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의와 악의 사이, 착한 척과 못된 척의 경계에서 헤매는 우리
대학 시절의 일이다. 강의와 강의 사이 주어진 시간은 15분. 아무리 바삐 걸어도 그 시간 안에는 다음 강의실에 도착할 수 없었다. 수업 도입부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계속 학교를 돌며 학생들을 실어 나르는 일명 '순환 셔틀버스'를 타야 했다. 혹시라도 버스를 놓치게 되면 15분을 뛰어야 강의에 맞춰 들어갈 수 있었다. 수업을 열심히 듣지도 않았으면서도 괜히 지각은 하기 싫어했던 나는 수업을 듣는 것보다도 15분 안에 강의실에 도착해 내는 데에 더욱 집중했었다.
그날도 수업이 끝나자마자 셔틀을 잡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뛰어가듯 걸어가고 있었다(진짜 뛰어야 하기 전까지는 뛰지 않는 것이 나만의 규칙이었다). 강의를 하는 건물에서 셔틀버스 정류장까지 가기 위해서 반드시 지나쳐야 하는 관문이 있다. 바로 건물 옆문의 흡연구역이다. 지금은 흡연구역이 잘 구분되어 있지만, 당시는 건물 측면 입구는 문을 기준으로 반경 20m 영역이 모두 자연스럽게 흡연을 할 수 있는 구역이었다. 연구실에 갇혀사는 대학원생들은 언제나 건물 입구에서 구름과자를 입에 물고 진을 치고 있었다.
담배 연기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 나는 흡연자들을 피해서 구석진 길로 빠져 걸어가고 있었다. 한 명 두 명 지나치고 있는데, 갑자기 허벅지 쪽에 철퍼덕하고 수상한 소리가 났다. 잽싸게 피해 지나가던 그들 중 한 명이 옆으로 뱉은 영혼까지 끓어모은 가래침과 내 허벅지 부위의 청바지면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소리였다.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가 깜짝 놀라 시간이 멈춘 듯 움직이지도 못하고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가해자는 황급히 내 허벅지에 묻은 침을 직접 손으로 훔치며 죄송하다고 말했고, 나는 멀리서 오는 셔틀버스를 잡기 위해 간단히 괜찮다고 대답하고 급하게 자리를 피했다. 그리고 우습게도 서둘러 강의실을 가면서 정신이 빠졌는지 나는 그 일을 까맣게 잊어버렸다.
요약하면 그냥 걸어가다가 갑자기 바지에 침을 맞고도 아무렇지 않게 넘어간 일명 가래침 사건이었는데, 나중에 이 일을 당시 여자친구에게 담담히 말하니 그 친구는 나를 아주 답답해했다. 그 친구는 종종 그렇게 나를 혼냈다. 화를 낼 일에 제대로 화를 못 내느냐고. 나는 당시 아직 어린 공대생이라 말발도 약했고.. 갑자기 혼나는 상황에 당황하여 이렇게밖에 변명을 하지 못했다.
'아니, 근데 자기 맨손으로 바로 닦아줬는데?'
너무나도 순수한 내 대답에 그 친구는 어이없어하며 사람이 지나다니는 길 위에 침을 뱉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내가 화를 냈어야 하고 화가 나야 정상이라고 했다. 나는 그 말도 물론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역시 나오지도 않는 화를 억지로 끄집어낼 수는 없었다. 그 후로도 내게는 몇 번 더 비슷한 일이 있었고, 억울한 상황에선 표현을 해야 한다고 나의 화를 안내는 성향에 대해 한 소리를 들어야 했다(이 상황에서도 나는 맞서 화를 내지도 화가 나지도 않고, 그저 가만히 고개만 끄덕였다).
분명히 나의 이 반응은 남들이 보면 답답한 부분이 있을 것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살짝 답답하긴 한데 그렇다고 막 욕할 정도는 아니고.. 그냥 착하고 바보 같구나.. 하는 정도일까? 일단 첫 번째로 내가 아니라 여자친구가 침에 맞았다면 나는 불같이 화냈을 것이다(그 정도 사리분별(?)은 된다..). 두 번째로 스스로를 좀 더 이해하게 되고 이제야 약간의 변명해 보자면 나는 그 사람의 의도를 고려한 것이라 말할 것이다. 그에게서 악한 의도가 없다는 걸 알면 화가 나지 않는다고. 의도 없는 행동도 잘못인 경우가 많지만, 회복가능한 가벼운 피해에는 화를 내봤자 서로 감정만 상할 뿐이라고.
선악을 판단하는 데에 있어서 중요한 점은 대상이 있다는 것이다. 피해를 줄 수도 있고, 도움을 줄 수도 있지만 그러려면 적어도 그 대상이 필요하다. 이익 또는 불이익을 받을 대상이 없다면 나의 행동에 대해서는 어떤 도덕적 판단도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선악을 판단하려면 대상을 향한 행동의 의도 또한 중요하다. 실수로 길에서 서류를 흘린 것과 일부러 종이쓰레기를 버린 것을 같은 것이라 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이렇듯 대상과 의도가 합쳐져야 선악의 판단이 가능하겠지만, 우리는 어쨌든 갑자기 이유 없는(해칠 의도가 없는) 피해를 받았을 때에도 자신의 억울함을 해소할 대상이 필요하다. 이 일에 대한 책임을 져줄 희생양을 찾기 위해 가끔은 마녀사냥도 서슴지 않는다. 악의는 아무것도 없어도 저절로 생겨나고 전염병처럼 퍼진다. 그 어떠한 악의도 없는 행동에 화를 내는 것은 꼰대들의 잔소리와 흡사하다. 해결되는 것은 없고 감정을 해소하기 위한 자기만족적인 행동에 가깝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래서 나의 눈에는 감정을 해소하기 위해 만들어낸 화라는 것이 불씨가 옮겨 붙듯 다시 옆 사람에게 악의를 전파하는 것처럼 보인다. 심지어 요즘 세상은 호의를 받아도 의심부터 하게 된다. 악의도 호의도 모두 화내기 위한 불쏘시개가 되는 것이 안타깝다.
이런 생각이 단순히 바보 같지만 착하게 살자는 말로 보일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나는 착한 사람이라기보다는 스스로를 조금 덜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착한 행동을 찾아서 하는 사람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저 누군가의 행동의 결과가 내게 영향을 미칠 때, 결과보다도 그 의도를 조금만 더 밝고 건강하게 보려고 하는 마음이 있을 뿐이다.
이 험난한 세상에서 사람들에게 이제는 다 같이 마음을 열자고 하기도 참 어렵다. 정말 위험하고 무서운 세상이라 조심스럽고 방어적인 사람에 대해 함부로 비판할 수 없다. 그저 속으로 앞으로도 약간만 덜 나쁜 사람이 되자고 다짐하는 수 밖에는 없는 것 같다. 이러한 삶의 태도로 화라는 전염병의 확산을 조금이라도 늦출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