경우 훈련을 통해서 일반인들과 섞여 살아갈 수 있는데, 이때 하는 훈련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런 학습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이런 이런 거를 좋아해, 저런 저런 거를 싫어하기 때문에 법으로 정해져 있고 저런 저런 거를 하면 벌을 받게 돼 등등. 그래서 모차르트는 돈 조반니가 카바티나라는, 쉽고 짧고 배우기 쉬운 카바티나 형식을 선택했습니다. 반주도 극도로 단순화했고요. 어린이들의 동요처럼, 외국어를 배울 때 초반에 접하는 문장처럼, 그렇게 ‘학습’ 가능한 인간 생태 형식을 고른 거죠.


모차르트는 대가들이 그랬던 것처럼 다양한 층위의 이해 수준에서도 모두 만족감을 얻을 수 있게 작품을 썼습니다. 대위법을 배우고 바흐의 푸가를 들으면 소오름이 돋고 경외감이 들지만, 그런 거 모르고 들어도 선율의 아름다움에 몸을 맡길 수 있는 것처럼, 혹은 영화의 시리즈물에서 잘 만들어진 2편은 1편을 모르고 봐도 재미있지만, 알고 보면 남들보다 더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것처럼요. 모차르트는 카바티나 장면을 아무것도 모르고 들어도 아름다운 음악을 써서, 음악적 흐름을 아는 사람들에게는 그 생뚱맞음을 개그코드로 해서 웃을 수 있게도 했고, 관념 놀음을 좋아하는 변태들에게도 남몰래 떡밥을 던져준 작곡가입니다. 아무리 찬탄해도 모자라고 직접적인 감사는 표할 방도조차 없으니, 우리 그냥 같이 음악이나 들어볼까요?





https://www.youtube.com/watch?v=n6dXiybqMpo
Wolfgang Amadeus Mozart, <Don Giovanni> :‘Deh, vieni alla finestra’ (‘Oh, come to the window’)
Bar. Gerald Finley 
돈 조반니가 부르는 카바티나 형식의 세레나데





다양한 층위의 이해 수준에서 모두 만족감을 주는 모차르트의 음악에 관한 다른 글이 여기 있어요 : ) 
https://brunch.co.kr/@musicology/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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