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에 만난 베토벤, 이제야 보이는 얼굴

음악의 성인에서 인생의 동반자로

by 뮤텔 빠삐짱




지난 토요일, 나는 LA 다운타운에서 베토벤을 만났다.

남편 사무실에 갔다가 나오는 길에 길 건너편에 있는 작은 공원에 들렀다. 아기자기하게 잘 꾸며진 공원이었다.

하지만 LA 다운타운이라는 편견 때문에 눈길도 주지 않았는데, 남편이 궁금해해서 가보게 되었다.

널찍하고 잘 정돈된 조경 사이로 동상 몇 개가 있었다.

다가가보니 어디서 많이 본 사람이 떡하니 내 눈앞에 나타났다.

베토벤이라니. 여기서 베토벤을 만나다니.

특유의 헤어스타일과 심각하게 고뇌하는 표정으로

땅을 쳐다보며 뒷짐을 지고 한 발자국을 힘겹게 떼어내는 모습이었다.

손에는 지휘봉인지 지팡이인지 모를 것이 모자와 함께 들려 있었다.

동상 밑에 있는 글을 보니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을 창단한 윌리엄 앤드류스 클라크 주니어에게 헌정한다고 쓰여 있었다.

나중에 알아보니 윌리엄이 가장 좋아하는 작곡가가 베토벤이었다고 한다.


나는 베토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피아니스트에게 베토벤은 국영수 과목 같은 존재이다.

예중, 예고, 음대 입시에 빠지지 않고 지정곡으로 등장하고,

그의 소나타와 변주곡은 피아노를 공부하는 학생이라면 치지 않고 넘어갈 수 없는 중요한 레퍼토리이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유학을 와서까지 베토벤과 함께했다.


너무 심각한, 너무 진중한 음악에 대한 태도.

또 알려진 대로 청각을 잃은 상태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작곡을 계속해냈다는 이야기는

그를 음악의 성인 지위에까지 올려놓았다.

하지만 음악을 공부했던 내게는 뭔가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 같은 느낌이 들었다.

웃는 얼굴을 본 적 없는 베토벤.

항상 심각하고 앙 다문 입과 함께 미간에 세로 주름이 깊게 파인 베토벤.


그를 오십이 넘어 다시 만나니 그 얼굴에 깃든 고뇌가 참 애달프다.

자살을 생각하다 유서를 찢고 다시 일어나기까지, 그는 무슨 생각으로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였을까?

운명을 받아들이고 치열한 노력 끝에 완성한 교향곡 9번 같은 작품은 그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인생의 후반에 접어든 지금 내게 나타난 베토벤이 운명 같은 느낌이 든다.

힘겹게 한 발자국을 떼어내는 그처럼 나도 나의 한 발자국을 조금 더 신중히 떼어야 할 것만 같다.

멈추지 않고 발을 떼어내야 한다고 내게 말하는 것 같은 그 얼굴을 보고 있자니, 이제는 멀리 있지 않은 느낌이다.

오늘 밤에는 그의 9번 교향곡 4악장 '환희의 송가'를 들어봐야겠다.



https://youtu.be/fzyO3fLV5O0?si=AqAyIxDKu8SE1BO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