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에 나는 꽃피울 수 있을까
무한 화서와 유한 화서, 그리고 우리네 인생
친한 지인들과 연휴를 맞아 금강 수목원으로 콧바람을 쐬러 갔다. 나는 식물과는 친하지 않은지라 별 생각이 없었다. 막상 초록 빛깔의 식물들을 만나니, 내 마음이 젊어지고 싱싱해지는 기분이었다. 온실 안에 열대 지방 식물들을 보니 우거진 생명력이 느껴졌고, 사막지역 식물들을 볼 땐 일종의 절제미가 떠올랐다. 기후에 따라 식물들이 진화된 형상들을 보고 있자니 새삼 놀라웠다.
사막 식물들을 둘러보다가, 간간히 꽃이 핀 식물들이 있었다. 사막 식물에서 핀 꽃은 처음 보는지라 무척 신기했다. 그래서 자세히 보았다. 마치 나태주 시인이 풀꽃에서 읊은 것처럼, 사랑스러워질 때까지 자세히 보았다. 계속 바라보고 있으니, 가슴 안에 말갛게 고이는 게 있었다. 묘한 감동이었다. 이 꽃을 개화시키기까지 몇 날 며칠을 기다렸을까? 필시 저 꽃에는 수십, 아니 수 백개의 해와 달(밤과 낮)이 들어있을 테고, 관리 직원의 정성 어린 손길도 들어 있을 거다. 절대 혼자 피었을 리 없다. 이런 생각들을 하고 있으니, 활짝 핀 꽃이 대견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보는 내가 이렇게 느끼는 게 있을진대, 이 식물들을 관리하는 분에겐 분명 더 큰 감동이 있었을 거다.
꽃이 핀 모습을 보니 이성복 시인의 시론서인 ‘무한 화서’가 떠올랐다. 화서란 식물에 꽃이 피는 방식을 말한다. 무한 화서는 아래에서 위로 꽃이 피는 방식이며, 이와 반대되는 유한 화서는 위에 꽃(정단 위치)이 먼저 개화하고, 그 아래로 꽃들이 개화하는 방식이다. 이성복 시인은 꽃이 개화하는 방식이, 시를 전개하는 방식과 유사하다 하여 시론집에 ‘무한 화서’란 이름을 붙였다. 꽃이 밑에서 위로, 밖에서 속으로 피는 구심성이, 구체에서 추상으로, 비천한 데서 거룩한 데로 나아가는 시의 흐름과 꼭 같아 붙인 이름인 것 같다.
꽃이 피는 방식을 보며, 이성복 시인은 시어, 시상이 개화해나가는 모습을 연상했다지만 나는 이를 보며 우리 삶이 개화하는 방식에 대한 생각을 했다.
무한 화서는 Bottom-up이다. 아래서부터 꽃이 피어 올라오므로 생장점이 계속 성장하는 동안에는 계속해서 꽃이 핀다. 생장이 멈추기 전까지 몇 개의 꽃이 필지는 누구도 모른다. 이는 한 사람이 밑바닥서부터 하나하나 인생을 다져가며 올라오는 느낌이다. 꽃이 피는 화축에는 작은 꽃 들이 무수히 달려있다. 이는 그 사람이 성장하며 이룬 작은 성취들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성장의 끝이 정해져 있지 않기에 몇 개의 꽃이 필지 모른다. 기대되는 인생이다. 한 마디로 무한 화서는 성장하는 사람의 삶이다. 정리하면, 무한 화서의 특징은 확장성, 불확실성, 성장이다.
반대로, 유한 화서는 어떨까? 유한 화서는 개화할 수 있는 꽃의 수가 정해져 있다. 중심에서 밖으로 펼쳐나가는 원심성이 유한 화서의 특징이다. 제일 위에 위치한 정단에서 먼저 꽃이 개화하면, 그 아래에 있는 꽃들이 차례로 개화해나간다(Top-down). 글로 치면, 두괄식 논설문 같다. 말하고자 하는 바를 먼저 지른 후, 그에 부합하는 자료들과 논거들을 제시하는 그런 느낌이다. 인생으로 치면, 안정된 삶이랄까? 제일 중심이 되는 꽃을 먼저 개화한 후, 그 아래로 작은 소화(작은 꽃)들을 차례로 개화시킨다. 이는 직장 또는 가족을 중심축으로 잡고, 그 가운데 소소한 성취들을 이루려는 노력으로 보인다. 이미 가장 상위의 꽃은 피었기에 더 성장할 여지는 없다. 하지만, 그 삶에서도 크지는 않지만 여러 개의 작은 꽃들을 개화시킨다. 유한 화서에서 보이는 특징은 수렴성, 확실성, 안정이다.
사람이 마음먹기에 따라 인생을 개화시키는 방법은 무한화 서일수도, 유한 화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한 화서의 삶은 불확실하지만 그만큼 성장이 기대되는 삶이며, 유한 화서의 삶은 확정적이며 안정감을 준다. 무엇을 택하든 간, 사람마다 성향과 기질이 다르므로 옳고 그름을 따따부따 할 순 없다.
난 개인적으로 무한 화서의 삶을 택하고 싶다. 불확실하지만, 그만큼 기대되는 나날들을 보내고 싶다. 그 과정에서 이리저리 치이겠지만, 한 번의 역경마다 하나의 작은 꽃을 피워낼 수 있다면 삶이 재밌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