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동반자 Dec 19. 2023

오늘도 법원민원실로 향한다.

에르메스 버킨 따윈 안 어울려



서유뭉치 한가득 담길 만한 천 가방이 필요하다.


나는 변호사 사무실 법률보조 사무원이니까.


좋은 가죽이나 비싼 가방은  이젠 무겁기만 하다.


비가 오거나 덥거나 춥거나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변호사님이 시키면 나는 어김없이 법원으로 출근했다.



학교 다닐 때

좀 더 공부를 할걸

전문가가 아니니

아이만 키우다 현장에 투입되니

아무것도 모르는 것 투성이에

실수 연발이다.!


묻고 또 물어도 이해가 안 되는 법률 용어들

피의자 피고인??

이 얼마나 어려운 단어인가?


십오 년 동안

워드가 뭐야? 컴퓨터에 앉은 적도 없이

아침이면 남편 출근시키고 아이 학교 데려다주고

동네 엄마들이랑 브런치 다니기 바쁜 일상만을 살았다.


남편이 이렇게 고생하면서 월급을 받아 오는지 조차 모르고

세상 맛집은 혼자 제일 잘 알고

신상맛집은 제일 먼저 달려가서 먹었다.



이제 정말 다른 삶이다.

아침에 일어나 남편과 아이 밥상을 차린다.

그리고 나도 눈썹을 휘날리며 준비하고

함께 출근길에 동행한다.

동행하기보단

남편차에 태워져 사무실로 향한다.



부지런한 남편은

사무실 직원들보다 1시간 먼저 출근한다.


출근하자마자

이거 해달라 저거 해달라

정신이  없이 일하다 보면


어김없이 법원이나 검찰청 갈 시간이다.


나는 이 시간

이 찰나의 순간의 자유가 너무 좋다.


잠시의 행복이다.


법원직원들은

도통

못 알아듣는 이 여직원이 안쓰러워 보여

 차근차근 알려줄 테고

다시 설명해 줄 테고

일은 그렇게 마무리하고 들어가서 보고만 하면 된다.


그런 후에 잠시의 유 시간이 있다.


법원 바로 앞 커피숍

나의 방앗간



이 시간이 있다는 것만으로 삶이 감사함을 느낀다.


따뜻한 커피 한잔이면


충분히

변호사님의 잔소리를 견딜 수 있다.


변호사님

저는 당신의 아내입니다.

너무 딱딱하게 굴지 맙시다.!


언제 그만둘지 모르니까 ㅎㅎ



오늘도 법률사무원은 복사며 스캔이며 열일 중이다.


오후에는 재판에 동행하는


비서로 변신한다.

때로 변호사님이 잠이 오면

운전기사로도 변신한다.


퇴근 시간이면 집으로 돌아가

또 가정주부이다.


하루에 이렇게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에 놀라울 뿐이다.







작가의 이전글 에르메스 가방 든 법률사무원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