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량의 지식과 사고는 빠르게 섭취할 수 없다
천천히 읽어야 제대로 읽는다
대학원 시절을 생각하면 실험하는 날이 참 많았다. 나는 무기 합성을 주로 했었고, 전지 소재 합성을 연구하였다. 시험에 사용할 용액을 만들기 위해, 용질을 용매에 일정량 첨가 후 핫플레이트에서 교반 시키곤 했었다. 용질의 분자량이 클수록 완전히 용해되어 용매 안에서 균일하게 혼합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반대로, 용질의 분자량이 작거나 용매와 친화성이 뛰어나면 용해는 더욱 빨랐다.
용매와 용질의 본연적 특성 외, 용해를 가속화하는 요인이라면, 교반 속도와 온도에 있었다. 교반 속도가 빠를수록 온도가 높을수록 용해 반응은 가속화되었다..
요즘 독서가 이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분자량이 큰 물질처럼 대량의 사고를 담고 있는 책은 우리에게 쉽게 용해되지 않는다. 긴 시간과,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야만 우리에게 들어온다. 첫 지면부터 생소한 용어, 어려운 용어로 가득한 책들은 거부감을 불러일으킨다. 첫 시작은 야심 차게 시작해도, 얼마 못가 곧 다시 덮게 된다. 그리고 그 책은 냄비 받침으로 전락한다.
반대로 우리가 관심 있던 주제, 친숙한 용어, 자신과 동일한 생각들의 나열이 들어있는 책들은 어떨까? 그야말로 술술 읽힌다. 끓는 물에 소금 넣기다. 이런 책이 사고를 넓히는데 효용이 있을까? 내 생각에는 절대 없다. 그런 책은 자기 생각의 확인일뿐이다.
물론 매번 새롭고 어려운 책을 볼 필요는 없다. 하지만, 생에 몇 번은 지적 도전을 감행해야 한다. 고루하게 틀에 박힌 내 세계를 깨부수기 위해서는. 나의 굳은 머리를 내리치는 도끼 같은 책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런 책은 대다수가 어렵다.
그럼 그런 어려운 책을 나에게 용해시키기 위해선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위에서 말했듯 용해를 가속하기 위해선, 온도와 교반 속도가 빨라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독서에 적용시켜보자. 온도는 자신을 둘러싼 환경이며, 교반은 책을 읽는 물리적 시간이다. 시간이 많아도 독서할 분위기와 여건이 갖추어지지 않으면, 지속력이 생기지 않는다. 반대로 분위기와 여건이 갖추어져도 시간이 없으면 생각의 흐름이 이어지지 않는다.
고로, 독서를 진정으로 하려면 주변 정리와 시간 확보가 필요하다. 물론, 버스에서 지하철에서 또는 집 소파에서 독서를 할 수 있지 않느냐 반문할 수도 있다. 물론 가능하다. 책의 난이도와 호흡에 따라 읽는 장소와, 시간 투자가 달라진다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항상 고뇌에 가득한 이야기나, 대단한 통찰을 담은 책만을 읽을 순 없다. 때론 말랑말랑한 이야기와, 감성 에세이, 흥미 위주의 책을 볼 수도 있다. 그것은 본인의 취향에 따라 완급조절을 하면 된다. 다만,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한번쯤은 자신의 세계를 넓혀줄 좋은 책을 찾아, 조용한 공간에서 오롯이 몰두의 시간을 갖기를 권한다. 책을 보다가 자신과 감응하는 문장을 찾았을 때 얻는 희열은 말할 수 없이 크다. 글로 표현이 불가능할 만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