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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진철 Jan 01. 2020

TV를 봤네


나는 밥 먹을 때만 TV를 본다. 채널 선택이란 게 은근히 중요해서 식사의 질에 꽤 영향을 미친다. 뉴스는 편치 않고, 드라마는 맥락을 잡기 어렵다. 나에게는 확실한 선택 기준이 있다. 나는 그 남자가 나오면 고민 없이 채널을 고정시킨다. 보고 있노라면 왠지 밥이 더 맛있어지는 그 남자. 바로 백선생님이다. 


백쌤이 나오는 프로그램은 많지만, 내가 요즘 가장 많이 보는 건 <골목식당>이다. 죽어가는 골목상권의 식당을 찾아가 문제를 확인하고 솔루션을 제공하는 예능이다. 푸드파이터, 집밥 쌤이 아닌 아닌 요식업계 전문가로서의 쌤의 지혜를 엿보는 즐거움이 크다. 호랭이 선생님의 채찍질을 엿보는 느낌이랄까. 깐족거리는 김성주와 허슬러 정인선이 적절하게 등장해 당근을 던져주는 밸런스도 좋다.  


<골목식당>을 보고 있노라면 얼마나 많은 식당들이 엉터리로 운영되고 있는지 생각하게 된다. 주방을 깨끗하게 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 메뉴 하나 줄이는 게 그렇게 힘든 일일까. 일할 때 핸드폰은 잠깐 좀 넣어놓으면 안 되나.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 투성이다. 많은 사장님들이 지적에 날을 세우거나, 자기변명에 급급하다. 보고 있노라면 그저 답답하다. 백쌤은 화가 난다. 우리 가족도 귤을 까며 같이 혀를 찬다. 성난 백쌤이 일침을 마구마구 쏟아낸다. 우리 가족은 그렇지 그렇지 하며 귤을 입에 털어 넣는다.  




한 인터뷰에서 <골목식당> 제작진은 골목식당 출연자 섭외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밝힌 바 있다. 우리 가게가 방송도 타고 나와서 그 백종원이가 솔루션을 준다는데, 이를 마다할 식당이 있냐 싶겠지만 실상은 반대다. 식당의 민낯을 방송으로 내보내기 때문에 이를 많이 부담스러워한다고 한다. 사람들의 악플도 큰 요인 중 하나다.  


<골목식당>을 쭉 보다 보면 안 되는 식당들의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그들은 한결같이 무기력에 절어 있다. 날이 서고 핑계가 앞선다. 백쌤의 뼈를 때리는 호통에 그들은 그저 묵묵부답이다.  


내게 있어 <골목식당>의 매력 포인트는 자신을 바꾸고 싶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나의 치부가 온 세상에 드러나는 것을 각오해서라도 변하고 싶은 이들이 <골목식당에>에 출연한다.  


무기력해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 수 있다. 뭐가 문제인지도 알겠고, 뭘 해야 할지도 알겠는데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시야는 좁아지고, 세계가 쪼그라든다. 스크린에 대고 잔뜩 욕을 하면서도 계속 지켜보게 되는 것은 그들에게서 나의 모습을 보기 때문이다. 


나는 주방 청소를 안 한 이유에 변명을 늘어놓아 본 적이 있다. 장사가 안 되는 건 손님 탓이라고 말한 적도 있다. 맛이 없다고 하면 화를 낸 적도 분명히 있다. 바뀌겠다고 말하고 나서는 며칠 만에 다시 돌아와 버린 적도 있다. 답답한 마음의 방향은 나를 향해 있다. 그래서 마음속으로는 그들을 깊게 응원하게 된다. 그러다 간혹 끝끝내 자신을 바꿔내는 모습을 보면 박수를 보내게 된다. 


자신을 바꿔보려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나는 항상 매료된다. 누군가가 변화하는 것을 지켜봐주는 것이 사랑이라면, <골목식당>은 분명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나는 사랑 이야기에 약하다. 채널을 돌릴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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