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마이너 해서 못 뜨는가

웹소설의 마이너

by 강우

웹소설 작가 지망생들이 가장 많이 하는 질문과 한탄이 바로 저 마이너 한 취향입니다.

긴 독자 생활 끝에 내 취향에 맞는 글을 직접 쓰기 위해 작가를 지망했다며, 그런데 그 취향이라는 게 너무 마이너 한 바람에 어디서도 투고 합격을 못 받았다는 거죠.

그럼 뭐가 그렇게 마이너 한가 물어보면, 우주 함선 전투나 촉수물과의 연애, AI와 사랑에 빠지는 여자 같은 걸 쓰고 싶어서 큰 일이라고 대답합니다.

여기서 문제가 있습니다.

웹소설의 마이너를 왜 소재라고 생각하죠?


마이너 한 소재, 쉽게 말해 남이 쓴 적 없어 보이는 특이한 소재나 설정은 오히려 신인만이 가질 수 있는 강력한 무기입니다.

기성 작가는 보통 안 될 것 같은 내용은 미리 거르고 보기 때문에 오히려 신인의 패기가 뜻밖의 성공으로 이어질 수 있는 틈새시장이죠.


그런데 하늘 아래 완전히 새로운 소재, 새로운 이야기는 없습니다.


왜 단정 짓냐고요? 사실이니까요.


당신이 무엇을 생각해 냈든 이 시점에 전 세계 어딘가의 누군가는 이미 그 이야기를 썼습니다.

다만 모든 소재와 설정이 한 작품과 겹치는 표절이냐 여러 작품에 조금씩 나눠 걸쳐 있냐의 차이일 뿐이죠.


우주 함선 전투 너무 많고, 촉수물? 29금에서는 준 메이저급이며 AI나 로봇과 사랑에 빠지는 인간 이야기는 장르 문학부터 웹소설까지 최근 많이 나옵니다.

덕 중의 덕은 양덕이라고 그들의 커뮤니티에 가면 당신이 상상하던 최고의 마이너조차 이미 흘러넘치고 있는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최근엔 그래서 해외 커뮤니티에서 표절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어쨌든 웹소설에서 마이너는 소재 이야기가 아닙니다.
만약 당신이 데뷔를 못 한다면 그건 캐릭터나 전개가 마이너 한 탓입니다.


그걸 빨리 깨닫지 못하면 투고 합격도 어렵습니다.



캐릭터가 마이너 한 경우(매력이 없거나 장르에 맞지 않는 경우)


여성향 소설을 쓰면서 남주를 키가 작거나 대머리로 그려놓고 외모를 극복하는 진정한 사랑 이야기를 그려낸다면, 네. 데뷔 못 합니다.

데이트 비용 더치페이 안 한다고 빽 거리고 여행 갔다 와서 기름값 달라거나 걸핏하면 힘자랑하는 폭력적인 남자를 조연이 아닌 주연으로 넣고 개과천선 스토리를 쓰고 싶다? 네. 데뷔 못 합니다.


성격이 괴팍한 남자? 서서히 스며들어 내 여자에게만 따뜻한 컨셉으로 가능합니다만 하남자는 안 됩니다.

가난한 남자? 가능합니다만 그걸 상회할 다른 장점이 있어야 합니다.

지질한데 발전하는 남자? 요즘 남성향 주인공 클리셰죠. 이입하기 좋지만 대신 빨리 발전해야 합니다.

먼치킨 여주? 로맨스판타지에서 최근 각광받는 캐릭터입니다. 이럴 경우 보통 여주를 따르는 남자가 많죠. 역하렘물로 좋습니다.

실존 인물이나 해리포터 같은 기존 캐릭터? 고소 안 당하면 다행입니다. 2차 창작, 팬픽쯤으로 분류되어 작가의 저작권을 주장하기도 어렵습니다.

남녀 주인공에게 장애가 있다? 재미를 추구하는 글을 쓰면서 이런 건 건드리지 마세요. 특히 로맨스가 들어가는 장르는 아닙니다. 죽어도 쓰고 싶으시면 아주 잠깐 언급하고 빙의, 환생해서 잘 나가는 걸로만 쓰세요.




웹소설은 철저히 도파민을 추구하고 '킬링 타임용으로 괜찮았어요'라는 댓글이 악플이 아닐 만큼 술술 읽히는 게 핵심입니다.

여기서까지 구질구질한 현실을 확인하며 스트레스받거나 작가에게 '극복'하는 사랑, 지고한 가치에 대해 가르침을 받으려는 게 아닙니다.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소설에서 여성의 희생이나 인내로 진정한 사랑의 가치를 보여준다는 생각은 군부대 앞에서 생리대 파는 소리나 다름없습니다.


자꾸 이상한 교훈을 집어넣지 마세요.

작가가 가르치려고 드는 걸 웹소설 독자들은 제일 질색합니다.




반면, 문어 모양 외계인(이종족, 수인)과의 사랑은 괜찮습니다.

이걸 마이너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대부분의 촉수물은 잘 생긴 인간화가 가능하거나 일부 인간형으로 독자의 거부감을 덜어주며,

신체적 특징을 활용해 여주인공에게 현실에선 불가능한 쾌감을 안겨주는 설정인 데다,

종족을 떠나 성격과 배경은 벤츠남 이거나 여주인공에게 각인한 대형견남 그 자체일 때가 많습니다.


그럼, 이건 마이너라기보다 그냥 잘 생기고 돈 많고 나만 보는 남자, 29금 준 메이저입니다.

즉, 본질, 매력이 더 중요합니다.


웹소설은 현실에 지친 사람들의 심적 도피처이자 대리만족의 예술입니다.


신데렐라 이야기나 구원 서사(백마 탄 왕자님), 먼치킨(압도적으로 강한 캐릭터) 너무 지겹다고요?

그럼 당신은 장르 문법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거나 웹소설에 부적합한 겁니다.

평강 공주 이야기를 쓰더라도 바보 온달이 몸이 좋고 덥수룩한 앞머리 까고 두꺼운 안경 벗으면 엄청 잘 생긴 데다 여주에게 충성한다는 건 강조해야 합니다.

그조차 싫다면 이건 현대판타지 쓰면서 주인공이 처음부터 끝까지 지질하다 지질하게 죽는 이야기 쓰겠다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이야기 전개가 마이너 한 경우(이게 진짜 웹소설의 마이너입니다.)


보통 웹소설은 도입-전개-절정-결말이 도전절-절절절절절-정결 형태입니다.

도입조차 갈등의 절정인 부분을 끌고 와 흥미를 끄는 프롤로그 형태인 경우도 많으며 전개는 거의 절정의 초입일 뿐이죠.

그런데 여기서 독창적인 세계관에 자신이 있다며, 혹은 서사를 천천히 빌드업하겠다며 차곡차곡 도오오오오오입-저어어어언개-절정-결말 형태로 이야기를 끌고 가면, 네. 데뷔 못 합니다.




세계관, 배경 설정은 주저리주저리를 할 게 아니라 보여주세요.

속도감 있는 진행 속에 녹여내야 할 문제지 이걸 무슨 '반지의 제왕'이라고 생각하고 3페이지에 걸쳐 호빗 마을에 있는 나무들에 대해 나열해선 안 됩니다.

던젼물이든 성좌물이든 가이드버스든 네임버스든 아니면 고증이 철저한 오스만 제국물을 들고 오든 간에 설정집은 혼자만 간직하세요.

아니면 세계관 설정집 같은 책을 펀딩 받아 따로 출간하세요.


멋지고 정교하고 철저한 고증을 거친 세계를 만들지 말라는 게 아니라 그게 속도에 방해가 되선 안 됩니다.

섞어서 보여 줄 자신 없으면 독자들이 이미 익숙한 기존 세계관을 이용하세요. (마교와 정파가 나오는 무협, 유사 중세 서양식 판타지, 던젼 브레이크 등등)


독창적일수록 독자들이 이해하기 어렵고 그걸 설명하겠다고 들수록 글이 늘어집니다.

그런 건 더 잘 쓰게 될 때까지 아껴두세요.

아직 데뷔를 못하셨다면 지금은 때가 아닙니다.


실제 역사나 대체역사물은 발전에만 주목하는 남성향에서 쓰세요.

여성향은 반드시 로맨스가 들어가는데, 일제강점기에 피어나는 사랑 이런 거 안 좋습니다.

위에서 말한 장애를 가진 주인공 예시처럼 재미를 추구하는 장르에서 민족의 비극을 건드리며 그걸 로맨스용 배경이나 소품으로 쓰는 건 위험합니다.

유관순 열사께서 죽지 않고 살아 사랑을 이루는 이야기 이런 건 알아서 출판사에서 거절합니다.




현대 판타지나 로맨스 판타지에서 자주 보이는 주인공의 성장 서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개연성 확보하겠다고 자꾸 어린 시절부터 연대기 쓰면 그 부분만 건너뛰고 읽거나 거기부터 안 읽습니다.

예전 일본 소년 만화처럼 새벽부터 일어나 타이어 매고 해변가를 달리며 스탯 찍는 이야기만 20편인 것도 문제입니다.

요즘엔 그 성장 서사가 긴 게 보기 싫다고 회귀, 빙의, 환생해서 이미 다 알거나 다 성장해 본 사람이 과거로 돌아오죠.

시원시원한 속도감이 얼마나 중요한지 몇 번을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또 하나는 새드 엔딩입니다.

웹소설에서 거의 금기시되는 것 중 하나죠.

새드 엔딩은 스포일러가 없는 게 최고지만, 웹소설 판에 한해서는 미리 경고하고 출간해야 할 정도입니다.

독자들에게 선택권을 주지 않은 상태로 그냥 질러버리면 그 필명으로 다음 작품은 어려울 수 있습니다.


글을 쓰다 보면 작가 된 입장에서 열린 결말이나 새드 엔딩이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순간을 느낍니다만 가급적 그 길을 가지 마세요.

웹소설은 극한의 스트레스 프리를 추구합니다.

웹소설의 완성도란 얼마나 독자를 만족시켰냐(그래서 매출이 얼마냐)에 있습니다.
작가의 자기만족과는 가장 거리가 먼, 철저히 소비자 중심의 시장이죠.


그리고 드라마, 영화, 시트콤 등에서도 사람들은 대체로 해피 엔딩을 원하니 단순히 웹소설 판의 문제는 아닙니다.

현실이 이미 충분히 새드 엔딩인 탓이겠죠.




이런 이유들로 독자들의 수준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요즘 시대에 어쨌든 글자를 읽으며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독자들은 상당수 웬만한 작가만큼 책을 읽어 본 사람들입니다.

장르에 따라 기대하고 추구하는 게 다를 뿐, 웹소설을 쓰겠다고 결심해 놓고 이 바닥이 수준이 낮고 단순하다고 생각하면 글도 딱 그만큼 쓰게 됩니다.


또, 희한하게 웹소설 작가 지망생 중에 정작 웹소설은 유치해서 안 봤다거나 등단, 입봉 전에 용돈 버는 곳이라고 표현하는 분들이 많은데 분류 상 나중에 생긴 하위(sub)인 건 맞지만 하등 하거나 열등한 건 아닙니다.

심지어 돈만 놓고 이야기하자면 최상위죠.


그 수준이 낮고 단순한 시장에서조차 밀리언 셀러는커녕 데뷔조차 힘든 상황을 생각해 보세요.

서울대 들어갈 성적도 아니면서 서울대 별 거 아니라고 욕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웹소설도 철저히 계획적이고 기술적인 글쓰기의 세계입니다.




만약 본인이 "나는 마이너 해서 안 뜨나 봐"라는 고민을 하고 있다면, 이 글을 바탕으로 다음 세 가지만 확인해 보세요.


주인공이 '멋지거나' 혹은 '부럽거나' 한가?

첫 3화 안에 사건이 터지거나 주인공의 능력이 보이는가?

내 설정이 독자에게 '공부'나 '교훈'을 강요하고 있지는 않은가?



주인공이 촉수 괴물이라서 데뷔 못 하는 게 아닙니다.
그 촉수 괴물이 매력이 없고 전개가 지루해서 안 되는 겁니다.



다음 편은 지망생 분들의 또 다른 고민거리.

웹소설에서 시점, 어휘, 문체, 필력이 갖는 의미와 문학 작품과의 차이에 대해 적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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