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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모 일기 3 | 가짜도 자랍니다

제3장 프롤로그

by 뺑또


2022년 12월 25일.


나는 불규칙적으로 본가에 가는 데다가, 또 불규칙적으로 마리모에 물을 주고 있다.

햇살이 드는 창문가에 커튼을 치고 키우고 있는데,

한 달 넘게 물을 갈아주지 않아도 마리모가 죽지 않는다는 걸 알아버리고 말았다.

그 와중에 욕심은 또 많아서 물 갈아줄 때는 마리모 먹이를 왕창 넣어주었더니

막시무스와 수세미의 보금자리에 곧 새 생명들이 마구 자라나기 시작했다.


**약혐 주의**







EWWW... 한국말로 하면 으엑...


고여 있는 물과 풍부한 먹이로 인해 이끼들이 마구마구 자라났다.

완벽한 녹조라떼 완성. 이 정도면 마리모를 키우고 있는 게 아니라 이끼를 키우고 있는 게 아닐까?

아니, 그 말이 그 말인 건가?


어쩌면 마리모와 수세미에게는 그렇게까지 나쁘지 않은 환경일 수도 있었다.

친구들이 더 많아진 것일 수도...?(아님)

그래도 보는 인간이 영 불편하니 내년이 되기 전에 마리모 집을 한 번 싹 리모델링 해주기로 하고

조약돌과 어항을 구매했다.




우선 안에 있던 피규어와 조약돌을 다 꺼냈다.

그런데 토토로 피규어가 영 말이 아니게 됐다.

물로 씻어도, 휴지로 닦아도 세밀한 부분의 이끼는 지워지지 않았다.

이 정도면 그냥 초록색으로 물들어 버렸다고 생각하는 편이 맘 편할 것 같았다.





그리고 막시무스와 수세미를 꺼내 들었는데... 요놈들이 꼭 붙어 있더라.

세로로 보니 동숲에서 만든 소두 눈사람 같았다.

그냥 이렇게 붙여서 키울까? 하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가 아무 생각 없이 뜯어버렸는데,

이제 와서 조금 후회된다. 눈사람 마리모를 키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는데.




2년 전에도, 1년 전에도, 나는 막시무스와 수세미를 휴지 위에 올려 두고 크기를 비교했다.

그때는 대강 눈대중으로 자라는 형태를 확인했었는데, 이제부터는 정확한 수치를 재볼까 한다.






수세미의 2021년과 2022년.


화면 구도와 카메라 색감 차이가 있을 수 있어, 정확히 얼마만큼 자랐는지 판단하기는 어렵다.

그래도 털이 좀 얼기설기 자란 것 같은 느낌은 든다.






사이보그 마리모 막시무스의 2021년과 2022년.


사진 구도가 좀 다르게 찍혀서 그렇지, 크기는 비슷해 보인다.

놀라운 건, 막시무스가 더 쪼그라들지 않았다는 거다. 오히려 더 삐죽삐죽 자란 것 같은 느낌.


혹시...?라는 생각으로 이리저리 만져봤지만 알 턱이 없다.

어쩌면 토토로 피규어와 마찬가지로, 녹조라떼와 한 몸이 된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내 멋대로 생각해 보는 거긴 하지만 이 정도면 자랐다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어쩌면 개심해서 인간으로 변한 피노키오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게 아니라면 진짜, 진짜일 수도 있고...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가짜 마리모 되시겠다.





잡동사니를 (버려) 두는 바구니에서 겨우 자를 찾았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끈적끈적한 무언가가 붙어 있었다. 얼른 쓰고 손을 씻었다. (자는 다시 바구니로 쏙)


지름을 기준으로 해서, 막시무스는 0.8cm 수세미는 1.4cm 정도인 듯하다.

이렇게 수치를 알아놨으니 1년 뒤에 얼마나 자랐는지를 정확히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마리모 용품들을 사는 김에, 심심해서 마리모 한 마리를 더 영입하기로 했다.

왜 식집사들이 식물 하나를 들이기 시작하면 결국 집을 식물원으로 만들어버리는지 이해할 것 같다.

얘도 크기를 재 봤다. 결과는 1.4cm?







왼쪽부터 막시무스, 수세미, 그리고 새로 들어온 신입.

그런데 신입이 자라면 왠지 수세미랑 너무 구분이 안 될 것 같았다.


뭔가 구별할 수 있는 장치를 해 두면 좋을 것 같은데, 뭘 해야 할까.






빵 끈을 조금 찔러 넣을까? 싶어서 시도해 봤는데, 마리모가 은근히 단단히 엮여 있어서 빵 끈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엔 트리 오너먼트처럼 만들어볼까 싶어 빵 끈을 마리모에 빙빙 감아보려고 했는데...

음... 망했다. 그리고 생각해 보니 철사를 물에 넣으면 얼마 안 가 녹이 슬 것 같더라.





결국 원기둥 모양으로 만들어봤다. 이름은 사실 뭘로 할지 모르겠다.

일단 크리스마스와 가까운 날 왔기 때문에 '크리스'라고 지어볼까 했는데 영 입에 감기지 않는다.

혹시 마리모 이름 아무거나 추천해 주실 분? 요 원기둥의 이름을 댓글로 남겨주실 분 구함...!






마리모 어항 꾸미기 용품들은 일괄 구매했다.

해양을 테마로 하고 싶어서 푸른 조약돌과 피규어를 구매했다.

먼저 깨끗하게 닦은 어항에 푸른 조약돌을 놓고, 투명, 하양 조약돌을 넣어줬다.






그렇게 완성된 마리모 어항! 짜잔! 나름 예쁘게 돼서 뿌듯하다.






밤에는 이렇게 영롱하게 빛난다.

불을 켜 놓으니 광합성이 잘 되는지 공기방울이 뽀글뽀글 나온다.

마리모 셋이서 다 같이 오순도순 잘 살아가기를!



이렇게, 올해가 가기 전에 마리모 어항 꾸미기 완료! 5년간은 분홍색 조약돌과 함께 지냈으니, 앞으로 5년간은 요 펭귄들과 함께 지내게 될 것 같다. 내년에는 조금 더 자란 마리모들과 함께 포스팅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당시 실제 포스팅과 댓글 반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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