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 소설, 빗소리 몽환도

짧지만 강렬했던 그 비내리던 밤 속으로

by 썰킴

“혼자 서 꾼 꿈은 환상으로 남아있을 뿐. 언젠가 누군가와 함께하기를 기다리면서... 적어도 누군가 똑똑 문을 두들기며 자신의 삶에 개입하기를 소망하면서...”

작가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걸까? 불우한 배경을 가진 공상 가득한 책벌레를 주인공으로 삼고 그에게 비 내리는 밤부터 비 개인 아침까지 일어난 일을 실타래 풀 듯 써내 린다. 현실과 책 속의 세상을 혼동하는 돈키호테 같은 공상호는 이른바 사회 부적응자이다.


그는 자신의 테두리에 책으로 견고히 성벽을 쌓는다. 그리고 스스로 고립된다. 그가 세상을 보는 기준은 책이라는 렌즈다. 책 가득한 그의 옥탑방은 세상으로부터 자기를 지키기 위한 요새이자, 감옥이다. 그렇게 혼자만의 생활을 영위하고 있던 그에게 비 내리는 밤 침입자가 나타난다. 그 침입자는 그의 삶을 헤집는다. 그의 터전인 옥탑방을 내놓아야 했었고, 침입자(여자)는 책에서 본 여주인공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그리고 그의 특별한 능력(예지몽)을 통해 여자가 안고 있는 삶의 단면을 본다. 그녀로 인해 또 다른 이방인인 남자가 다음날 아침에 오게 되고 공상호는 드잡이에 말리지만 극적으로 해결되고 그 둘은 떠난다.

소설을 읽어가며 도중에 멈춰가며 생각하진 않았다. 다 읽은 후 이야기를 떠올렸다. 역시나 소설은 모호한 잔상들 속에서 의미를 찾아가는 여행이란 다시금 들었다.

소설을 재독 하니, 작가가 깔아놓은, 아니 나만 그렇게 느낄 수 있는 중요한 텍스트들이 눈에 띄었다. 특히 마지막 부분.

“누군가 똑똑 문을 두들기며 자신의 삶에 개입하기를 소망하면서.”
.
이 소설의 끝자락에 나오는 문장이 갖는 함의를 생각해봤다. 개인주의화된 현대 사회에서는 우리 주변의 이웃, 타인에 대한 관계가 약해져 간다. 아파트나, 원룸 같은 주거 공간에서는 옆집에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사 한번 안 할 적이 많고, 심지어는 얼굴조차도 모를 때가 있다. 이렇게 고립화된 현대인의 삶에, ‘다른 사람들과 서로 부대끼며 살아가는 것이 고통이지만 행복이다’란 것을 이야기를 빌어 말하는 게 아닐까?

그리고 소설의 마지막 글에 ‘혼자 꾸는 꿈은 환상으로 남아있을 뿐’이란 이야기를 한다. 이 문장의 역은 ‘함께 꾸는 꿈은 현실로 실현된다’이다. 삶이 개인화되고, 공동체의 연대 의식이 엷어지고 있다. 과거 전쟁 직후에는 ‘잘 살아보자’란 일념으로 전 국민이 합심하여 발전에 사활을 걸었었다. 말 그대로 비전이 있던 시절이었다. 경제가 발전하고, 국가의 위상이 올라가고, 살만해졌다. 바랬던 고지에 도달하니, 더 도달할 고지가 없어졌다. 함께 쳐다볼 이정표가 없어졌다. 이때부터 우리는 산개했던 것 같다. 이는 집단이 갖는 꿈의 부재다. 개개인의 꿈은 선명해졌을지 몰라도, 우리가 사는 집단의 꿈은 엷어졌다.

마지막으로 이 소설은 나에게 성장 소설로도 읽힌다. 비에 젖은 소설책을 덮으며, 새로운 소설책을 피는 것은 주인공이 기존의 고립되고 개인주의적인 삶에서 보다 유연하고 타인과 소통하는 삶을 지향하는 것처럼 보인다. 비에 젖은 소설이 그를 가두고 고립시키는 매개체였다면, 새로 피는 소설은 세상으로 새로운 길을 내어주는 매개체이다. 정주하는 삶에서 탈피하여 삶을 앞으로 진전시키기 위한 일련의 동작이다. 정착민에서 유목민으로의 전환이랄까? 이렇게 소설을 읽으며 느낀 바를 이야기하면 확대 해석 같다. 하지만 오독은 독자의 권리니깐 두서없이 써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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