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진철 Apr 14. 2019

어느 부풀어 오른 계절

2010. 4. 7. The Swell Season 내한공연


1.

<원스>는 스무 살의 겨울에 본 영화다. 길을 걷다 보면 어디서나 'Falling Slowly'를 들을 수 있을 만큼 대단했던 기억이 난다. 영화에는 좋은 장면들이 많지만, 그중 하나만을 고르라면 고민할 것도 없이 나는 마지막 장면을 뽑곤 했다.


떠나기 전 남자는 여자를 보러 그녀의 집에 가지만 그녀는 그곳에 없다. 남자는 그녀에게 피아노를 선물하고 공항으로 떠난다. 집에 돌아온 여자는 그가 남기고 간 피아노를 치다가 창밖을 바라본다. 영화는 그렇게 끝난다. 아마도 그 둘은 다시는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그게 얼마나 안타까웠는지, 나는 그런 식의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2.

"어떤 사람들의 삶은 남아있는 수명과 관계없이 완수(completed)된다. 그들이 이곳에서 하고자 하는 바를 이미 마쳤으므로"


시간이 지나 어느 강의에서 들었던 말인데, 관계도 비슷한 거 아닌가 생각한다. 수년째 만나도 매번 이름이 헷갈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평생 단 삼 일을 만났는데도 모든 걸 영영 바꿔버리는 사람도 있으니까. 함께 보낸 시간의 양이란 생각만큼 의미 있는 게 아닐지도 모르겠다. 평생 다시 만나지 못한다고 해도 변함없이 제자리에서 반짝이겠지만, 우연히 다시 만난다고 해도 별다른 의미가 더해지지는 못할 거다. 인연은 이미 오래전에 완수되었으므로.


문득 그런 마음으로 영화 <원스>를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어느 부풀어 오른 계절에 만난 그들이 다시는 만나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들의 인연은 이미 완수된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은 편해지는 것 같았다.



3.


'The Swell Season'은 영화 <원스>의 성공 이후 마르케타 이글로바와 글렌 한사드가 함께 결성한 밴드다. 전년도에 <Strict Joy>를 발매하고 투어의 일환으로 2010년 4월 7일 올림픽홀에서 내한공연을 가졌다. 영화에서 보았던 구멍 뚫린 기타를 든 글렌 한사드, 푸른색 드레스를 입은 마르케타 이글로바를 눈 앞에서 보니 마음 역시 부풀어올랐다.


첫 곡 'Gold'로 시작해서 'Low Rising', 'Feelinig the Pull' 으로 노래가 이어졌다. 모두가 숨죽여 'Say it to me now'를 들었고, 'Falling Slowly'때는 발을 다섯 번 굴렀다. 마침 이 날 공연은 투어의 마지막 날이었다. 그래서인지 밴드 멤버들 모두 편해 보였다.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마지막 곡 'Star, star' 였다. 글렌은 청중들에게 휘파람을 불어달라고 하고는 연주를 시작했다. 그리고는 놀랍게도 객석으로 밴드가 행진하기 시작했다. 맨 앞줄부터 맨 끝까지. 당연히 관객석은 난리가 났다. "Star, star teach me how to shine." 마이크가 꺼지고 나서도 행진은 멈추지 않았다. 얼마인지 모를 만큼 오랜 박수와 악수를 마치고 나서야 공연이 끝났다. 'Gold'로 시작해 'Star, Star'로 끝났던 그야말로 반짝이는 공연이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