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받고 싶은 욕망

유튜브에서 리액션 채널만 보는 사람

by 강우

1화. 결핍=긁? 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나는 효율을 엄청 따지는 사람이다.

집안일을 할 때도 동선을 생각해서 가는 방향에 있는 모든 일을 한 번에 처리해야 직성이 풀리고, 투자 시간 대비 결과가 나오지 않을 듯한 일은 시작조차 안 하는, 정말이지 비효율적인 일로는 손가락 하나 까딱 하기 싫어하는 이상한 게으름뱅이다.


그런 나를 한 번쯤 일으켜 세우는 말이 있다면, 인정이다.

막연한 칭찬보다 구체적으로 내가 한 일의 가치와 수준을 알아보고 이해하는 인정.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던데 인정은 나를 춤추게 한다.




어려서부터 학교에서 상을 많이 받았고, 상 받을 때마다 부모님께 칭찬받는 게 좋았다.

아침 조회 시간에 불려 나가 상장을 받는 것도, 교무실에 가면 선생님들이 알아봐 주는 것도 좋았다.

과정보다 결과를 칭찬하는 건 딱히 내 부모님만의 잘못이라거나 시대 탓은 아니었다.

나부터도 아이의 과정보다 자꾸 '잘했다', '잘 그렸다' 같은 결과물에 대한 말만 하니까.

그럭저럭 잘하는 아이가 칭찬으로 강화받았으니 얼마나 열심이었을까.

내가 생각해도 난 좀 이상하리만큼 모든 일에 열심이고 심하게 성실한 국민학생이었다.



그런데 중학교 때부터 부모님이 별거를 시작하며 상황이 달라졌다.

평생 전업주부로 살다 갑자기 일을 나가게 된 엄마와 원래도 출장이 잦았던 아빠 사이에서 카드 한 장 받고 혼자 사는 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더는 내 상장과 성적을 칭찬해 주는 사람이 없자 나는 빠르게 흥미를 잃었다.

하필 사춘기가 왔으니 더 그랬을 테고.

어느새 주객이 전도되어 인정해 주는 사람이 없다면 잘하고 싶은 의욕도 없는 인간이 된 셈이다.




성인이 되어서도 쭉 인정이 고팠다.

사주팔자에 혼자 일하는 게 낫다고, 아무리 잘해도 공을 인정받지 못하고 주변에 빼앗기거나 남 뒤치다꺼리만 하는 운이라더니.

과연 잘해도 잘했다는 말 한 번을 못 들었다.

공짜로 일하는 것도 아니고 월급도 받고 있으니 왜 인정을 안 해주냐는 말은 투정이었지만, 누군가는 대단찮은 것도 잘 포장해서 인정받던데 나만 매번 그림자 속의 해결사인 것 같아 가끔 화가 났다.

그러다 못 참을 지경이 되면 이직했고.



대신 게임을 곧잘 했다.

40인 공대를 이끄는 공대장도 하고, 공략 영상도 찍고, 뭐 그러면서 게임 속에서라도 꼭 필요한 사람이 되는 걸 즐겼다.

그런데 아이가 태어나고부터 도저히 여럿이 함께 하는 게임을 할 시간이 나지 않았다.

거기에 아무리 해도 티도 안 난다는 집안일의 늪에 빠졌으니 정말 미칠 것 같았다.

나는 늘 피곤해서 기절할 지경으로 일하는데 듣는 말이라곤 애가 발달이 느리다는 둥, 음식이 별로라는 둥, 그래도 집에 있으니 편하지 않냐는 소리뿐이었다.




그때, 내게 위안을 준 게 유튜브다.

정확히는 외국인 리액션 채널들.



나는 노래조차 그냥 듣지 못하고 꼭 외국인 보컬 코치들이 영상 보면서 조목조목 칭찬하고 감탄하는 리액션 채널로 본다.

내가 못 받은 인정, 남이라도 펑펑 받는 걸 보면 너무 뿌듯해서 스트레스가 심할 땐 몇 시간씩 리액션 채널들을 보며 시간을 버린다.



국뽕과는 좀 다르다.

한국이 얼마나 좋은 나라인지 이런 칭찬 자체는 아무런 감흥이 없으니까.

그저 내가 인정하는 누군가가 다른 사람들의 인정을 받는 걸 보는 게 좋다.

그들의 재능이 얼마나 대단하고 희귀하고 소중한 것인지, 특히 기술적인 부분을 구체적으로 칭찬할 때 그게 그렇게 만족스럽다.



나는 시한부 엄마나 아빠가 나오는 식의 가족 드라마, 영화를 싫어한다.

관객을 울리겠다는 속셈이 너무 뻔해서 오히려 싸늘하게 식어버린다.

그걸 보고 우는 게 바보 같다는 생각도 한다.


그런데, 드라마든, 영화든, 소설이든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고 억울한 상황에 처한 주인공을 보면 이따금 얼굴이 벌게지거나 눈물이 난다.

참 이상한 사람이 아닐 수 없다.




인정받고 싶은 욕구는 때때로 자신을 너무 과대평가하는, '세상이 나를 몰라준다'는 착각과 맞물려 있기도 하고, 끊임없는 비교와 성과주의적 삶을 사는 탓에 스스로를 불행하게 만든다.


또한, 우주의 중심이 나라고 생각하는 나르시시스트로 빠질 수도 있는데, 이미 그런 사람 밑에서 자라 본 나로서는 심히 두려운 일이다.


그래서 결핍을 달랜다는 게 리액션 채널이다.

내가 원하는 만큼의 인정을 원하는 때에 받아낼 수 없으니 남이 받는 걸 보며 대신 기뻐하는 것.

한 번씩 폭주하면 아까운 시간을 버린다는 점 말고는 제법 무해한 취미다.

나 자신을 알고자 노력했기에 발견해 낸 나름 소중한 취미이기도 하고.


오늘도 나는 타인에게 쏟아지는 찬사를 훔쳐보며, 내 안의 굶주린 인정 욕구를 달랜다.


엇. 적고 보니 조금 찐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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