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재 아들…유쾌한 허웅·허훈 '형제 더비'
올스타전 투표 신기록...'허씨 전성시대'
[허웅/원주DB : 3000석이 저 때문이고, 300석 정도가 훈이 때문에 된 것 같고요.]
[허훈/수원KT : 나머지 선수들은 뭐가 돼. 형이 3300석 다 했다고 합시다.]
허웅과 허훈이 인터뷰를 시작하자마자 한 말이다. 두 형제는 코트 안에서도 밖에서도 양보가 없는데, 같이 있으면 즐겁고 친해보였다. 사실 이 인터뷰는 어렵게 성사됐다. '원주 아이돌' 허웅과 '수원 아이돌' 허훈은 농구뿐만 아니라 방송 출연도 여러 프로그램을 할만큼 바쁜 스타다. 허훈의 얘기로는 형이 인터뷰를 하기 싫다고 했지만, 허웅은 인터뷰뿐만 아니라 1대1대결을 해달라는 요청에도 동생을 이끌며 나서서 잘해줬다.
허웅과 허훈은 이른바 '농구 대통령'이라 불리는 허재의 아들이다. 요즘 MZ세대에는 예능에 나오는 '옛 농구 선수'로 알고 있을텐데, 사실 허재의 경기를 직접 본 적은 없다. 그가 남긴 기록과 업적이 말해줄 뿐인데, 중앙대 재학 시절엔 실업팀을 이기고 결승에 올랐는데, 풀어서 이야기하면 대학생이 프로를 이겼다는 거다. 이후 프로가 되어선 2번의 우승을 거머쥐었다. 한국의 '마이클 조던'이란 별명이 어색하지 않았던 유일한 선수. 참고로 농구 만화 '슬램덩크'에서 '런(run) 앤 건(gun)'으로 유명한 풍전고교는 허재가 뛰었던 1980-90년대 한국 농구대표팀을 롤 모델이었다.
장난끼 많은 형제도 농구에서 아버지의 업적만은 인정해줬는데, 닮은 점이 있겠다고 했지만 정확히 무엇이 닮았는지는 모르겠다고 했다. 하지만 운동 2세가 겪는 여러 고통 가운데 하나는, 스스로의 이름으로 서려면 아버지의 무엇을 닮은 채로 뛰어난 실력을 갖춰야 한다는 건데, 여기까지 도달하기 위해선 팔짱 낀 시선을 견뎌내야 한다. "너가 허재 아들이지?" "얼마나 잘하는 지 보자" 이런 말들을 듣고 또 보아온 이들이 어떻게 이겨냈는지 궁금했다.
돌아온 답은 "각자의 농구 인생이다"는 거다. 유쾌한 두 형제는 어린 시절 고민과 아픔이 왜 없었겠냐마는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려고 했고, 해야 할 것들을 충실해 해왔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버지의 이름을 벗어나기 위해서 노력했다기보다는 평범한 농구 유망주처럼, 그저 농구를 해왔을 뿐이었다. 물론 이들에게도 견디기 힘든 시절은 있었다. 자카르타 아시안게임 당시에 불거진 '특혜 선발' 논란이다. 당시 허재 남자 농구 국가대표팀 감독은 대표팀에 두 아들을 뽑았는데, 이것이 특혜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다. 이 논란에 허 감독은 사퇴했고 두 아들도 제 기량을 펼치지 못했고, 대표팀도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다.
이후 허훈은 지난 시즌 MVP에 올랐고, 허웅은 최근 평균 15점을 넣으며 팀의 에이스로 활약하고 있다. 두 사람에게 배울 점은 평가에 크게 휘둘리지 않고 묵묵히 다음을 생각해냈다는 거다. 떨린 적이 있냐는 질문에도 잘 떨리는 성격이 아니라고 했는데, 이때쯤 뭔가 질문이 잘못됐다는 걸 깨달았다. 이들의 농구 인생에서 아버지의 이름은 사실 아버지이기 때문에 나오는 것일 뿐이었다. '농구 대통령'을 어떻게 넘어섰냐는 질문은 애초에 이들에게 다른 과녁을 향한 것이었다. 이들은 아버지를 넘어서기 위해 농구한 게 아니라 재밌어서 했고, 부족한 점이 있다면 조금 더 훈련해서 발전했을 뿐이었다. 어쩌면 이들에게는 '농구 대통령 허재'가 아닌 '아버지 허재'는 당연한 말이었을텐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