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위에서 미끄러지지 말자
보지 말고 읽어라!
‘선체력 후 기술’
요즘 독서법 책을 독파하고 있다. 예전부터 관심을 두고 꾸준히 읽어왔지만, 단기간에 수십 권을 독파하니 잘 쓴 부분과 부실한 부분 그리고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방법론들이 눈에 들어온다. 앞에 언급한 ‘선체력 후 기술’은 유도 책에서 읽었던 내용이다. 어떤 운동이든지 빛을 보기 위해서는, 기술보다는 먼저 체력을 다진 후 기술을 배워야 한다는 이야기다. 사상누각이라는 사자성어가 있는 것처럼 기초가 단단해야 그 뒤에 응용도 이어질 수 있는 법이다. 독서법도 마찬가지다.
독서법 책도 계속 보다 보니, 전율이 들 정도로 잘 쓰인 고수들의 책이 있는가 하면 정말 기술밖에 나와 있지 않은 책들도 있다. 기술이라 하면 속독, 통독, 발췌독을 이야기할 수 있다. 사진 찍듯이 읽기, 사선 읽기, 속 발음 안 하고 읽기 등의 다양한 연습 방법이 있지만, 그것들의 효용에 대해 난 비관적이다. 기초가 없는 상태에 기술적 독서는 독이다. 그렇다면, 독서의 기초란 무엇일까?
독서의 기초는 문해력이다. 책을 깊이 읽어야 이야기의 플롯, 지식의 구조, 행간 읽기가 내재화되고 그리고 인지하는 단어의 수가 늘어난다. 즉, 글이 나에게 체화하는 것이다. 그런 경험이 축적되면, 문심혜두(文心慧竇)가 트인다. 글의 뜻을 깨달아 아는 힘, 문리를 깨닫는 것이다. 깊이 읽기의 독서법으로는, 정독, 숙독, 낭독, 초서가 있다. 속독에 비하면 느리디 느린, 활자 하나하나 쪼개 보는 거북이 읽기다. 성질 급한 사람은 답답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도 수양의 일종이다. 느리게 보면서 생각을 찐하게 하면서 보시라. 이렇게 읽으면 사골 곰국 끓이듯 우러나오는 게 많다. 내가 본 모든 고수 치고 초년 시절에 느리게 보기, 깊이 읽기를 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글 위에서 미끄러지듯 읽는 속독으로는 도저히 활자 밑에 감춰진 층위의 의미를 읽어낼 수 없다. 혹시 누군가 소설을 속독하고, 시를 속독, 철학을 속독한다고 하자. 이것은 글을 구경한 거지, 읽은 것이 아니다. 보는 것(Watching)과 읽는 것(Reading)은 엄연히 다르다.
그동안 독서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이래, 많은 독서 모임을 전전했다. 젊은 친구들이 많은 독서 모임을 가면 과시적 독서가들이 꼭 몇 명씩 있다(나도 그중 한 명인 건 함정ㅋ). 그들은 자기가 읽은 책들의 권수를 내세우며 다른 참여자들의 기를 누른다. 어려운 책도 봤다 하여 그 내용을 물어보면, 겉만 훑는 수준이거나 기억을 못 한다. 이건 글을 읽은 게 아니라 구경한 거다. 아까운 시간을 들여, 아무것도 얻어내지 못하는 독서를 한 거다. 나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많은 시행착오와, 다년간의 교정 끝에 나에게 맞는 독서법을 찾고, 여전히 개량 중이다. 독서에도 기술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흘려들은 지난날 내가 좀 밉스럽다. 어렸을 적부터 이런 방법론을 알고 기초부터 잡았더라면 현재보다 더 큰 진보가 있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