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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원희 Mar 06. 2021

생활자의 일기

십 년 입은 코트 두 벌을 버렸다. 밤새 배가 아팠다. 잠은 고사하고 화장실과 방을 오가는 짧은 길에서 오만가지 생각을 했다. ‘날이 매우 따뜻해졌어, 겨울 코트가 좀 낡았지, 봄이 빨리 오려나, 코트 겉감이 많이 해졌는데, 옷장 정리를 해야겠네, 배탈은 왜 난 거야…’ 해는 무심히 뜨고, 정신이 들자마자 옷장에서 얇아진 겨울 코트 두 벌을 꺼냈다. 짙은 남색과 밝은 회색 코트. 스무 살 겨울에 산 방방하고, 두툼한 코트다. 십 년 동안 나의 겨울을 책임졌다. 며칠 전까지도 구겨질까 봐 전전긍긍하며 보관하던 코트를 대충, 툭툭, 세 번 접어 쓰레기봉투에 꾹꾹 눌러 담았다. 현관문을 열고 문 앞에 휙. 언제나 버리는 건 쉽다.


문 앞에 던져 놨던 쓰레기봉투를 들고, 한 손은 주머니에 넣고 슬리퍼를 끌었다. 분리수거함에 던져질 이 봉투 안에 열 번의 겨울이 가득 차 있었다. 누군가와 포옹을 했고, 후후- 불어먹던 어묵 국물을 흘렸고, 몇 번씩 탁탁 털어 널어두기도 했고, 이사 다닐 때마다 여러 곳의 세탁소에 맡겨지기도 했다. 수거함 앞에서 쓰레기봉투를 던지고 돌아서는데 지난밤, 배가 아프지 않았다면 오늘 이 코트를 버렸을까 싶었다.


버리는 건 뭘까. 생활을 정돈하는 걸까. 나는 매일매일 무언가를 버린다. 버려야겠다고 다짐을 하면 미련 없이 버린다. 생활을 정돈하면 과거를 버리게 되고, 과거를 버리면 홀가분해진다. 돌아보면 마음이 막막할 때 뭐든 버리는 듯하다. 앞으로 걸어가고 싶지만, 발목 잡혀 있는 기분이 들 때 말이다. 그럴 때마다 뒤돌아보지 않고, 나를 강하게 잡고 있는 보이지 않는 끈을 끊기 위해 물건을 버린다. 내 삶에 매정한 생활자가 되는 것. 영원한 목표다. 앞으로 열 번의 겨울을 함께 할 코트를 다시 사야겠지만, 또 십 년이 지난 어느 겨울밤에 버릴 때가 되었다는 걸 알겠지. 그 밤에는 배가 아프지 않길 소심하게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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