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모 2년 차, 어른 5년 차
시간은 흘러 어느새 그 필로티 빌라의 2년 계약이 만료되었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하던가. 층간소음과 관련해 이런저런 일들을 겪고 나니, 어느새 나는 까치발을 들고 걷거나 속삭이며 말하는 것이 무척 자연스러운 지경에 이르렀다. 그 집에서 계속 살 수 있을 역량은 차고 넘쳤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경력을 저버리고 어서 그 집을 나갈 궁리만 했다.
다행히 집을 내놓자마자 집을 보러 온 사람이 있었다. 겉보기엔 별 문제없어 보이는 집이었으므로 그 사람의 표정은 밝았다.
"벌레는 안 나왔죠?"
그 사람의 물음에 그렇다고 대답하면서도 그게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에 이래저래 마음이 불편했다. 하지만 세입자를 구해야 이사를 갈 수 있었으니 그저 입 다물고 있는 수밖에. 그 사람은 나와는 달리 층간소음에 예민하지 않거나 집을 자주 비우는 사람이길 빌었다. 결국 나는 그렇게 이기적이고 비겁한 사람이 된 것이다.
한편 나는 대학교 4학년이 되었다. 취업이라는 현실이 코앞에 다가왔다. 이제 현실을 도피할 만한 선택지는 대학원밖에 없었으나 어디 대학원생이 그렇게 쉽게 될 수 있는 것도 아니거니와 한다고 해서 쉬운 일도 아니지 않은가. 학업과 담을 쌓고 지냈던 지난 4년을 고려해 보자면 나는 영락없이 취업준비생이 될 운명이었다. 그러나 인문계 학과생이 대부분 그러하듯, 나는 도대체 내 학과만으로 어떤 회사에 취업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한 번은 학과 교수님이 예비졸업생 세 명씩을 묶어서 면담을 하신 적이 있었다. 어떤 사람은 아예 전공과는 상관없는 회계 쪽으로 간다고 했다. 또 어떤 사람은 일단 부모님이 일하시는 농장에 내려간다고 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했을까?
그 당시 내겐 두 가지 생각이 공존하고 있었다.
첫 째는 회사원이 되기 싫다는 거였다. 한창 '자아실현'에 꽂혀 있었던 내 머릿속에 회사란 고리타분한 곳이었다. 하루 종일 상사에게 시달릴 뿐만 아니라 진정한 나의 꿈같은 것은 무기한 유예해 둔 채로 안정적인 삶에 안일해지고야마는, 말하자면 '재미없는 어른들'의 밥벌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게다가 나는 단체 생활에 자신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카페 아르바이트 하나에도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는데, 과연 그보다 더 사람이 많은 회사에서 잘 적응할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다.
둘 째는 그럼에도 뒤처지고 싶지 않다는 거였다. 남들이 다 돈을 벌고 있는데, 나 혼자 백수인 것은 싫었다. 놀고먹고 싶지는 않았다. 적어도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하고 싶었고 그래서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인정받고 싶었다. 그렇다. 나는 용감하게 자아실현만 추구하기에는 인정 욕구가 강한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나는 교수님께 대답했다.
"지금 공부하고 있는 000쪽으로 취업하려고요."
거짓말은 아니었다. 실제로 나는 그쪽으로 공부를 하고 있었으니까. 대학교 3학년이 되면서부터 내 전공과목에서는 가르치지 않았던 다른 쪽의 분야에 관심을 가지기로 작정했고, 그 분야로 학원을 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당장 취업을 할 생각은 없었다. 그러니 교수님께 했던 말에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셈이었다.
그렇게 나는 졸업을 했다. 아니, 졸업 가능한 신분이 되었다. 이게 또 무슨 말인고 하면 졸업을 유예했다는 뜻이다. 그 당시에는 그것이 유행이었다. 취업 시장에서는 졸업 후 공백 기간이 있는 것보다는 따끈따끈한 '졸업예정자'가 더 순수한 신입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결국 나는 이도 저도 아닌 가짜 졸업생이 되었다. 그래도 그 애매한 정체성 덕분에, 나는 비공식 백수였음에도 마음이 그리 조급하지 않았다. 아직 공식문서를 기초로 한 학생 신분이라는 것이 나에게 큰 위안이 되어준 것이다.
그 당시 내 주변 친구들은 거의 다 취업을 하지 않은 상태였다. 교수님을 통해 곧바로 일자리를 얻은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두 일을 하지 않고 있었다. 어떤 친구들은 공무원 준비를 한다고 했다. 그들은 나아가야 할 방향은 명확했으나 얼마나 오랜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것인지 불확실한 친구들이었다. 또 어떤 친구들은 자기계발을 한다고 했다. 워킹 홀리데이를 가는 친구부터, 취업과 연계된 수업을 듣는 친구까지 다양했다. 또 어떤 친구들은 아직 방황하고 있다고 했다. 뭘 해야 하는지 찾고 있는 중이라고, 그러면서 이것저것 하느라 바쁘게 살고 있다고 했다. 그 친구들이 하는 일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이랬다. '이상하게 바빠 보이는 일' 또는 '부모가 보기에 도무지 뭘 하는 건지 알 수 없는 일'. 그리고 그런 일을 하는 친구가 바로 나였다.
그 당시 내가 했던 일은 이런 거였다. 우선 아빠의 카페 일을 계속 돕고 있었다. 그리고 포토샵이나 컴퓨터 활용능력 같은, 일단은 따 두면 좋을 자격증도 따두었다. 학원 강습은 끝난 지 오래였지만 그 학원과 연계된 공부 동아리는 주기적으로 다니고 있었다. 그 와중에 영상편집도 독학하면서 유튜브에 영상을 올리기도 했고, 블로그를 운영하기도 했다. 바로 그 시기에 가짜 마리모 막시무스에 대한 첫 글을 쓰기도 했던 것이다. 뭘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던 탓에 큰 방향성이 없이 자유분방하게 일을 벌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그 6개월의 기간 동안 나에게는 초조함이나 불안함이 없었다. 내겐 근거 없는 낙관이 있었다. 그래도 돈 벌 곳은 있겠지, 같은 희망 말이다. 믿고 있는 구석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내겐 남들이 다 가지고 있을 만한 자격증이 다였으니까. 하지만 다행히도 내겐 돈 욕심도 없었다. 우리 부모님도 내게 돈이나 직장에 대한 기준치를 제시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그런 여유가 있었던 거였다. 그 여유 덕분에 나는 작은 기회도 잡아챌 수 있었다. 만일 그 당시의 내게 돈과 명예에 대한 기준치가 확고했더라면, 나는 오래도록 직장을 찾지 못했을지도 몰랐다.
첫 취업 기회를 얻은 것은 그 당시에 다녔던 공부 동아리를 통해서였다. 공부 동아리의 한 친구가 일자리를 하나 추천했다. 5인 이하의 작은 사업장. 취업포털에도 정보가 잘 나오지 않는 곳. 하지만 주 4일만 일할 수도 있는 곳이었다. 주 4일이라니. 그것은 회사원에게 꿈만 같은 근무 시간이 아니던가. 게다가 아직 회사원이 될 준비가 되지 않았던 나에게는 딱 좋은 환경의 일자리일 수도 있었다. 그렇게 그 사업장의 위치를 지도로 찍어보았다가 놀랐다. 그 사업장은 내가 이사를 왔던 그 층간소음 필로티 빌라로부터 불과 5분 떨어진 곳에 있었다. 그 동네를 겨우 벗어났다고 생각했건만 또다시 그 동네로 다시 돌아가야만 하다니.
면접을 보러 갔던 날. 익숙한 동네의 골목길을 돌아서 그 사업장에 도착했다. 사업장은 얼핏 보기엔 평범한 가정집 같았다. 나무 바닥과 원목 가구들, 차분한 공기. 그곳에서 대표님과 간단한 면접을 봤다. 생애 첫 직장 면접이라 떨렸지만 생각보다 편안한 분위기에 금방 긴장을 풀었다. 나에게 있는 것이라고는 성실함뿐이었으므로 그걸 어필했다. 주말에는 아빠의 카페를 돕는다고도 했다. 그 경력이 대표님에게는 좀 괜찮아 보였던 모양이었다. 대표님은 말했다.
"한 가지 일만 하게 되지는 않을 거예요. 다양한 일을 하면서 다재다능한 사람이 되는 거예요."
"오, 저도 마침 다양한 일을 경험해 보고 싶었습니다."
그 말은 진심이었다. 그 당시 아무것도 없던 나의 상황에서 손해 보는 일도 아니지 않던가. 그렇게 나는 그 자리에서 바로 합격했다.
그즈음이 되어 주변을 돌아보니 내 친구들도 하나 둘 취업을 하고 있었다. 취업이라니. 회사원이라니. 우리가 그런 게 될 수 있었을 줄이야. 어린 시절, 막연한 장래희망을 적어서 사물함에 붙였던 그 친구들이 이젠 정말로 일이라는 것을 하기 시작했다. 그건 더 이상 장례의 일도 아니었고 희망도 아니었다. 그 막연한 미래는 이제 우리에게 현실이 되어 있었다.
물론 취업을 하지 못한 친구들도 많았다. 취업을 한 친구들 중에서도 장래희망을 이룬 사람은 극소수였고, 대부분은 주어진 상황에 맞는 일을 했다. 하는 일도 정말 제각각이었다. 나로서는 설명을 들어도 전혀 감이 오지 않는 일을 하는 친구도 있었다. 겨우 약속을 잡고 한 번 모이면 각자의 고민을 털어놓기에 바빴다. 그땐 모두들 처음 경험해 보는 것이 참 많았다. 대학생 땐 부당하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회사에서는 당연하게 자행되고 있다는 사실에 분개하며 퇴사를 선언하기도 했다. 그래도 그땐 우리가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 마냥 멋져 보였다. 정말 어른이 된 것만 같았다. 아니, 이젠 정말 어른이 되어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