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 '코스피 5000' 지수를 떠받치기
코스피 5000을 향한 구호가 커질수록, 그 무게는 점점 더 가계와 연금으로 옮겨가고 있다. <'코스피 5000'...전면에 나서지 않는 '연기금'>글이 외국인 수급과 연기금의 후퇴를 중심으로 현재 국면을 짚었다면, 이번에는 코스피 랠리를 떠받치는 주체가 누구인지, 그리고 이 구조가 한국 가계와 연금·재정에 어떤 위험을 남기는지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한국은행과 통계청이 공동으로 발표한 2024년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2024년 3월 말 기준 가구당 평균 자산은 5억4000만원대, 부채는 9000만원 안팎, 순자산은 4억4000만원대 수준으로 집계된다. 이 가운데 실물자산 비중은 75%를 웃돌고 금융자산은 약 25%에 그친다. 금융자산 중에서도 예금 비중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주식 비중은 10%에 미치지 못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여전히 '집과 예금'이 중심인 포트폴리오처럼 보인다.
지난 1~2년 사이 변화를 보면 풍경은 조금 달라진다. 가계·비영리법인의 순금융자산은 전년 대비 50% 이상 급증했고 해외투자 이익과 환율 효과가 가계 자산 증가의 핵심 요인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주택과 예금이라는 전통적인 축 위에 해외 주식과 환율에 연동된 자산이 빠르게 얹히고 있는 셈이다.
미국 빅테크와 AI 관련 주식, 글로벌 ETF, 달러 예금과 단기 달러 채권이 가계 자산구성 표의 새로운 항목으로 들어온 상황이다.
한국 가계의 총부채는 국내총생산 대비 약 90% 수준이다. 주요국과 비교해도 높은 축에 속한다.
금융당국은 2025년 이후 가계부채 증가율을 명목성장률과 비슷한 3%대 후반으로 관리하겠다는 목표를 내놓고, 스트레스 DSR 규제와 고위험대출 관리 강화를 잇따라 발표했다. 대출 측면에서는 통제가 강해지는 반면, 자산 측면에서는 주식·ETF·해외투자를 통해 수익을 높여야 한다는 압박이 커지는 구조다.
가계 입장에서 보면 선택지는 좁다. 레버리지를 크게 늘리기 어려운 환경에서 코스피와 나스닥, 원·달러 환율에 연동된 자산이 노후자금과 자녀 교육비를 책임질 수단으로 부각되고 있다. 부동산을 더 사기에는 규제와 고금리의 부담이 크고 예금 이자는 물가를 방어하기에 충분하지 않다. 자연스럽게 '지수가 오를수록 숨통이 트이는 구조'가 가계와 자본시장 사이에 형성된다.
지수 하락과 환율 급등이 동시에 일어날 경우 부채 부담과 자산 가격 하락이 동시에 가계 재무제표를 압박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연금과 재정의 측면에서도 비슷한 방향의 압력이 관찰된다. 2025년 통과한 국민연금법 개정안은 보험료율을 9%에서 13%로 단계적으로 올리고 일부 구간에서 소득대체율을 조정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이 개편으로 국민연금 기금 고갈 시점은 기존 전망보다 10년 이상 뒤로 밀린 것으로 추산된다. 겉으로는 “연금 고갈 시점이 멀어졌다”라는 안도감이 생길 수 있지만 그 이면에는 현역 세대의 부담 증가와 기금 운용 압력 확대가 동시에 자리한다.
여기에 국제통화기금(IMF)은 2025년 한국 연례협의 보고서에서 더 긴 시계를 제시했다. 인구구조 변화로 연금·보건의료·장기요양 지출이 2050년까지 30~35% 증가할 것이라고 추정하면서 현재의 제도와 성장 추세를 전제로 할 경우 2050년 국내총생산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90%에서 최악 130%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반대로 복지제도 구조 개혁과 세입 기반 확충에 성공할 경우 그 비율을 60%대 후반에서 90% 안팎으로 유지할 수 있다고 제시했다. “개혁을 하지 않으면 130%, 개혁에 성공하면 60~90%”라는 숫자는 한국 재정의 중장기 진로가 얼마나 개혁 여부에 달려 있는지를 보여준다.
IMF가 제안한 처방은 구체적이다. 선진국 평균보다 낮은 부가가치세율 10%를 점진적으로 올리고 소득세·법인세 등 각종 조세감면을 정비해 세입 기반을 넓히라고 권고한다. 연금과 보건의료 시스템의 지출 구조를 손봐 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회복해야 한다는 주문도 함께 담겼다. 종합하면 “더 오래 일하고, 더 많이 내고, 제도는 구조적으로 바꾸라”는 방향을 제시한 셈이다.
노동시장과 연금 제도에 대한 IMF의 권고도 이 흐름과 닿아 있다. IMF는 별도의 특별 보고서에서 법정 정년을 60세에서 65세로 연장하고,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을 68세까지 늦추는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이런 조치를 단계적으로 시행하면 총고용이 두 자릿수 비율로 늘고, 고령층 생산성이 유지된다는 전제하에 2070년 국내총생산이 10% 이상 증가할 수 있다는 예측도 붙였다.
문제는 현실의 한국 노동시장 구조다. 연공서열 중심의 임금체계를 그대로 둔 채 정년만 늘릴 경우 기업 인건비 부담과 청년고용 위축이 동시에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을 IMF 스스로 인정했다. 결국 임금체계 개편, 정년 연장, 수급 연령 상향, 고령층 재취업 지원과 같은 요소들이 한 묶음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를 가계의 자산·부채 구조와 함께 놓고 보면 한 가지 그림이 그려진다.
더 오래 일해야 하고, 더 오래 보험료를 내야 하고, 연금 수급 시점은 더 뒤로 밀리는데, 그 사이의 공백은 개인의 자산 운용이 메워야 한다. 코스피, 나스닥, 환율과 연동된 자산이 이 공백을 채우는 거의 유일한 도구로 제시될 가능성이 높다. 지수가 오를수록 노후 준비가 쉬워지는 구조, 지수가 꺾이고 환율이 뛰면 노후 준비가 한꺼번에 흔들리는 구조가 동시에 강화되는 셈이다.
연기금 이야기도 이 맥락에서 다시 볼 필요가 있다. 앞선 글에서 짚었듯이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비중은 이미 목표 상단 구간에 다가선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연기금을 더 써서 지수를 올리자”라는 요구는 구조적으로 연금에 부과된 장기 수익률·지급 안정성 목표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코스피 하락기에 연기금이 추가 매수에 나서 지수를 방어하면 단기적으로는 시장에 힘이 되지만 그 선택은 곧바로 미래 세대의 연금 재정 위험으로 되돌아온다.
정치권이 연기금과 공적 자금을 ‘코스피 5000’ 프로젝트의 조연으로 호출하려 할수록 가계와 IMF가 제기하는 질문은 더 날카로워진다.
가계는 이미 높은 부채비율과 부동산 편중 구조 위에 서 있고 국민연금과 국가재정은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장기 지출 증가 압력을 감당해야 한다. 이런 조건에서 연기금이 다시 '지수 방어막' 역할을 맡는다면 그 대가를 누가 언제 어떤 방식으로 치를 것인지에 대한 설명이 필요해진다.
후속 과제는 복잡해 보이지만 방향 자체는 분명하다. 지수 목표를 앞세운 상징 정치보다 가계·연금·재정이 감당할 수 있는 위험의 범위를 먼저 정하고 그 안에서 자본시장 정책을 설계해야 한다는 점이다.
가계 입장에서는 레버리지와 환율 리스크를 감안한 투자 교육과 보호장치, 연금 입장에서는 자산배분과 환헤지 원칙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정치적 간섭을 차단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 재정 측면에서는 IMF가 제안한 부가가치세·조세감면·복지 지출 구조조정 논의를 단발성 이벤트로 소비하지 않고, 중기 재정전략의 축으로 끌어올리는 작업이 요구된다.
코스피 5000이라는 숫자는 언젠가 도달 가능한 목표일 수 있다. '코스피5000'이라는 숫자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가계와 연금, 재정이 어떤 위험을 어떻게 나눠 떠안았는지에 따라 그 의미는 전혀 다른 결과로 돌아온다.
지금 필요한 질문은 “지수를 얼마나 올릴 수 있는가”가 아니라 “이 지수를 떠받치고 있는 가계와 연금, 재정의 재무제표가 얼마나 버틸 수 있는가”에 가깝다.
숫자의 높이보다 숫자를 버티는 체력이 더 중요하다는 점이 ‘코스피 5000’ 논쟁이 던지는 다음 쟁점이다.
2025년 11월 27일 목요일
자유와혁신 최고위원 김진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