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살고 싶으면서도 은근히 스포트라이트를 바라는 마음
"오늘 밤 주인공은 나야~ 나! 나야~ 나"
읽기만 해도 자동적으로 음이 붙어 나오는 노랫말이다. 이 가사에는 두 가지 뜻이 내포되어 있는 듯하다. 오늘 나는 주인공처럼 멋지다는 게 첫 번째이고, 다른 하나는 어제까지, 아니, 오늘 아침까지도 나는 주인공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우리 모두 주목받지 못하던 엑스트라지만, 하룻밤이라도 주인공이 되고 싶어 하는 그런 심리를 신나게 자극한다. 해당 노래가 나오던 서바이벌의 출연자들은 이 노래를 부르며 조금이라도 더 주목받기 위해 몸부림을 쳤었고, 그 몸부림들은 어른들의 더러운 돈놀이에 묻히고 결국 불명예스럽게 마무리되었다.
주인공이 뭐길래. 주인공은 일종의 명예이고 명예는 돈이 된다. 아주 작은 주목도 돈이 되는 요즘 시대에, 이 명예가 조금이라도 금전적인 도움이 된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단순히 돈에 관한 게 아니더라도, 주인공이라는 단어가 우리에게 주는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아주 어릴 때부터 우리는 만화영화의 주인공의 대사를 따라 하면서 놀지 않았던가.
그런가 하면 영화나 드라마 등의 창작물을 볼 때, 비중이 작지만 매력적인 조연에 열광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 일이 잘 풀리면 이 등장인물이 새로운 작품에서 주인공으로 재탄생되는 일도 종종 있다. 조연도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희망찬 메시지와 등장인물의 매력이 시너지를 일으켜, 가끔 본래의 주인공보다 새로운 주인공에 더욱 열광하는 경우도 있다-영화에서의 대표적인 예로 미니언즈, 조커 등이 있겠고, 소설에서는 브릿마리(지극히 개인적인 취향) 정도가 있겠다.
나도 작품들을 보다 보면 다음과 같은 생각을 종종 한다.
'저 캐릭터, 정말 매력적인데 왜 저렇게 비중이 작은 거야? 나 같은걸?'
ㅎ.. 너무 자기애가 넘치는 것 아니야?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솔직히 저건 조금 과장한 거지만(진짜 저렇게까지 생각하진 않는다..), 그래도 어릴 때의 나는 자존감이 꽤 높은 아이였다. 학창 시절을 돌이켜보면 공부도 예체능도 곧잘 하고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반장을 한 번도 빠짐없이 항상 도맡아 했으니 자존감이 하늘을 찌를만했다.
나의 높았던 자존감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꺾이기 시작한 것 같다. 재수를 하면서 나의 기는 한풀 꺾였고, 원하는 대학은 갔지만 대학생 때부터 나의 인생은 내가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과정이었다. 대학을 가보고 사회에 나와보니 나보다 뛰어난 사람이 많더라는 흔한 이야기이다. 어릴 때부터 체스의 퀸과 같은 주인공이 되고 싶었으나 결국 폰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좌절감이나 패배감에 사로잡혀 살던 것은 아니다. 내가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것을 인정해 가는 데에 도움이 된 것은 대학 시절의 동아리 활동이었다. 음악을 좋아했던 나는 합창단과 밴드 동아리 활동을 열심히 했다. 사실 합창단은 과친구들이 가자고 하거나 해서 들어간 동아리였다. 나는 노래는 좋아하지만 여럿이서 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혼자 부르고 주목받는 게 더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여럿이서 목소리를 맞추는 합창이라는 건 정말이지 흥미가 없었다. 그렇지만 공대생(남녀비율 10 대 1)이었던 우리들은 무엇보다도 동아리의 성비가 중요했다.
합창단은 매주 2회의 저녁 연습이 있었고, 첫 연습날에 나의 생각은 크게 바뀌었다. 약 60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모여 목소리를 하나씩 맞춰가며 노래를 완성시키는 기분은 경험해보지 않으면 모를 것이다. 그날 나를 데려간 친구들은 재미가 없다며 이후 연습에 잘 나가지 않았고, 오히려 나는 이후 합창 공연만 10회가량 섰고, 심지어 동아리 임원-공연 인원이 많아서 임원도 많이 필요하긴 했다-까지도 맡아서 할 정도로 몇 년간 열과 성을 쏟았다.
합창은 내가 이전까지 기대했던 것과는 다른 방향의 경험이었다. 스스로 잘난 맛으로만 살려고 했던 어렸던 나에게 합창은 각자의 개성은 조금 줄어들지만 다른 사람들과의 손발을 맞추면 멋진 결과물을 만들 수 있다는 걸 알려주었다. 꼭 주인공이 아니더라도, 퀸이 아니라 폰의 위치에 있어도 괜찮다고 위로해 준 것이다. 이후에도 나는 혼자서는 힘든 여러 가지 일들을 힘을 합쳐 해내는 경험들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고, 퀸이 아닌 것에 좌절하지 않을 수 있었다.
솔직히 아직은 주인공이라는 말에 가슴이 뛰기도 한다. 또한, 퀸이 되는 것도 포기하긴 이르다는 생각을 여전히 가지고 있다. 부지런히 움직여 적진을 뚫고 1열에 서게 되면 어떤 것도 될 수 있는 것이 폰이니까. 아무리 내가 영화 주인공처럼 멋있진 않더라도 내 인생의 주인공임을 포기해 버리는 것은 슬프지 않나 싶은 마음에.
흔히들 우리는 모두 각자 인생의 주인공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영화나 소설 속 주인공이 되려면 온갖 고난과 역경을 뚫어야 한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고 했던가. 계속 인생을 주인공처럼 살다가는 스트레스로 머리털이 남아나지 않을 것이다. 주인공보다는 이제 머리숱이 중요한 나이가 되었다.
그래서 이제 나는 아주 가끔씩 주인공이 되는 것으로 만족한다. 다 같이 열심히 공연준비를 할 땐 평범한 조연이었지만 공연을 선 날은 누가 뭐래도 나는 주인공이었다. 다른 동아리원들과 모두 함께 주인공 었던 날이다. 비단 공연뿐 아니라 가끔씩 생겨나는 스스로를 뿌듯하게 하는 날들이 나를 살게 하고 지탱한다. 인생이라는 건 간헐적으로나마 주인공이 되어보는 것으로도 충분하다는 걸 인정해 가는 과정 아닐까? 평소 폰처럼 조금씩 전진해 나가다가 가끔씩 퀸의 옷을 입고 실력을 뽐내 보는 그 과정을 사랑하는 것. 이 노래 가사처럼 말이다.
'오늘 밤 주인공은 나야~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