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방황, 나침반 없는 인생(1)

나는 어떤 인생을 살게 될까?

by 썰킴

나는 지방 국립 공대를 졸업하였다. 한 번의 취업과, 한 번의 이직을 통해 현재는 대기업이라 불리는 곳에 다니고 있다. 나 스스로 내세울 만한 점은? 없다. 유학의 경험도, 특별한 경험도 없다. 이 정도 이력이면 대한민국의 평균일까? 아니면 중위수 정도 될까? 시간이 갈수록 평범함으로 종속되는 느낌이 든다. 특별한 사람이 되려면 특별한 길을 가라던 티브이 속 성공한 아저씨의 말은 세월이 갈수록 점점 희미해가는 메아리이다.


나는 한 때 비범한 인간이 되는 꿈을 꾸었다. 비범함이란 탁월함. 평균을 아득히 상회하는 그런 특별한 것. 비범함은 오로지 극소수의 사람만이 획득하는 형질이란 것을 느끼며 사는 요즘이다. 비범함이란 것은, 남들보다 뛰어난 재능을 지녀 적은 시간에도 큰 성장을 이루는 자의 것이거나, 재능은 평범하지만 누구보다 부지런히 자신을 연마하여 얻는 그런 종류의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전자가 아니므로, 노력하여 후자가 되길 원했었다. 나는 내가 평범하다는 것을 알았기에 평균 이상의 노력을 하고자 노력했고 비범해지길 원했다.

그리하여 군대를 다녀왔을 무렵부터 정신 차리고 노력을 시작했다. 우선 눈앞에 놓여있는 나의 전공부터 잘해야 했다. 나의 전공, 화학을 공부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스스로 문과형 인간이라 규정해왔고 과학의 언어는 늘 어려웠다.


고등학생 시절, 나는 문학과 역사를 좋아하던 학생이었다. 하지만, 이과를 택했다. 이과와 문과를 결정하던 고등학교 1학년이 끝나갈 무렵, 당시 국사 선생님은 반 학생들에게 진지하게 충고하셨다. 앞으로 먹고살기에 이과를 선택하는 게 유리하다고.

아, 나는 이 말에 잠시 내적 갈등을 했지만 좋아하는 것보다는 실리를 선택하였다. 이과로 전향 후, 못하던 물리, 생물, 화학을 하자니 죽을 맛이었다. 과학을 제일 못하던 내가 이과생이 되다니. 억지로 공부를 하면 짜증이 솟았고 머리에도 잘 들어오지 않았다. 내 과학 성적의 석차는 뒤에서 세는 게 빨랐다.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는 야간 자습이 있던 학교이기에 매일 저녁 7시부터 11시까지 늘 학교에서 시간을 보냈다. 나는 다른 친구들처럼 공부에 열중하기보다는 곧 잘 혼자만의 공상에 빠지며 시간을 보냈다. 그래도 싫은 과학 공부를 억지로나마 하다 보니 조금은 흥미가 붙는 과목이 생겼다. 바로 화학이었다.

화학을 공부하며 우리 주변에 사용하는 거의 모든 제품이 화학과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에 흥미로웠다. 당시 화학을 가르치던 화학 선생님은 이력이 화려했다. 박사 학위가 있었고 외국에서 유학 경험도 있었다. 내가 싫어한 점은 그는 엘리트주의자였다. 공부를 잘하던 학생들 위주로 편애를 했는데 그런 점이 꼴 보기 싫었다.


그래도 그 선생의 좋았던 점은 공부의 즐거움을 학생들에게 곧 잘 이야기해줬었다. 본인이 실험실에서 연구에 몰두하며 시간의 흐름도 잊은 채 보내다가 밖에 쌓인 눈을 보았을 때 정적 속에서 느끼는 묘한 행복감. 그리고 공부를 하며 알아가는 즐거움. 당시 나를 비롯한 친구들은 그 선생님이 말하는 즐거움이란 것이 무엇인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나이를 먹고 학위를 하며 그가 말하던 공부와 앎의 즐거움이 무엇인지 요즘은 알 것도 같다.


각설하고, 다시 대학교 전공 선택 시 나는 화학을 선택했지만 여전히 화학을 공부하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고 있었다. ‘좋아하는 것’과 ‘잘해야만 하는 것’에 대한 고민이 늘 있었다. 대중 매체나 어른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해야 한다고 연신 떠들었지만 진정 내가 좋아하는 것을 자각 하기는 어려웠다. 나뿐 아니라 자신이 진정 좋아하는 것을 찾은 10대나 20대가 정말 있었을까? 유럽에 존재하는 청소년 진로 찾기 제도인 ‘갭이어’란게 한국에 있었다면 나도 정말 나의 적성을 일찍 찾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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