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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야 어른이 될 준비가 됐다

마리모 4년 차, 어른 7년 차

by 뺑또


우리는 언제 어른이 되는 걸까.


'어른'에 대한 정의를 어떻게 내리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내 경험상 대학생이 되었다고 다 어른이 되는 건 아니었다. 취업을 했다고 다 어른이 되는 것도 아니었다. 물론 대체로 사회 경험이 쌓이면서 점점 더 어른스러워지는 것은 맞았다.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일 하는 사람을 보고 우리는 어른이라고 말하기는 하니까. 하지만 왜 몇 년간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나는 아직도 내가 어른이 되지 않은 것만 같을까. 이젠 민증검사도 하지 않는 나이가 되었건만, 왜 나는 나보다 어른인 어른이 있으리라 믿고 있느냐는 말이다.


사실 '어른스럽다'는 말에는 나 자신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다는 것보다 더 큰 의미를 함축하고 있었다. 아이에게 어른들이 '어른스럽네'라는 말을 하게 되는 경우를 생각해 보면 그랬다. 아이가 자신이 가진 음식을 자신의 형제에게 양보했을 때, 우리는 '어른스럽다'라는 말을 쓰지 않던가. 말하자면 내 것을 희생해서 타인을 위하는 행위를 했을 때 '어른스럽다'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그러니 감히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내가 추측하건대, 진짜 어른이란 내 삶 전체를 희생해서라도 한 존재를 책임질 때 되는 듯했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건 제외였다. 반려동물은 내 삶 전체의 희생을 논하기에는 너무 무해하니까.


결국 인간을 책임질 때 되는 것 같았다. 속내에 어떤 꿍꿍이를 감추고 있을지도 모를, 때로는 징그럽기까지 한 검은 머리 짐승을, 자신의 삶을 모두 걸고서라도 책임지는 사람들 말이다. 이를테면 자신의 형제자매를 책임지는 소년소녀 가장이 그럴 것이었다. 한 아이를 책임지는 사람들도 그럴 것이었다. 부모를 책임지는 사람들도 그럴 것이었다. 확실히 그들에겐 내가 가지지 못한, 다른 종류의 성숙함이 있었다. 그러니 나는 누군가를 책임져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아직 진짜 어른이 되지 못한 것이 아닐까 싶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누군가를 책임지지 못한 사람들이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성숙함의 정도 차이가 행복을 결정짓는 것은 아니니까. 게다가 누군가를 책임지는 어른이 되었다고 해서 인성이 성숙한 것은 아닐 수도 있었다.


자기 자신을 책임지고 타인을 위해 베풀 줄만 안다면야 어른이 될 자격이 충분했다. 그리고 각자 경험은 다르겠지만, 모두들 자신이 전보다 더 성숙해졌음을 실감했을 때가 있었다.


지난 20대를 돌이켜보건대, 내게도 조금 더 어른이 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시기가 있었다. 뭔가 극적인 사건이 일어난 것은 아니었지만 그 작은 사건들로 인해 나는 오래전부터 해야 했던 숙제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숙제를 함으로써 나는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그 무렵, 나는 퇴사를 결심했다.


적어도 대표님은 진실된 사람이셨다. 면접 때 말씀하셨던 것처럼, 한 가지 일만 하게 되지 않을 거라는 말도 진짜였고 다재다능한 사람이 될 거라는 말도 진짜였으니까.


5인 이하 사업장의, 내가 속한 부서의 유일한 직원으로서 나는 정말 다양한 일들을 했다. 재미있는 일, 그럭저럭 할만한 일,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은 물론이거니와 이걸 왜 내가 해야 하나 싶은 일들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넵' 하고 주어진 일들을 다 수락한 열정 넘치는 초짜도 조금씩 지치기 시작했다.


물론 당장에 무슨 일을 해야 할지도 모르는 청년에게 그처럼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던 환경은 꽤 도움이 되었다. 덜렁대는 성격 탓에 실수를 저질렀을 때에도 모두들 유하게 넘어가주시기도 했다. 사수가 없었기 때문에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할 수 있었다는 것도 장점이었다. 그래서 이후 업무 부담감이 심했던 회사에 다닐 적에는 이 당시의 업무 환경이 꽤나 그리워지기까지 했더랬다.


하지만 퇴사를 결심했던 이유는 역시 사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내 업무 능력이 과연 이 업계에서 얼마나 유용한 것인지, 내가 지금 올바른 길로 가고 있는 것인지를 알 수 없었다. 게다가 20대에 얻은 첫 직장, 작은 5인 이하의 사업장에 내 평생을 걸기엔 젊음이 너무 아깝다고 생각했다. 그때가 직장을 다닌 지 1년이 넘었던 때였다. 1년 경력이라면 어디든 중고신입으로 넣어볼 만한 경력이었다. 그래서 이직을 결심했다. 앞으로 나아가기로 한 것이다.


그즈음에 내 두 번째 연애도 막을 내렸다. 6개월의 그 짧은 연애기간 동안 나는 그를 사랑하지 않았다. 돌이켜보니 내가 사랑했던 것은 나 자신이었다. 내가 외로울까 봐 사랑할 사람을 찾았던 것이다. 만나는 것도 부질없어서 전화로 이별을 했던 그날, 나는 혼자 남은 사무실에서 펑펑 울었다. 그 남자는 내가 자신과 이별하기 싫어서 우는 거라고 생각했던 모양이지만 사실 그렇지 않았다. 나는 내가 애써 부정하던 현실, 그러니까 그 사람에게 상처받으면서도 연애를 놓지 못했던 나 자신이 가여워서 울었던 것이다.


그 일을 겪은 후, 나는 집으로 돌아가자마자 생애 처음으로 나 자신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았다. 평소에 외면하고 있었던, 남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던 나 자신을 이제 알아야만 할 것 같았다.


동생과 함께 썼던 4인용 식탁 겸 책상에 앉아 공책을 펴고 나의 성격을 주제로 마인드맵을 그렸다. 왜 나는 그와 만나는 날마다 눈물을 흘렸을까. 그에게서 무엇을 기대했고 어떤 것을 충족받고 싶어 했으며, 그걸 충족받지 못했음에도 왜 꾸역꾸역 연애를 이어나갔을까. 생각해 보니 직장에서도 비슷한 일들이 있었다. 나는 왜 그 사소한 일로 상처를 받았나. 그 일을 해서 무엇을 충족받고 싶어 했나. 내 안에는 대체 어떤 욕구가 있는 것일까.


생각해 보면 나는 남들과 정서적으로 가까운 관계를 원했지만 남들을 완전히 신뢰하지는 않았다.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내가 상처받을까 봐 두려웠다. 그래서 그토록 매번 사랑을 확인하고 그 사랑에 조금이라도 흠집이 생길 것 같으면 바로 실망하고 관계를 놔버렸던 것이었다.


또한 나는 모두에게 잘 보이고 싶었다. 인정받고 싶었고 내 평판에 조금이라도 흠집이 생기지 않길 바랐다. 그러기 위해서 완벽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완벽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음에도, 나는 계속 불가능한 것을 몰아붙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가지를 쭉쭉 뻗어나간 끝에서야 나는 한 가지 사실에 도달할 수 있었다. 나는 나 자신을 싫어했다. 리고 그런 나 자신을 만들었다 여겨지는 모든 것들을 미워하고 있었다. 어렸을 적의 사소한 사건들과 주눅 들었던 경험과 그럼에도 아무 말하지 못했던 나 자신을 말이다.


그 당시 즐겨보던 프로그램에서 한 심리학 교수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어른이 되면 자신을 괴롭히는 것들을 용서할 줄 알아야 한다고. 그것들을 용서하고 떠나보내야지만 어른으로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주인공은 줄곧 자신의 원수를 용서하곤 했다. 하지만 나는 그게 위선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한평생 나를 괴롭혔던 원수를 대체 왜 용서하는 것일까. 그렇게 하면 자신이 멋져 보이기라도 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심지어는 호구처럼 보이기도 했다. 내가 피해를 받은 만큼 나도 철저히 미워해야 한다고, 손해를 봐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 나는 나를 괴롭히던 것들을 용서해야 했다. 그것을 똑바로 바라보고,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했다. 돌이켜보니 원망만 하는 것은 나를 괴롭게 만들 뿐이었다. 미워한다고 미워하는 것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고, 보상을 받아낸다고 해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나를 사랑하기 위해 그 미워했던 대상을 용서해야 했다.


오로지 미워하고 탓하는 것만이 답인 줄 알았는데, 막상 내가 나의 과거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그 순간 마음이 개운해졌다. 나는 내 성격에 대해 변명하지 않기로 했다. 지금 내가 이렇게 불안한 것은 다 그러그러한 경험 때문이야,라는 집착적인 생각을 그만두기로 했다.


어른이 되는 방법 (어른 7년 차 ver.)

- 나 자신의 성격과 기질을 인지하자

- 내 부족함을 받아들이자

- 바꿀 수 없는 과거의 일들을 용서하자

-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자


놀랍게도 그 일이 있고 나서야 나는 내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생겼다. 나에 대한 집착적인 생각에 골몰하는 것을 그만 두자 내 주변의 사람들이, 내가 살고 있는 동네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제야 나는 자취 7년 차가 될 때까지도 내가 살고 있던 동네를 제대로 탐색한 적이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 마음의 여유가 없다면 아무리 좋은 동네에 살아도 방 안에 갇혀 있을 뿐이다.


집에 들어가면 연락을 끊고 나 혼자 놀기에 바빴던 내가 연락이 뜸했던 친구들에게 먼저 연락을 하기 시작했다. 친구들과 만나서는 나의 감정을 더 솔직히 털어놓을 수 있게 됐다. 가족들도 다시 보게 되었다. 나를 위해 늘 내 곁에 있어주었던 나의 가족. 나를 묵묵히 바라봐주었던 우리 엄마, 아빠, 그리고 내 친구 같은 동생까지. 모두에게 더 잘해주고 싶었다.


쓸데없이 밖을 돌아다니며 동네 산책이라는 것도 했다. 예를 들어 매일매일 '오늘의 메뉴'가 달라지는 밥집도 가봤다. 그곳은 30대 정도 되어 보이는 여자가 혼자 운영하고 있었는데 늘 주변 어르신들에게 친절했다. 부부가 운영하는 떡볶이 집도 갔다. 아이들이 친구들과 함께 와서 떡볶이를 먹고 가는 곳이어서 늘 소란스러웠다. 또 조금 더 가면 깔끔한 분위기의 청과점이 나왔다. 젊은 아저씨가 혼자 운영했는데 꽤 열의가 넘치셨고 친절했다. 커피 핸드드립을 해주는 곳도 있었다. 그곳의 바리스타는 다소 낯을 많이 가렸으나 친절했다. 꼭 재수시절, 내게 말없이 맛있는 간식 같은 것을 슬쩍 내밀곤 했던 그 언니 같았다.


사를 한 뒤 포트폴리오를 준비하면서, 나는 저녁마다 그 동네를 걸었다. 그럴싸한 산책로는 없어서 대로변을 따라 걸었다. 그 길에서 산책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다들 하루를 마무리하기 위해, 운동복을 입고 부지런히 걷고 있었다.


그렇게 그 동네를 즐기다 보니 내게도 '하루 루틴'이라는 것이 생겼다. 집을 깔끔하게 치우고 정돈하기 시작한 것도 다 그때부터였다. 친구와 만났던 평범한 저녁. 나는 그 친구에게 지금 내가 무척 '행복하다'라고 말했다. 마음속에서 충만하게 차오르는 행복이었다. 바로 그 시기를 기점으로, 나는 조금 더 어른스러워질 수 있었다. 나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내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생겼을 때. 내가 아닌 타인을 마주 볼 수 있었을 때, 그제야 진짜 어른이 될 준비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당시 내 작업실이자 침실이자 부엌이자 거실이 되어주었던 나의 자취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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