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에 캠핑용품과 나의 짐들을 싣고 멜버른부터 시드니까지 떠나는 여행. 해안가를 따라가면 1,000km 정도 되는 거리이다. 우선 자전거를 사야 했다. 멜버른에 있는 'bikes on brunswick'라는 자전거 가게에 가서 "나 여기서부터 시드니까지 자전거 타고 갈 거야 자전거 보여줘"라고 말하니까, 정말 나에게 안성맞춤인 자전거를 보여 주셨다. 페달을 밟으면 자동으로 앞, 뒤 라이트에 불을 들어오게 하는 허브(바퀴 중심축) 달린 바퀴를 가졌고, 짐가방을 매달 수 있는 랙이 달려 있었다. 짐가방은 추가로 돈을 내야 됐지만.. 오르트립 브랜드가 너무 맘에 들어서 그 자리에서 바로 사버렸다. 자전거는 준비되었다. 텐트, 에어매트, 침낭, 버너 등의 캠핑용품은 ‘카트만두’라는 호주 아웃도어 매장에서 전부 구입했다. 이제 떠나기만 하면 된다.
자전거 여행을 떠나기 전 처음 호주에 와서 일했던 곳인 '가미'라는 치킨집에 인사하러 갔다. 술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눴는데 사장님이 하신 말씀이 "너처럼 처음 호주 워홀을 왔을 때 목표를 가지고 오는 사람들은 많은데 실행에 옮기거나 목표를 성취하고 가는 사람은 정말 적어."라는 말을 해주셨다. 다른 형은 "네가 지금 하고 있는 행동이 형에게는 힘이 되고 용기가 돼. 멋진 놈!"이라고도 해주셨다. 이런 말들을 들으니까 내가 하는 행동으로 인해 누군가에 용기를 줄 수 있다는 게 뿌듯하고 나 또한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2014년 1월 5일 짐을 싣고 페달을 밟으니까 아무 생각 없이 출발이 되었다. 생각이 많았다면 출발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이 순간이 내 인생의 새로운 갈림길로 들어서는 첫걸음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구글 지도로 현재 나의 위치를 보면서 달렸다. 길을 잃지 않으려면 나의 위치부터 확인해야 한다. 나의 존재가 어디에 있는지 안다면 길을 잃지 않는다. 인생이든, 길 위에서든 말이다. 달리면서 제일 걱정이 된 건 잠자리였다.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하자 인근 캠핑장을 돌아다녔다. 크리스마스 연휴기간이라 남은 자리가 한 곳도 없었다. 호주는 크리스마스 때 2주간 휴가를 가진다고 한다. 처음 알게 된 사실이었다. 덕분에 나는 인근 대학교 쓰레기 소각장에서 몰래 텐트를 쳐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곤함에 지친 나는 너무나 달콤한 잠을 잤다. 이후 노숙하는 게 두렵지 않았다. 해안가나 산 쪽의 으슥해 보이는 곳에서도 야영을 했다. 호주는 워낙 넓은 땅에 사람은 적은 곳이어서 위험하지 않다는 걸 느꼈기 때문이다.
내가 호주 자전거 여행을 떠난 이유는 단순하다. 나 자신을 바람처럼 세상에 던져보고 싶어서였다. 무언가에 얽매이지 않고 자전거와 먹을 것만 있으면 세상 어디든 다 둘러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역시 나의 생각은 딱 들어맞았다. 자전거 타고 가다가 힘들거나 좋은 풍경이 보이면 돗자리 펴고 한 숨자고, 세상 전부가 숙소라는 생각으로 텐트를 치면서 잠을 잘 수 있었다. 나 자신을 바람처럼 생각하며 자전거 여행을 할 때 제일 많이 나를 이끌어준 것은 여행 중 만난 인연들이었다.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던 중이었다. "여행 중이야? 어디로 가? 오 대단한데!"라며 커피 마시고 힘내라며 커피값을 계산해 주신 분. 캠핑장이 어디냐고 물어봤는데 내가 잘 못 알아듣자 자동차로 에스코트하며 캠핑장까지 안내해 주신 분. 페리에서 우연히 만나 자기 집에 초대해서 재워주고 밥 먹여주셨던 분. 캠핑장에서 만나서 함께 밤새 맥주를 마시고 놀았던 분들. 초밥집에서 우연히 만나 자기네 가족들의 캠핑장에 초대해서 캠핑도 함께 하고 바비큐파티도 함께 했던 가족. 산에 불이 나서 다음 마을로 갈 수 없으니 자기 집 앞마당에 텐트 치고 지내다가 출발하라고 해주신 분. warm showers(세계 자전거 여행 커뮤니티)의 호스트에게 메일을 보냈을 때 흔쾌히 따듯한 샤워와 잠자리, 식사도 제공해 주고 동네 구경도 시켜줬던 분들. 내 자전거 여행 이야기를 호주 자전거 매거진에 올리고 싶다며 인터뷰 요청을 해주신 분.
이런 인연의 바람들이 나의 여행을 이끌어 준 것 같다. 2014년 2월 12일 나는 무사히 시드니에 도착했다.
나는 자전거 여행을 하면서 세상이 따뜻하다는 것을 느꼈다. 내 몰골과 행색에 연민이 묻어서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정말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며 자전거 여행을 끝마칠 수 있었다. "내가 너를 도왔듯이 너도 다른 사람을 돕고 그 사람이 다른 사람을 돕다보면 세상이 조금 더 따뜻해지지 않겠니?" 나를 도와준 어느 분이 말했다. 마음이 타오르는 말이었다. 이 온기를 나도 다른 사람에게 전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