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리도 그랬을까.

자기 연민에 관하여

by 글월 문

인생엔 필연적으로 힘들 때가 있다고 한다. 이러한 진리를 알고도, 힘들 땐 힘들다. 어려운 시기를 겪고 나면 빛나는 시기가 올 거란 위로의 말도 이땐, 들리지 않는다. 이쯤 되면 적어도 나의 세계에서, 신은 죽었기 때문이다. 어딨는지 모르니까. 그래서 세상에서 신이 주신 선물은 다 해봤다고 느낀다. 저 세상으로 가도 되지 않을까.


연민에 빠질 때, 비겁한 버릇이 하나 있다. 나보다 어려운, 어려웠던 이들의 이야기를 하나씩 꺼내보는 일이다. 오늘은 '찰리'다. 찰리의 초콜릿 공장의 '찰리'는 아니다. 워런 버핏과 함께 버크셔 해서웨이를 이끌었던, 2년 전 사망 당시 약 3조 3500억 원 규모의 재산을 남기고 간 '찰리 멍거'다. 변호사이자 투자가인 그는 '오마하의 현인'으로 불린 버핏처럼 패서디나의 현인(Oracle of Pasadena)으로 불렸다.


1953년, 29세의 나이에 첫 번째 아내와 이혼했다. 당시 이혼은 커다란 사회적 낙인이었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지만, 이혼으로 집을 포함한 거의 모든 재산은 아내의 몫이 됐다. 1년 후, 8살 아들 테디가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당시엔 의료보험도 없었기 때문에 멍거는 치료비를 모두 부담해야 했다. 그는 변호사 일을 하면서도 매일 같이 테디가 입원한 병동을 방문했고, 동시에 자녀 두 명까지 돌봤다. 하지만 테디는 1년 후 사망했다.


아내와 이혼, 경제적 불안, 아들의 죽음까지. 웬만한 이들이라면, 특히 당시라면 더욱이, 술과 도박에 빠져도 이상하지 않았지만 찰리의 선택은 달랐다. 적어도 도피하진 않기로 했다. 대신, 책을 붙잡았다. 그리고 '내가 조금 더 부자였더라면, 상황이 달라졌을까'란 생각에 경제적 독립을 위해 투자업에 뛰어들었다. 몇 년 뒤 이 상황에 대해 찰리가 남긴 말이다.


부러움, 억울함, 복수심 그리고 자기 연민은 참으로 비참한 감정입니다. 자기 연민에 빠지게 되면 거의 편집증에 가까워집니다. 자기 연민에 빠질 때마다, 무엇 때문에 그런지 상관하지 않게 되고, 자식이 암으로 죽는 모습에서 자기 연민은 전혀 상황을 나아지게 하지 못합니다. 참으로 말도 안 되는 행동입니다.


인생엔 끔찍한 충격, 소름 끼치는 충격, 불공평한 충격이 아무런 상관없이 나타납니다. 거기서 회복하는 사람이 있고,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에픽테투스의 태도가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인생에서의 모든 불운이 행동을 바로잡을 수 있었던 기회였다고 생각했습니다.


인생에서의 모든 불운이 무언가를 배울 수 있었던 기회였기 때문에, 자신이 해야 할 일은 자기 연민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끔찍한 충격을 건설적인 방식으로 활용하는 것이었습니다. 아주 좋은 태도입니다.


결국 찰리는 '연민'에 빠지지 않았다. 이후 멍거를 향한 세상의 얄궂은 시험은 끝나지 않았어도. 52세의 나이에 백내장에 걸려 아픈 눈 전체를 들어내야 했다. 그는 한쪽 눈은 잃었지만 젊은 날의 선택, 독서와 유머만은 절대 잃지 않기로 했던 것 같다. 잠시 잊을 수는 있어도. 다만, 한 가지 의문은 남는다. 느닷없이 찾아오는 인생의 실패와 충격에 연민에 빠지지 않는다고 해도, 그처럼 성공할 수 있을까.






keyword
작가의 이전글정체성의 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