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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선 Sep 20. 2023

프랑스에서 여자친구와 우프를 한다는 것

제발 수정이가 날 그만 힘들게 했으면 좋겠다.     


프랑스에 도착한 첫 날 핸드폰을 잃어버렸지만 여자친구 수정이의 폰을 이용해서 한국인 유학생에게 중고폰을 구입하여 문명의 세계에 다시 입성했다. 새로 산 핸드폰으로 우프 장소에 가기 위한 기차와 버스를 알아보고 예약했다. 우프(‘World Wide Opportunities on Organic Farms’ 전 세계에 있는 유기농가에서 일을 도와주는 대신 숙식을 해결할 수 있는 네트워크)의 호스트와 소통도 이어나갈 수 있었다. 그렇게 우프 장소인 프랑스 느베르로 향했다.     


느베르에 도착했다. 우프 호스트인 ‘프랑수와’를 만나 농장까지 차로 왔다. 우프 장소는 에코빌리지를 만들기 위해 땅을 구입하고 자연농법으로 농사를 짓는 곳이다. 채식을 하며 화학제품 사용을 자제하는 생활을 한다. 자연농법으로 농사를 지은 농산물은 판매하지 않고 자급자족을 하는데 사용한다.      


수정이는 벌레를 싫어한다. 벌레를 싫어하는 수정이와 벌레가 그득한 프랑스 시골마을에 왔다. 자연농법으로 농사를 짓고 있기 때문에 밭에는 더욱 벌레가 많다. 그곳에서 풀을 뽑고 채소들을 가꿔야 한다. 수정이에게는 최악의 장소다. 선크림을 안 바르면 절대 밖으로 나가지 않는 수정이에게 화학제품을 사용하면 안 된다는 청천벽력 같은 규칙을 듣게 되었다. 수정이의 표정은 우프에 온 첫날부터 계속 좋지 않다. 호스트와 수정이 사이에서 중재하느라고 힘이 든다. 한편으론 썩은 표정을 짓고 있는 수정이를 달래야 하고 호스트에게는 미소를 지으며 일하고 이야기해야 한다.      


수정이는 나만 바라보고 우프라는 생소한 것을 경험하러 왔다. 호스트와 대화도 되지 않는다. 나만 의지하고 따라온 것이다. 성질을 내며 프랑스 오지에서 1시간이나 가출을 했다. 나는 찾으러 가지도 않았다. 호스트들이 더 걱정을 했다. 나는 화가 날대로 나서 맘대로 해라 였다. 수정이는 가출하고 돌아와서 호스트와 번역기를 돌려가며 이야기한다. 그리고는 나랑도 이야기했다. "오빠, 나의 감정을 표출하고 드러낼 곳이 오빠밖에 없는데, 오빠마저 나한테 뭐라고 하고 안 받아주면 어떡해"라며 서럽게 울면서 이야기하는데 마음이 뭉클했다. 나는 그렇게 힘들면 우프를 그만하고 여행만 다니자고 했는데, 기간은 마저 다 채우겠다고 이야기한다. 다 싫지만 나 때문에 우프 생활에 맞추려고 노력한다고 한다. 텃밭이라고는 가꿔본 적 없고 벌레를 싫어하고 선크림 없이는 햇빛으로 나가지 않는 수정이에게는 너무 힘든 기간이었을 것이다. 매 점심때마다 마당에서 음식을 차려 식사를 해야 했다. 각종 벌레들을 견뎌가며 잡초를 뽑아야 했다. 욕실에 비치되어 있는 천연비누로만 샤워를 해야 했다. 영어가 되지 않아 의사소통도 어려웠다. '나' 한 사람만 믿고 의지하며 견디고 있었다. 하지만 일을 할 때 나는 힘을 써야하는 돌을 나르는 일, 가구를 만드는 일 등으로 배치되었기 때문에 홀로 밭에서 고군분투를 해야 했을 것이다.      


내가 우프에서 배우고자 하는 것은 자연과 최대한 벗하며 살 수 있는 삶을 찾는 것이었다. 대나무를 이용해서 밭을 가꾸는 법을 배웠다. 계곡을 정비하여 밭에 물길을 내주는 법을 배웠다. 거름통을 만드는 법을 배웠다. 매 끼니마다 채식요리를 배웠다. 몸으로는 나름 우프를 잘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나의 마음은 항상 불안정했다. 수정이와의 관계 때문에 말이다. 자기의 취향과 맞지 않지만 사랑하는 마음 하나로 이해하며 따라와 준 여행.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여행을 다니고 있는 것 같았다. 짜증이 나다가도 결국은 미안한 마음으로 바뀌었다. 평온함이 가득 깔려있는 저녁, 우리는 산책을 했다. 너무나 평온했다.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끝없이 펼쳐진 초원과 밤하늘의 별, 도로에 나와 있는 소, 반딧불이, 평온한 공기 모든 게 너무나 좋았다. 손을 잡고 아무 말도 없이 걸었다. 눈물이 핑 돌았다.     


수정이의 마음을 헤아려 주지 않고 짜증과 화만 냈던 나. 이기적이었다. 그저 다독여주고 공감해주면 됐을 일인데. 호스트 앞에서는 그렇게 잘하는 것을 왜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못 했던 건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한 사람을 온전히 이해하고 사랑하기는 불가능하다. 그나마 나는 이번 여행을 통해 수정이의 마음을 이해하고 순수하게 사랑하는 법을 배워나가고 있는 것 같다. 매번 좋을 곳과 좋은 음식과 좋은 데이트만 반복되었다면 서로의 민낯을 볼 기회가 있을 수 있었을까. 날 것 그대로의 우프 생활에서 우리의 사랑이 더욱 성숙해지는 과정이 되었다. 자연을 사랑하기 전에 내 옆 사람을 사랑하는 법을 먼저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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