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판 위의 알까기?...'두뇌 싸움' 컬링 세계

한 수 앞 내다보는 '체스' 가까워...'팀 킴'의 베이징올림픽 성적은

by 글월 문
바둑알 대신 스톤... 손가락 대신 빗자루(브룸)
netflix '승리한 패배자들' 빙판 위의 지배자

연장을 가지 않는다면, 야구가 9회까지 한다면 컬링은 10'엔드'까지 원(하우스) 가운데 누가 더 많은 '스톤'을 넣는지 겨루는 경기다. 빙판 위에서 하는 종목이지만 스케이트를 신지 않는다. 바닥이 잘 미끄러지는 특수 경기화를 신고 4명의 선수가 한 팀을 이룬다.


컬링 하면 스톤을 던지고 그 스톤 앞을 빗자루질하는 경기로 생각한다. 사실 물리적으로 생각해보면 바둑판 위의 알까기와 비슷하다. 우리 알은 가장 많이 남고, 상대 알은 바둑판 밑으로 밀어내는 행위처럼 상대편 스톤을 하우스에서 얼마나 효율적으로 밀어내는지가 중요하다.


알까기와 차이는 머리를 꽤 많이 써야 한다는 거다. 무게 17-20kg에 달하는 스톤이 올록볼록한 얼음 알갱이 '페블'을 지나가는데, 단순히 상대방 스톤을 밀쳐내는 데만 힘을 쓰면 경기를 이길 수 없다. 빗자루(브룸)로 2-3명의 선수가 쓱싹쓱싹을 넘어선 빠른 스피드로 스톤의 방향과 속도를 조절하는 이유도 다르지 않다. 선공이냐 후공이냐, 우리 스톤을 어디에 두고 상대 스톤을 어디로 밀어낼까. 경기는 10 엔드까지 진행되기에 한 수 두 수 앞을 더 봐야 한다


16개의 돌이 정하는 1 엔드의 승부... 가장 중심에 가까운 돌의 팀만 득점
컬링의 포지션

농구에 가드, 포워드, 센터가 있다면 컬링엔 리드, 세컨드, 서드, 스킵이 있다. 컬링의 가드는 스킵이다. 상대방 움직임을 살피고 우리가 어떻게 움직일지 결정한다. 경기는 투구자가 핵에서 출발해 반대편에 선 브룸을 향해 스톤을 민다. 다른 선수는 스톤을 쫓으며 브룸으로 바닥을 문지른다. '스위핑(swipping)'이다. 스위핑은 앞서 말한 것처럼 스톤을 조금 더 빠르게, 또는 조금 더 느리게 만든다. 그리고 1 엔드에는 1팀당 8개, 총 16개의 스톤을 하우스로 보낸다. 1팀의 마지막 2개의 스톤은 스킵이 투구한다. 스킵이 중요한 두 번째 이유다. 앞서 7개의 샷을 놓쳐도 스킵의 마지막 샷이 성공한다면, 승리할 수 있다.


캐나다에서 출발한 컬링... 예의와 존중의 스포츠
1909년 캐나다 온타리오 컬링 장면

넷플릭스 시리즈 <승리한 패배자들 '빙판 위의 지배자'>엔 캐나다의 컬링 리그인 '브라이언 대회'의 이야기를 그린다. 사실 컬링은 스코틀랜드에서 시작했다. 캐나다는 세계에서 가장 컬링 선수가 많은 나라다. 의사, 농부, 물리치료사 등 다양한 직업들이 컬링 선수를 겸한다. 캐나다 지역 공동체를 중심으로 발전해 하나의 문화가 됐다. 얼음판에서 스톤을 미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가능성', 극적인 순간에 연출할 수 있다는 '드라마'가 결합하자 캐나다 전통 스포츠가 됐다.


컬링 경기의 주목적이 선수들의 상대적인 기량을 겨루는 것이지만, 컬링 정신(The Spirit of Curling)은 훌륭한 스포츠맨십, 친절한 마음, 고결한 행동을 요한다.

(While the main object of the game of curling is to determine the relative skill of the players, The Spirit of Curling demands good sportsmanship, kindly feeling and honourable conduct.)


세계 컬링연맹에 나오는 '컬링 정신'의 한 대목이다. 가장 주목한 건 '친절한 마음'이다. 컬링은 국격의 바로미터로 시작한 스포츠가 아니라 지역 주민들이 함께 놀면서 커갔다. 그래서인지 컬링은 끝날 때까지 최선을 다하는 게 능사는 아니다. 스코어가 크게 벌어지면 먼저 기권하는 건 적어도 컬링에선 스포츠맨십이 없다고 비판받지 않는다. 바둑에서 집 차이가 크면 먼저 돌을 던지는 것과 비슷하다. 포기할 땐 포기하는 게 존중받는 영역도 있다.


베이징올림픽 본선 막차 탄 '팀 킴'... 평창올림픽 은메달 재현 가능할까

한국의 컬링 시설은 2006년에 세워졌다.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에서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지 8년 만이다. 그리고 의성에 세워진 이 시설이 의성여고 4명을 불러모았고, 그게 '팀 킴'의 시작이었다.

평창올림픽 뒤 '팀 킴' 조명한 뉴욕타임스 기사

"이들이 올림피언이 될지 아무도 몰랐다" 뉴욕타임스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도 그랬다. 경상북도 경주가 고향이지만 경상북도 의성군은 나에게도 익숙한 지명은 아니었고, 의성에서 출발한 컬링은 우리 국민들에겐 낯선 종목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의성여고 친구 4명은 평창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따냈다. 과정도 극적이었다. 일본을 꺾은 건 우리 스포츠에서 반은 했다는 얘기인데, 준결승에서 이기면서 할 일을 다했다. '영미'는 소리였을 뿐이고 목은 그들의 노력이었다.


하지만 베이징올림픽을 가기까지는 쉽지 않았다. 코로나19로 훈련을 한동안 못했지만, 그건 '팀 내 부조리'에 비하면 괜찮다. 선수들은 오랫동안 감독과 감독의 남편과 연맹의 회장인 '일가'인 이들에게 조직적인 괴롭힘을 당해왔다. 그리고 국가대표를 3년 동안 내려놔야 했다. 평창올림픽의 영광은 서서히 잊혀갔다. 이들은 또 한 번 외롭게 싸워왔으며 그 투쟁의 도구로 스톤을 밀었다. 태극마크를 되찾았을 때쯤 베이징올림픽은 가까워 보였지만 세계의 벽은 더 높아져있었다. 계속 졌지만 또 스톤을 밀었다.


그리고 올림픽 자격대회였다. 평창올림픽 때는 극적으로 꺾었던 일본에 밀리면서 베이징올림픽에 못 갈 뻔했다. 하지만 컬링은 알까기가 아닌 체스였다. 마음을 굳게 먹으면서 라트비아를 이기고 올림픽 출전 10개 나라 가운데 가장 마지막에 본선 티켓을 따냈다. 썰매는 시속 140km로 달리고 스피드스케이팅은 시속 50km고, 크로스컨트리는 시속 28km다. 속도의 동계 스포츠에서 컬링은 가장 느리다. 시속 18km밖에 나오지 않는다. 컬링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란 뜻이다. '팀 킴'이 속도는 가장 느려도 방향은 틀리지 않았다는 걸 베이징에서 증명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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