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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피해자이자 가해자였다

마리모 0년 차, 어른 3년 차

by 뺑또

남에게 피해를 끼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다. 민폐를 끼치느니 차라리 내가 더 손해를 보더라도 갈등을 만들지 않는 편이 속 편한 사람들 말이다.


내가 그랬다. 착해서 그랬다기보다는 사회적인 시선이 중요해서 그랬다. 남이 나 때문에 기분이 상한 것처럼 보이면 걱정과 불안에 휩싸였다. 나를 나쁜 사람이라 오해할까 봐 겁나서였다. 나에 대한 평판이 나빠져서 사회적으로 배척당할까 봐 두려웠다. 이십 대 초중반 까지는 그런 경향이 굉장히 심했다. 그래서 더욱더 남의 눈치를 많이 봤다. 그렇게만 하면 남들과 부딪힐 일 없이 모든 사람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게임같이 단순한 메커니즘으로 굴러가지 않았다. 절대적인 피해자와 절대적인 가해자가 있는 영화 속 세상과는 달리 세상에 절대적인 것은 없었다. 신이 아닌 이상, 사람은 언젠가 한 번쯤은 남에게 폐를 끼치기 마련이었다. 내가 예상치 못했던 변수 때문일 수도 있었고 나의 무지 때문일 수도 있었고 단순 실수 때문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20대 초반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가해자가 되리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 억울함을 느끼게 되리라고는 더더욱 생각하지도 못했던 것이다.






동생과 함께 살게 된 자취방은 번화가 지하철역으로부터 20분 거리에 위치해 있었다. 학생과 외국인들로 붐비는 번화가로부터 주욱 길을 걸어 올라가다 보면, 한적한 골목길에 그 빌라가 나왔다. 1층에 작은 디저트 카페가 있는 필로티 구조의 빌라였다.


처음 써 보는 방 두 개짜리 집. 주황색 크레파스 낙서 자국이 있는 방문과, 귀여운 눈코입 스티커가 붙어 있는 화장실 변기 뚜껑, 별 모양 야광 스티커가 붙어 있는 거실과 화장실 스위치까지. 이전 세입자가 남겼을 그 낯선 흔적들이 있는 공간에 나의 익숙한 짐들이 들어왔다. 재수생 때부터 썼던 이불, 앉은뱅이책상, 빨랫대가 그것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새로운 짐들도 추가되었다. 동생의 짐들이 들어온 것이다. 동생의 이불과 책상, 옷들이 들어왔다. 동생과 함께 쓸 4인용 입식 책상도 새로 생겼다. 그 책상은 거실 겸 부엌에 놓여 tv를 보고, 공부도 하고, 밥도 먹을 수 있는 공용 공간이 되어주었다.


나는 세대주이자 언니이자 자취 선배로서 동생에게 모범을 보이고 싶었으나 딱히 그럴만한 기회는 찾아오지 않았다. 오히려 모범을 보이기는커녕 너저분한 생활습관 탓에 동생에게 잔소리를 듣기 일쑤였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작스레 내가 세대 대표로서 나서야 할 기회가 찾아왔다. 그건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방식이었다.





이사를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혼자 집에서 등교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현관문 초인종이 울렸다.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딱히 뭘 잘못한 것도 없었는데 낯선 이가 문을 두드린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공포스러웠던 것이다. 숨을 죽인 채로 인터폰을 확인하니 30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여자가 문 앞에 서 있었다. 일단 남자가 아닌 데다 외판원도 아닌 것 같은 모양새에 경계를 풀고 슬쩍 문을 열었다. 인상은 나쁘지 않았다. 그 사람이 내게 살짝 웃으며 말했다.


"새로 이사 오셨나요?"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 사람은 알고 보니 우리 아랫집 사람이었다.


"죄송하지만 소음이 너무 심해서요."


"아...!"


이럴 수가. 지금껏 자취를 하면서 층간소음이나 벽간소음을 당하기만 했었지 내가 그걸 유발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이전에 살았던 자취방에서는 늘 분리불안이 있는 듯 계속 짖어대는 옆 집 강아지 때문에 꽤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다. 그런데 내가 그 사람들과 같은 층간소음 가해자가 되다니!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나는 죄송한 마음에 어쩔 줄을 몰랐다. 연신 죄송하다고 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전에 거기에 살았던 사람은 너무 경우가 없었거든요. 아이도 딸려서 너무 시끄러웠는데 제가 뭐라고 해도 말도 안 통하고 그래서..."


그 말을 듣자마자 우리 집에 붙어 있던 스티커와 크레파스자국이 생각났다. 그 아이가, 그 부모가 그런 사람들이었구나. 나는 최대한 딱한 표정을 지었다. 아랫집 사람의 말에 최대한 공감해주고 싶었다. 그것으로 나의 결백을 증명하고 싶었다. '나는 경우 없는 사람이 아니에요', '민폐 끼치고 싶지 않은 정상적인 이웃이에요', 뭐 이런 것들을 어필하려 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 사람과 헤어진 뒤에는 얼른 1층 디저트 카페에서 가서 디저트를 포장해다가 아랫집에 사과의 뜻으로 전달했다. 하교 후 그 일화를 들은 동생은 얼른 바닥보호매트를 샀다. 앞으로는 살살 걷기로 했다. 의자 끄는 소리도 나지 않도록 의자 다리에 큼직한 야구공도 달았다. 그것으로 괜찮겠지 생각했다. 그렇게 그 사건은 막을 내리는 듯했다.


그러나 평화는 얼마가지 않았다. 또다시 혼자 등교 준비를 하던 날 아침, 초인종이 울렸다. 그 아랫집 사람이었다. 이번에는 조금 더 심기가 불편해 보였다.


"여전히 엄청 시끄러워요."


그 사람의 말에 처음에는 바로 뭐라 대답하지 못했다. 어떻게 무엇이 시끄러운 걸까 생각했다.


"화장실에서 신발 끄는 소리도 너무 시끄러워요."


"아..."


그 사람은 화장실에서 좀 더 살살 걸으라고 했다. 나는 일단 죄송하다고는 했지만, 어쩐지 마음 한편이 불편했다. 무언가 항변하고 싶은 충동이 일었으나 어떻게 무엇을 항변해야 할지도 알 수 없었다. 그 사람은 우리 집에서 들리는 온갖 소음에 대해 이야기했다. 아침에 일어나 걷는 것, 저녁에 의자를 끄는 것 등등. 마치 내 모든 일거수일투족이 감시당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마지막으로 그 사람은 결론을 내리듯 이렇게 말했다.


"자취 처음 해보셨죠? 이런 곳에서는 그렇게 사시면 안 돼요."


나를 가르치려고 하는 듯한 말투. 뭔가 단단히 오해받고 있는 느낌. 가 제일 싫어하는 상황이 아니던가. 나는 일단 리는 목소리로 이게 첫 자취가 아니라고 해명했다. 그러자 그 사람은 그럴 리가 없다는 듯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럼 이전에는 이런 일이 단 한 번도 없었다는 거예요?"


그 말에 그렇다고 말하려 했는데, 복잡한 감정이 밀려오면서 어이없게도 목울대에서 뜨거운 것이 치밀었다. 안 돼, 참아! 속으로 간절히 빌었건만 내 바람과는 달리 결국 눈물이 터져 나오고 말았다. 아, 울고 싶지 않았는데. 어른 대 어른으로서 말하고 싶었는데. 하지만 이미 눈물을 흘려버린 이상, 나는 패배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 순간 나는 그냥 세상물정 모르는 나약한 20대 초반 여자아이가 된 것이었다.


그 사람은 그 상황이 어이가 없었는지 웃었다. 그리고 앞으로는 더 조심해 달라고 말하고는 자기 집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바보처럼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그제야 뒤늦게, 그 아랫집 사람에게 하고 싶었던 말들이 입 안에 맴돌기 시작했다. 나도 바닥 매트도 깔고 이것저것 다 했어. 그쪽이 생각하는 것처럼 경우 없는 사람이 아니야. 그런 식으로 애 대하듯 말하지 마. 이젠 화장실에서도 그쪽을 신경 써야 한다는 거야? 수치심과 억울함과 분노가 뒤따랐다. 하지만 그 말을 할 수 있는 대상은 이미 집으로 들어가 버렸고, 이제 그 감정을 풀 수 있는 대상은 나 하나뿐이었다. 왜 나는 미안하다는 말밖에 하지 못했던 걸까. 적어도 나를 위한 항변의 말 한마디쯤은 할 수 있었을 텐데. 자책이 이어졌다.




아랫집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특정 소음에 귀가 트이는 순간 그 소음이 영혼까지 갉아먹는다는 사실을 모르는 바 아니니까. 더군다나 집에 하루 종일 있어야 하는 사람이라면 그 소음에 더 민감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실 진짜 문제는 그 필로티 구조의 빌라였다. 애초에 그 건물은 잘못 지어졌다. 평소처럼 걸어 다니기만 해도 퉁퉁거리는 철골 소리가 울릴 정도였으니까. 현관문 밖에서 누군가가 계단을 오르내릴 때면 방 안에 누워 있는 나에게도 그 발걸음으로 인한 철골의 진동이 다 전해졌다. 벽도 모두 가벽인 것 같았다. 재채기를 하면 그 반향으로 철골물이 웅웅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하루는 내가 딸꾹질을 좀 괴상하게 하자 옆집 남자가 깔깔대며 비웃은 적도 있었다. 나 역시 그 남자의 하품 소리까지 다 들으며 살았으니 그쯤 되면 거의 같이 살고 있었다고 해도 무방하겠다. 그래서 장점이 하나 있기는 했다. 축구를 보면 옆집과 함께 응원이 가능했다. 이 얼마나 사람 친화적인 빌라란 말인가. 사람의 온기를 느끼고 싶다면 필로티 빌라를 적극적으로 추천하는 바이다. 물론 그런 만큼 전월세 가격도 비싸니 참고하시길 바란다.


그 사건 이후, 나는 어떻게든 다시는 아랫집 사람의 얼굴을 보지 않기 위해 내 몸가짐에 더욱더 주의했다. 항상 까치발을 들고 걷는 건 기본이었다. 의자에서 일어날 때면 늘 허벅지에 힘을 주고 투명의자를 한 상태에서 의자를 조심스럽게 들었다가 뒤로 빼야 했. 화장실을 갈 때도 아랫집 사람을 의식하며 슬리퍼를 조심조심 들었다가 바닥에 살짝 놨다. 동생과는 항상 속삭이듯 대화했다. 누군가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아랫집에서, 옆집에서, 그 건물이.


내가 소음을 유발한 장본인인 건 부정할 수 없었으나, 나도 그 생활환경 자체가 주는 스트레스 때문에 늘 화가 나 있었다. 그래서 차라리 다시 아랫집에서 우리 집으로 올라오는 일이 발생했으면 했다. 우리 집을 직접 보여주고 싶었다. 우리가 걷는 모습을 보여주고 화장실을 이용하는 모습을 똑똑히 보여주고 싶었다. 그리고 소리치고 싶었다. 내가 똥 싸면서 이렇게까지 눈치를 봐야 하겠느냐고, 살면서 한 번도 화장실 슬리퍼를 끌어본 적도 없느냐고, 이런 소음이 취약한 빌라에서 그거 하나정도는 참아줄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말이다.


하지만 그러면 난 무개념 층간소음 가해자로 불리게 되겠지. 결국 그 건물을 제대로 짓지 않은 진짜 가해자들은 없고 그 건물 안에서 한 층에 네 가구씩 복닥복닥 살아가는 사람들끼리만 서로 분노하고 싸우고 증오했다. 그게 이 필로티 구조의 빌라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식이었다.


그 아랫집과의 인연은 아이러니하게도 내 윗집의 소음으로 끝을 맺었다. 저녁이었고, 얼굴에 팩을 하고 있었을 때였는데 갑자기 윗집에서 마늘을 빻는 것 같은 소음이 들렸다. 대단하다 싶었다. 어떻게 이 빌라에서 이 정도의 소음을 낼 수 있단 말인가? 당연하게도 그 소음은 곧 진동이 되어 그 빌라 전체를 울리기 시작했다. 어쩌면 이거 아랫집에서 우리 집 소음인 줄 알고 올라오는 거 아니야, 하고 생각했는데 생각이 현실이 되었다. 초인종이 울렸던 것이다.


올게 왔군. 나는 팩을 떼지 않고 그냥 문을 열었다. 이번에는 아랫집 여자가 아닌 남자였다. 40대 초반정도로 보이는 그 남자는 내 얼굴을 보고 조금 놀란 듯했다. 그 사람이 좀 쭈뼛대며 말했다.


"아랫집 사람인데요. 방금 무슨 소리가 났는데..."


나는 무심하게 천장을 가리키며 말했다.


"윗집이요."


그런데 그런 우리의 대화 소리가 복도를 통해 윗집에도 들렸나 보다. 어느새 그 콩콩거리는 소리가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으니 말이다. 위층으로 향하는 남자를 보고 나는 현관문을 닫았다. 현관문 너머로 남자가 윗 집 벨을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순식간에 건물 전체가 조용해졌다. 분명 그 빌라 안에 사람들이 꽤 많이 살고 있었을 텐데, 조금 전의 그 진동도 다 느꼈을 텐데, 모두들 그 얄팍한 현관문 뒤에서 존재하고 있었을 텐데. 대체 그 얼굴도 모를 이웃주민들은 그 당시 어떤 생각으로 그 시각에 존재하고 있었을까. 모두들 현관문 밖의 상황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을까. 아니면 못 들은 척 귀를 막고 있었을까.


결국 그 아랫집 남자는 몇 번 계단을 오르내리다가 끝내 소음의 원인을 찾지 못한 채로 다시 자기 집, 아랫집으로 들어갔다. 그 후로 아랫집과 대면하는 일은 없었다. 어쩌면 이사를 갔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정확히는 알 수 없었다. 현관문 뒤에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는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이사를 갔는지 가지 않았는지 아무도 몰랐고 또 그래야만 했으니까. 그게 현대 사회의 룰이었다.


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윗집에 새로운 사람이 이사를 왔다. 주말 내내 집을 정리하는 소음이 한바탕 일어났다. 평일이 되어서야 집 정리를 마친 듯했으나 한 달 동안 윗 집 사람의 발소리가 너무 시끄러웠다. 마치 내가 작은북 안에 들어가 있는 기분이었달까. 발망치를 퉁퉁 칠 때마다 뼛속까지 진동이 울리는 듯했다. 그 스트레스에 한동안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이젠 내가 피해자가 된 셈이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내가 윗집에 따지러 올라갔다. 그때 그 아랫집 여자처럼, 최대한 사람 좋은 미소를 장착한 채였다. 윗집 문이 열리자 나보다 조금 어려 보이는 여자가 나왔다. 나는 그 집에서 들렸던 소음에 대해 말했다. 특히 발소리가 너무 시끄럽다고 했다. 생애 처음으로 낯선 이에게 내 편의를 위한 불만을 말했던 순간이었다. 어찌나 떨렸던지 얼굴 근육이 부자연스럽게 떨리는 게 다 느껴질 정도였다. 그 여자는 무척 미안한 것 같았다. 아마도 그런 일이 처음이었던 모양이었다. 그 뒤, 오후가 되어 집으로 돌아오자 우리 집 문고리에 웬 종이봉투가 걸려 있었다. 윗집에서 준 사과의 선물. 1층 카페의 디저트였다.


결국 그 빌라는 항상 그런 식으로 돌아가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구조적인 문제점을 타파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으므로, 늘 기존 세입자가 신규 유입자들은 감시하고 다그쳐야만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상황이 계속해서 반복되었다. 그 생태계 안에는 이웃을 증오하는 주민과 눈치 보는 주민, 끝까지 눈치 보지 않는 진상 주민만 존재했다. 디스토피아도 그런 디스토피아가 따로 없다.


그 와중에 야작 때문에 자취방보다 학교에서 자는 일이 더 많았던 동생은 단 한 번도 아랫집 사람과 대면한 적이 없었다. 때문인지 내가 겪었던 이야기를 듣고 분개하기는 했지만 나만큼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았다. 심지어 윗집 소음에도 아랑곳 않고 잠만 잘 자기까지 했다. 어쩌면 그 당시, 우리 집 초인종을 눌렀던 그 아랫집 남자도 아랫집 여자보다는 층간소음에 대한 스트레스가 덜했을지도 몰랐다. 여자는 온종일 집에서 프리랜서 일을 했던 데에 반해 남자는 그렇지 않아 보였으니까. 결국 그것도 그 빌라 안에서 오랜 시간을 생활해야 하는 사람들 사이의 문제였다. 서울이라는 한 도시의, 작은 빌라의, 몇몇 사람들만이 아는 너무 작은 사건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더 괴로웠던 것 같다. 나만 이 스트레스를 겪는 것 같은 느낌. 심지어 같이 살고 있는 세대원도 온전히 공감해 줄 수 없는 문제. 이런 문제들이 이 도시에 얼마나 더 많을까.


나는 그 사건으로 현실의 문제를 참고 버티는 방법을 익혔다. 그렇게 2년을 살았다. 결국 이런 스트레스보다 더 무서운 게 계약 해지에 따른 위약금이지 않던가. 그래서 모두들 그렇게 참고 산 것일 테다. 가해자가 되고 피해자가 되면서 말이다. 무고하지 않은 채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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