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기록으로서의 음주의 추억

음주의 연대기. 낭만 있던 그 시절.

by 썰킴


술 먹는 게 일상이지만, 그래도 낭만이 있었던 음주의 순간들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1
스무 살 적 나는 대학교 여행 동아리에서 여름에 제주도로 14박 15일의 여행을 떠났다. 제주도를 히치 하이킹을 하며 둘러보며, 동기들과 친해지고 제주도의 아름다움을 깊이 느낀 시간이었다. 그 여행에서 기억나는 음주의 순간은 제주도에서 집으로 오기 전날이었던 것 같다. 그날 밤, 우리는 모여 남은 돈을 털어 한라산 소주를 구입하여 협재 해수욕장 한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안주 없이 들이키던 한라산 소주는 무척이나 썼지만 별을 안주삼아, 스무 살 적 시답잖은 연애 이야기에 대해 진지하게 토론하며 밤을 지새웠다. 밤하늘 별이 생각나는 그 날밤 술자리는, 대학생활에 가장 큰 추억 중 하나가 되었다.

#2
이십 대 중반이 된 후, 혼자 해외여행을 다니기 시작했다. 한 번 가봤던 방콕이 너무도 좋아, 친구를 데리고 두 번째 갔을 때 우리는 고층 빌딩 꼭대기에 위치한 바인 시로코에 올라 칵테일을 한잔 하였다. 여행 다니느라 몸이 피곤했던지라, 칵테일 한잔에도 취기가 좀 올랐다. 당시의 나는 근자감에 차 있었었다. 취기가 오르고, 야경을 바라보며 나는 호기롭게 친구에게 말했다. 나는 미래에 내 사업을 할 거라고, 그리고 부자가 되고 싶다고. 당시 사회생활을 겪지 않았던지라 꿈만 컸고 능력은 한 없이 보잘것없었던 나를 지금 생각해보면 무척 부끄럽다. 하지만, 젊었을 때는 가슴속에 큰 포부를 가져야 한다는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3
직장 생활을 3년 반을 하였다. 그리고 이직을 하였다. 중간에 시간이 조금 생겨 터키에 여행을 왔다. 유적지, 사람, 먹을거리, 볼거리 넘쳐나는 이스탄불을 거쳐 작은 지중해의 휴양 도시인 페티예에 왔다. 조용하며, 아름다운 도시인 페티예의 해변가에서 나는 소박한 터키 부부가 운영하는 식당의 야외 테이블에 앉아 보드카를 한잔 시켰다. 그리고, 술을 한잔하며 그동안 미뤄왔던 직장 생활을 복기하였다. 지난 3년 6개월간은 나를 사회에 조율하며 스스로의 깜냥을 평가하는 시간이었다. 나의 약점과 강점을 파악하고, 향후 커리어를 어떻게 쌓아 나아갈 것인지 생각을 하였다. 바쁨 속에서는 전혀 할 수 없었던, 지나간 세월에 대해 성찰하는 시간이었다. 그동안 내가 밟아왔던 발자국과, 앞으로 향해 나아갈 발자국의 연결점을 찾고 멀리 갈 수 있도록 마음의 체력을 비축할 수 있도록.

이 외에 기억에 남는 강렬했던 음주의 순간들은 많지만, 일상의 기억들과 섞여 분간이 어렵다. 하지만 여행 중의 비일상적 경험들 위에 의미가 더해진 음주의 기억들이 장기 기억이 된 것 같다. 약 5년 간격으로 이런 낭만 섞인 음주의 순간들이 기억난다. 5년 후의 나는 어떤 생각을 하며 술을 마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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