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는 그 자체로 참 흥미로운 행동이다. 나는 걷기가 인간의 삶을 가장 잘 표현하는 동작이라고 생각한다.
걷기의 목적은 수평으로 움직이는 것임에 반해 실제로 대부분의 힘이 수직으로 작용된다. 이때의 수직 힘은 우리 몸의 질량만큼 가해지는 중력에 대항해서 우리가 가하는 힘을 말한다. 질량은 존재하는 것을 나타내는 물리량이라고 볼 수 있다. 종합해 봤을 때, 걷는 것은 우리가 상태를 변화시키려 할 때마다 우리의 존재를 확인하게 되는 행위라고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게다가 걸어서 어딘가에 도달한다는 것은, 시간에 방향성이 존재한다는 것과 삶에는 결국 끝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우리의 인생과 닮아있다. 이런 생각의 흐름으로 걷는 것은 삶을 살아간다는 것을 대표할 수 있는 작은 행위 모음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또, 걷기는 보이는 것보다 복잡한 운동이다. 순간마다 몸의 곳곳의 관절과 근육이 다른 방향으로 힘을 주거나 받고, 그 순간마다 몸의 무게 중심은 계속 바뀐다. 걸음을 직접 공학적으로 구현한다고 상상해 보면 더 실감이 날 것이다. 때문에, 걷기의 역학은 로봇공학에서도 가장 관심을 갖는 분야이고 상당한 양의 연구가 이루어져 왔다. 걷는 동안 일어나는 많은 일련의 과정들이 굉장히 유려하면서 단순하게 보인다는 것, 그리고 실제로도 걷기는 때로는 인식하지도 못할 만큼 자연스럽게 행하는 동작인 것 또한 흥미로운 점으로 느껴진다.
걷기의 행위를 실존주의적으로 포착하고 예술적으로 표현한 작가가 있다. 바로 자코메티이다.
그는 초기에는 지금 많이 알려진 작품들과는 다르게 추상적인 큐비즘 작품을 많이 만들었다. 세계 2차 대전 이후, 그는 환상보다는 현실을 표현하는 데에 더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완전히 그만의 새로운 스타일의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 시기의 그의 작품은 실제 인간보다 훨씬 길쭉하고 여윈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그 작품들은 인간성이 넘쳐흐른다. 그는 제3의 눈을 가지고, 실제보다 더 실제 같은 인간을 표현해 냈다. 자코메티는 뼈대를 만들고 계속해서 덜어내는 식의 과정을 거쳐 작품을 만들었다고 한다. 실제로 작품을 볼 때 나는 그가 공간까지도 조형한 것처럼 느껴졌다. 덜어내는 것은 사실상 공간을 쌓아 올리는 것과 마찬가지니까.
그는 사람들의 움직임에 관심이 많았고 움직임을 정적인 순간의 연속으로 보았다. 그의 작품 '걷는 사람'을 보면 어딘가를 향해 계속해서 걸어가는 그리고 그럴 수밖에 없는 인간의 삶과 운명이 보인다. 그리고 그것이 너무나 당연하게 표현되면서도 조금은 장엄한 느낌마저 든다. 그의 걷는 인간 시리즈 작품을 보다 보면, 그가 카페에 앉아 창문 밖에 걸어가는 사람들을 유심히 바라보는 장면이 떠오른다. 그게 그렇게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여담으로 덧붙이자면, 자코메티는 '고도를 기다리며'라는 사무엘 베케트의 연극의 무대를 디자인했다. 이 연극은 인간의 삶의 부조리를 표현한 실존주의 작품이다. 언제 올지 모르는 고도를 기다리는 것과 자코메티의 걷는 인간 작품은 정확히 맞닿아있다. 그런 점에서 그 둘의 협업은 그 당시에는 자연스러운 것이었을지는 모르지만, 현재의 나에겐 이 둘의 역사에서 서로의 이름을 발견하게 되어 무척 반가웠다. 자코메티가 만든 무대에 설치된 앙상한 나무는 극에 참 잘 어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