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 새겨진 추억의 각인
길에서 얻는 성찰, 인생 복기에 대하여
중국 남경 시가지
출근하는 길에 피어있는 꽃들출장지와 가까운 곳에 숙소를 잡아 걸어서 출근 중이다. 거리론 2.8km, 걸으면 대략 30분. 아침 일찍이 도로에 물을 뿌려 놓아서일까. 걷는 길이 산뜻하다. 출장지가 비록 삭막한 공단이라지만 출근길 옆 조그마한 녹지에 핀 꽃들을 보니 내 마음도 덩달아 싱싱해진다. 출장 와서 무거웠던 마음이 녹빛의 쾌활함을 만나니 한결 가볍다. 타국에 와서 생경한 길을 걷다 보니, 3년 전 산책하며 쓴 글이 생각나 다시 읽어보았다. 그때와 지금의 나는 어떻게 다를까. 그리고 앞으로 나는 어떤 길을 걸어가게 될까.
2016년 6월.
어렸을 적에나 지금에나 고향에 내려가면 많은 부분이 그대로 남아있다. 이십 대 때는 "우리 고향은 발전이 없어. 성장 동력도 없고, 외부에서 자본의 유입이 안되니 항상 그대로야."라는 말에 동감하며 내심 고향이 답답하게도 느껴졌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였을까. 고향에 많은 것들이 그대로 있어줘서 고마운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친구들과 오가던 하천길이며, 같이 공 차고 뛰어놀던 골목, 할아버지 손잡고 오가던 산책로 등,, 그 장소에 가면 유년 시절의 기억이 슴벅 되살아난다.
처음 오는 사람에게는 낙후된 동네 같아 보일지는 모르나, 어린 시절 그곳에서 성장한 나에게는 길마다 기억의 각인이 새겨져 있다. 길을 걸으며 그 각인을 찬찬히 들여다봄으로써 과거와 마주하며 회상에 잠긴다. 이때 길이란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실재이면서 지금의 나와 과거의 나를 연결시켜주는 징검다리가 된다.
길을 통해 과거를 복기하고 현재의 나와 연결시킴은, 산개되어 있던 인생 경험의 구슬들을 실로써 꿰듯 하나의 선상에 놓이게 만든다. 이 선 꿰기는 과거를 통해 현재의 나를 되짚어 인생이란 길 위에서 내가 어디에 위치해있는지 가르쳐준다. 그런 의미에서 오래된 길. 추억이 있는 길은 자신의 인생에 '서사성'을 부여해주는 매개체이다.
스토리가 없는 파편적 경험만 존재하는 인생은 공허하다. 그러기에 우리네의 인생에 있어 자신의 인생 쓰기(복기)를 게을리 함은 결국 추억이 빈곤한 사람이 되는 일임과 동시에, 인생이란 선상에서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 모르는 사람을 만든다.
고향에 가면 시간이 날 때마다, 오래된 길을 걸으며 지난날을 떠올림과 동시에 다가올 날들에 대해 생각한다. 한 때는 정신없이, 주어진 시간을 생산적인 시간들로만 가득 채우는 것을 진리인양 여기며 보내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한가로운 시간, 휴식의 시간이 진정 필요함을 느낀다. 가끔은 너무 많은 일을 하며, 너무 많은 것을 신경 쓰며 살아간다는 생각을 한다. 마음 한편으론 도시의 삶보다 자연과 함께하는 목가적인 삶을 동경하지만 떠날 용기가 없어 생각만 떠올리다 그친다.
삶을 단순화시키면 좀 더 행복해질까? 아니면, 삶의 속도를 늦추면 시간을 여유롭게 보낼 수 있을까?.
아직도 삶에 대한 방향이 명확하지 않은 나는 길을 따라 걸으며 여전히 고민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