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곳으로의 출발

보라카이에서 4일 동안 살아보기.

by 초록


출발



- 우리 이번엔 휴양지로 한번 떠나볼까?

- 그래, 하루 종일 바다에서 뒹굴면서 선셋이나 보고 오자!

그렇게 시작된 우리 넷의 여행.


사실 꼭 가보고 싶은 나라를 정하는 것보다 비행기 값에 우리의 여행지는 정해졌다. 이번 해 안에는 내가 가고 싶은 나라를 정해서 꼭 가보리라. 몇 개월 전에 예매해 놓은 터라 꽤 저렴하게 할 수 있었고 그 날을 위해 우리는 각자 더 열심히 버텼다. 드디어 일주일 전으로 다가왔다.



대책 없는 즉흥적인 타입

나는 여행을 가면 그곳에 사는 것처럼 다녀오는 편이라 맛집을 찾아가거나 유명한 곳을 가보기보다 숙소 근처를 돌아다니며 골목을 들어가 보는 것을 선호한다. 유명한 곳들을 다 가보려면 부족한 4일이지만 집 앞 풍경을 여기사는 사람들처럼 돌아다니거나 마트를 가서 장을 본다거나 하면 하루는 꽤 길다. 여하튼, 나는 떠나기 전 많이 찾아보지 않는 스타일이라 딱히 준비할 건 많지 않았다. 캐리어, 세면도구, 스노클링 도구, 선글라스. 사실 미리멀리즘을 시작하려고 하는데 지금 나의 캐리어는 아직 노력형에 불과하다. 그래도 미니멀에 매력을 느꼈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대책 없이 즉흥적으로 여행하는 나에겐 미니멀리즘이 필요해 보였다. 진짜 내가 좋아하고 필요로 하는 것들을 최소한으로 내 곁에 둔 채, 그것들과 함께 하는 여행, 삶을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의 인생도 그렇게 좋아하는 것에 더 집중할 수 있기를.


2019-03-14 17;11;37.PNG 애정 가득한 물건들


2019-03-14 18;00;43.PNG sd카드 스티커로 순서 정리하기.


내 물건에 애정 더하기

짐을 쌀 때 꼭 필요한 몇 개만 챙기다 보면 애정이 그만큼 커진다. 너무 많이 가져갈수록 정신없어지고 내가 뭘 가져왔는지 잊어버리기 마련이다. 이번 여행은 내가 필요한 최소한의 것들로 꾸려서 가기로 했다. 그중 특히 중요한 sd카드. 내가 바라보는 시선을 담아줄 공간. 팔레트 스티커로 점차 진한 색으로 붙여두었다. 색이 진해지듯, 사진들도 채워져 가는 것처럼. 그리고 떠나기 전 알아봐야 할 것은 호텔, 포켓와이파이, 픽업, 환전. 그리고 구글 지도에 관심 있는 곳들을 미리 즐겨찾기 해두기. 뭐, 이 정도만 해도 충분하다. 너무 기대하지도, 준비하지도 않기. 생각지도 못한 것이 우연으로 일어나는 것이 매력적인 여행이 될 수 있도록.



2019-03-14-17;53;37.png
2019-03-14-17;10;50.png

처음 보라카이를 마주한 순간, 도로 위 활발함과 바다의 여유로움이 어색했다. 분주하고 바쁘게 돌아가는 도로 위에 있다가 건물 하나만 지나면 여유로운 바다가 펼쳐지니 해리포터의 문으로 들어간 기분이랄까. 문득 서울에서 처음으로 부산 해운대로 여행을 온 친구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진짜 신기하지 않아? 분명 나는 건물 사이를 걷고 있었는데 갑자기 바다가 나오잖아. 오아시스 같아. " 이제 그 말이 이해가 된다. 공사 소리로 시끄럽고 분주하던 곳을 지나 오아시스같이 펼쳐진 해변을 보고 감동을 받은 나처럼, 친구도 그랬을까.



2019-03-14-17;12;29.PNG 건물 하나로 나누어지는 해변

파란 하늘에 낮은 지붕의 건물들. 바람 따라 움직이는 나뭇잎의 결들. 공간이 주는 힘. 여기 있으면 나는 뭐든지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가슴 벅차오름으로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짐을 풀고 가방 하나 둘러메고 해변으로 나왔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광경이 말이 되는 걸까. 내 눈으로 지금을 볼 수 있는 것, 해변을 걸을 수 있는 것, 정말 사소한 하나까지 감사하게 되는 순간. 자연은 나에게 힘을 주고, 겸손함을 준다. 해가 지고 떠오르는 것처럼 떠오름이 있으면 짐이 있음을. 힘차게 모래사장 위를 몇 번이고 차고 오르는 파도처럼 늘 노력하고 다시 차오르기를. 자만하지 말고, 나태해지지 말고, 실패가 오더라도 슬퍼하지 말기를.

2019-03-14-17;11;04.png

더 대책 없고 철없는 생각을 해보라고, 별거 아닌 걱정거리에 갇혀있지 말고 파란 하늘을 보라고,

내일을 걱정하지 말고 그저 기대하라고.

새로운 곳으로 출발하는 것은 나에게 이런 힘을 준다.



작가의 이전글나를 표현하는 방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